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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하다 나

인시생발 |2020.02.13 10:12
조회 527 |추천 1
작년 봄, 일교차가 심한 나날들,
오빠는 항상 나에게 멋져 보이려고 옷을 얇게 입고 왔다.
나는 추운걸 싫어해서 곧잘 껴입고 나갔는데, 대낮부터 밤까지 매일 데이트했던 우리기에 추워하는 오빠에게 항상 나는 내 겉옷들을 벗어주었다. 늦게라도 언제든지 옷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에.

그렇게 하나 둘 씩 벗어주다, 내 겉옷을 벗어 줄 필요가 없어진 여름이 되어, 내 겉옷과 함께 오빠는 내가 필요없어졌나보다.

일 끝나고 서로 맥주나 한 잔 하다가, 앞으로 나에게 잘해줄 자신이 없다는 오빠에게 나는 헤어짐을 쿨 한 척 받아들였다.

그 더운 한여름 날, 헤어지고 영화처럼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가는 와중에 옷을 돌려 주려고 연락 한 번 주지 않을까 미련을 가졌었다.

나도 오빠도 서로 구질구질한거 싫어하는 성격이라 우린 두 번 다시 연락을 안할걸 알면서도.

그렇게 나는 헤어진 후 내 스스로가 오빠를 못 잊는다는걸 인정하기 싫어서 내 마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살다보니 입병을 아직까지도 달고 살았다. 그래도 괜찮아질거야 하며 대학병원가서 입병 관련약도 처방받고 어떻게든 살아갔다.

어제 새벽에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새로 키우는 SNS 계정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오빠 생각이 나서 기억을 곱씹어 오빠 계정에 들어가봤다.

며칠 전에 업데이트한 오빠 사진 속에는, 오빠 추울까봐 벗어줬던 내 옷을 들고 여름 날에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쑥쓰러운 표정의 오빠가 있었다.

괜찮다는 나를 집 앞까지 기어이 데려다 주는 오빠가, 집에 다시 돌아가는 길이 추울까봐 벗어줬던 내 겉옷을 들고 다른 여자와 웃고 있는 오빠 모습을 보니 정신이 멍해졌다.

다시 7개월 전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였다.

미련인건지 분한건지 나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사실 내 감정을 굳이 정의를 할 필요 없이 쿨하게 넘겨버리면 되는데 말이다.

속상한 내 감정이 너무 구질구질했다.

나를 향했던 오빠의 감정들이 내 옷으로 인해 부정당하는 기분.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견디기가 힘들어 집 밖을 나갔다.

헤어지던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오늘 새벽엔 이슬비마냥 잔잔히 떨어지는게 꼭 나한테 괜찮아지고 있다고 말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이 된 지금, 내 감정이 너무 구질구질하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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