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지킬 앤 하이드 신드롬 -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그 기억

봉구 |2020.03.17 10:32
조회 208 |추천 0

안녕하세요. 저는 봉구입니다. 그녀가 정해줬던 애칭이였습니다.

그녀와 헤어지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봤습니다.

친구들한테도 얘기하며 위로를 받았지만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지금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녀는 정말 저를 사랑했던걸까요...?


 2019년 2월 입춘이 지나 야구개막 시즌이 들려오는 그 시절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씨는 아직 추웠지만 새싹이 피기 시작하는 그 즈음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피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알게 된지 이제 1년,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그 기억을 조심스럽게 떠올려 본다. 2019년 2월 야구가 개막하기 전 야구동호회 친구들과 2019시즌을 잘 보내도록 기원하고, 친해지기 위해 모임을 가져다. 그녀도 처음 참석하였다. 그녀의 첫 인상은 굉장히 활발하고 리액션이 좋으며 웃는 모습이 이쁜 친구였다. 동호회 내에서 보던 친구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외향적인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생각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일본의 글로벌기업에서 잠시 일했었고 지금은 일본어 강사로 일한다던 그녀는 무언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매력을 지닌 것 같았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녀에게 특별히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3월이 되고 야구개막전이 열리던 그 날 동호회 친구들과 함께 열띤 응원을 하고 있을 때 그녀도 다른 친구와 개막전에 왔던 것이다. 개막전을 기념으로 많은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동영상까지 만들었던 그 날 야구는 졌지만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걸로 만족해야 했다. 4월이 되었을 때 그녀는 동호회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기 위해 많은 모임에 참석했었고, 그 중 내가 참석한 모임에도 나왔었다. 모임 내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시고 밤까지 새던 그 날 조금 더 일찍 가는 나에게 "오빠 왜 이렇게 빨리 가요"라고 물었지만 너무 졸린 나머지 나는 그냥 집에 갔다. 그 이후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도 만나면서 본인이 있는 곳으로 단톡방에서 공개적으로 오라고 하던 그녀의 말에 그냥 하는 말이겠지 하면서 무시하고 넘어 갔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을 계속 하기에 반신반의 하면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만드는 그녀는 결정적인 날 내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바로 내 생일 날이다. 그 날 모임 내 친구들과 간단히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생일파티가 되어버려 급하게 식당을 예약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그녀는 가고 싶은데 못갈 수도 있다고 했었다. 조금 아쉬웠다. 그 날이 되었다. 내 생일이 뭐라고.. 이렇게 많이 축하해주는 이런 생일파티는 성인이 되어서 처음 경험해본 것 같다. 작은 선물까지 준비하던 친구들 가운데 그녀도 참석하였다. 사실 못갈 수도 있다고 했지 못 간다고 했던 것은 아니였던 것이다. 그녀도 선물을 사왔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사왔는데, 꼬깔모자를 생일파티에 참석한 사람의 수만큼 사왔던 것이다. 엉뚱하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했던 그 고깔모자 선물은 내 모자만 다른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 고깔모자를 구하기 위해 빵집을 여러 곳 들리면서 구한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뭐라고 이렇게 노력을 하지.. 그냥 와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게 되었다. 그 이후 서로의 직장이 가까웠던 그녀와 더 친해지기 위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은 후 카페에 갈까 고민하는 찰나에 맥주를 더 마시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에 간단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집을 찾았지만 그녀를 좀 더 좋은 곳에 데려가야겠다는 마음에 전부터 한번 가고 싶었던 독특한 장소에 데려갔다. 내부는 작고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를 갖춘 그 장소는 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장소였다. 그 곳에서 와인을 마셨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짓고 미소를 보이던 그녀를 생일 이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 회사일로 바쁜 와중에 그녀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갖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야근을 한참 하고 있을 때 그녀도 아직 퇴근하지 않아 조급한 마음에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사실 모임 내 일부 친구들이 그녀와 잘 되길 바라면서 카페이용권을 준적이 있었다. 그 이용권을 그 날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커피와 케이크를 마시고 있는 가운데 나는 안절부절하며 고백할 타이밍을 찾기 위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오늘 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고백할 타이밍을 어설프게 가졌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나 너 좋아해도 돼?” 라고 묻자 갑자기 당황하던 그녀는 “어떡하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갑자기 분위기 어색해졌다..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한다던 그녀와 이야기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로 돌아가던 나는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백한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고백 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던 그녀.. 2주가 흐른 뒤 그녀와의 관계의 싹이 피고 있었다. 5월이 되어 야외활동을 하기 좋은 날, 동호회 친구들과 엠티를 가게 되었다. 많은 인원들이 참석해서 더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나는 그녀의 답을 아직 듣지 못한 채 기다리고만 있었다. 장을 보기위해 선발대가 된 나는 그녀를 포함한 일부 친구들과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고 있었다. 나는 어색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발랄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환한 미소를 보이며 웃던 그녀는 정말 귀여웠다. 장을 본 후 친구들이 하나둘씩 다 모였을 때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그녀도 잘 놀고 있었다. 나는 온 신경이 그녀에게 쏠린 것 같았다. 그녀의 웃음은 뭔가 남들과 다른 존재감을 갖게 하는 웃음 같았다. 저녁시간이 되어 음주가무를 즐기며 바베큐 파티를 하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친해지기 좋은 시간을 가진 가운데 우리가 잘 되길 응원하던 일부 친구들이 나와 그녀에게 카드를 주며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시켰다. 뭔가 좋으면서도 어색한 그녀와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아이스크림을 사기전 좀 더 걷자는 그녀는 잠시 멈추고 고민한 듯 보이더니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이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기분이 너무 좋던 나는 “그럼 오늘부터 1일인가?” 되물으며 아이스크림을 사고 손잡은 채 숙소로 돌아갔다. 그녀는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제안에 알겠다고 하였고, 숙소에 다 왔을 때 쯤 부끄러운 마음에 손을 놓고 서로 웃으며 들어갔다. 그렇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친구들과 다시 음주가무를 즐겼다. 시간이 좀 흐른 뒤 친했던 한 친구가 나를 불러들였다. “많이 취한건가”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담배를 몹시 피우던 친구는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친구의 행동에 당황하던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담배만 피우던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담배를 다 피운 후 그는 나에게 엄청 실망한 듯 다짜고짜 쌍욕을 퍼부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일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도 그녀에게 고백을 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나와 사귀게 된 것이다. 내가 그 친구 같아도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전개된 상황에서 나는 그 친구를 위로하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았다. 이 사실을 알던 친구들 중 일부가 내려와 이 상황을 진정시켰고 그렇게 일단락 됐지만 그 친구는 숙소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한 명 잃었다.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날 친구를 한명 잃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 충실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여자친구한테 얘기하지 않고 그냥 안 좋은 일이 있나보다 하고 넘겼다. 그렇게 엠티의 밤이 저물어 새벽이 다가올 때 아직 자지 않은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사실 친구들한테 비밀로 하자던 여자친구는 은근슬쩍 우리가 사귄다는 걸 어필했고, 아이스크림을 사온 이후 우리의 행동들을 보던 주변 친구들은 이미 알 수 있는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이미 알게 되었으면 뭐 어쩔 수 있겠는가.. 그냥 오픈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토로하자 많은 친구들이 응원해줬고 그렇게 우리는 시작했다. 한강에서 피크닉도 즐기고.. 롯데타워에 가서 수족관도 구경하고.. 전망대도 구경하고.. 많은 사진을 찍었던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주여행을 가자던 그녀의 제안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지냈던 그 기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의 기억들이었다. 이 후 장롱면허인 내게 운전을 하자고 갑작스럽게 제안했던 그녀의 말에 걱정은 됐지만, 그녀를 너무나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면 뭐든 행동하는 예스맨이 되었다. 회사일로 바쁜 와중에 내 개인시간을 짬을 내서 어떻게든 운전을 배워야 했던 나는 결국 운전을 잘 하게 되었다. 이게 사랑의 힘인가...? 운전을 배운 후 그녀와 나는 서울 근교 맛집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좀 더 멀리 가보기 위해 친구의 추천을 받아 강릉여행을 준비하였다. 안반데기라고 들어봤는가? 어느 특정시기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은하수가 펼쳐진다는 그런 장소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강릉 여행을 떠났다. 좋은 음식, 좋은 음악, 좋은 풍경, 좋은 날씨 모든게 완벽했지만 저녁의 날씨는 그렇지 못했다. 분명 낮에는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이었는데, 은하수를 보는 저녁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은하수를 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어두컴컴한 길을 뚫고 오면서도 사람들이 없으면 무섭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주차장의 차들이 포화상태일 정도로 사람들은 많았으며, 그 많은 사람들이 매우 실망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녀에게 멋진 은하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하지만 그녀는 다음에 또 가면 오면 된다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정말로 실망한 나를 위로해주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기로 했던 장소까지만 갔다. 그 장소를 가는데 엄청나게 큰 배추밭이 펼쳐져 있어 길을 가면서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던 우리는 은하수를 잊은 채 배추밭을 보며 행복해 했다. 배추 옆에서 사진을 찍는 그녀의 웃는 모습은 너무 순수해 보였다.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달하여 커피빵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모습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커플의 모습이었다. 사실 그 날은 우리의 100일 여행이었다. 짧으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100일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찍었기에 그 만큼 추억도 많아 노트북의 영상을 보며 그 날의 일들을 회상하였다.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고 맥주를 마시며 앞으로의 일들을 기약하였다. 다음 날 우리는 주문진으로 올라가 대게를 먹으며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사고 카페로 이동하였다. ‘시인과 바다‘ 그 카페는 가족들과 어렸을 때 강릉에 오면 자주 들리는 카페였다. 어렸을 땐 젊어보이던 사장님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고, 주변에는 많은 건물들이 생겨났지만 그 카페 안과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은 변함이 없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사장님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이쁜 사진을 계속 찍던 우리는 다음에도 또 오길 기약하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나 행복했다. 100일 이후에도 파주도 놀러가고, 포천에도 놀러가고, 제주도도 놀러가고, 여러 장소에 놀러가면서 팔당에 아지트 카페도 생기는 등 정말 행복했다. 종로에 가서 그녀가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반지를 선택해 커플링도 맞추고... 그렇게 나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결혼 생각 하냐고 빠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만남의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동의하였다. 우리는 남산에도 놀러갔다. 걸어서 남산을 올라가면서 힘들지만 뭔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고 올라가서는 “우리 결혼하면 저 커플티 꼭 하자 오빠~”라고 하던 그녀의 웃는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부모님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우리 가족은 횟집에서 많은 양의 회를 주문하여 환영해주었다. 너무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우리가족을 소개한 후 이번에는 그녀의 언니네 가족을 뵈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너무나도 잘 대해주시던 그녀의 언니와 형부는 마치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귀여운 조카도 나를 어색해 하면서도 반겨주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그녀의 친한 친구들도 만나면서 주변인들을 알아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남자친구 사귀면서 한 번도 가족에게 보여준 적 없다고 하던 그녀에게 신뢰감을 가지며 결혼에 대한 확신이 더 굳혀졌다. 그래서 내 동생의 결혼식에도 초대하고 친척들에게 소개를 해줬다. 200일이 되었을 때 맛있는 저녁도 먹고 또 행복한 하루를 보내며.. 서영은 콘서트를 보러가며.. 너무 행복했다. 그녀와 나는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장소, 행동 등 많은 것들이 비슷하여 결정하는데 있어서 큰 마찰도 없었다. 그렇게 12월이 다가왔다. 동호회에서 크게 준비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친구들과 그리고 그녀와 게임을 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맛있는 음식, 좋은 친구들..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왔다.

나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크리스마스 날 롯데월드에 가보는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롯데월드에 놀러가며 구경을 하다가 레스토랑에 갔는데 우연찮게 그녀가 전에 일하던 음식점의 직원이 점장이 되어 서비스를 주었고 그렇게 이것저것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전부터 갖고 싶어 하던 에어팟을 선물하고, 나는 벨트가 없어 좋은 벨트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은 편지도 주었다. 롯데월드에 밤이 찾아 왔을 때 멋진 페스티벌을 구경하고 그렇게 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26일, 27일, 28일.. 그녀의 언니네 식구와 함께 평창에 놀러갔다. 그녀의 언니는 나를 좋게 보시고 어차피 결혼할 사이니 같이 놀러가자고 제안을 했었다. 그래서 호텔을 예약하고 썰매장과 워터파크를 즐기며 다 같이 정말로 인생에서 너무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소중한 시간들을 보냈으며 그녀와 함께하는 두 밤이 너무 행복했다. 재밌는 사진, 좋은 추억 모든게 넘쳐나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녀는 이미 내 인생에 동반자라 생각했다. 2019년 마지막 날, 그녀는 친구들과 보내고 싶다 하여 친한 친구들과의 마지막 20대를 보냈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하였다. 사실 2019년 마지막 밤은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20대로서의 삶도 중요하다 생각하여 그러라고 하였다.

2020년이 찾아왔다. 2020년에는 정말 행복한 한 해를 보내리라 생각했으며 내 삶에 있어서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2020년 1월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기위해 일정을 계획하였다.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장소에서 결혼하기 위해 많은 장소들을 알아봤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계약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님이 결혼식 장소에 대한 반대로 계약을 취소하고, 채플형식 또는 홀형식으로 된 곳을 알아보며 웨딩투어도 하고, 스드메도 알아두는 등 정말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2월이 왔다. 이후 그녀의 부모님을 뵙기로 했었다. 원래는 그 전에 뵈어야 했는데 계속 나중으로 미루다가 이제야 그녀의 가족을 뵙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안에서 부모님들을 뵐 줄 알았는데 광화문에 위치한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언니네 식구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셔서 한 번도 뵙지 못하였다. 깜빡하고 잊은게 있다.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 지금까지 남자친구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몸이 많이 불편하시다고 하였다. 그래도 나랑 만나줄 수 있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오히려 화를 냈다. 그게 우리가 만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말이다. 당연히 만나야지. 아니 오히려 더 감싸주고 싶었다. 고맙다고 눈물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무튼 그녀의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나에게 얘기하셨다. “OO이.. 이쁘게 잘 봐주고 사랑해달라..” 겉으로는 “네”라고 하며 웃고 있었지만 맘속에서는 너무 감사했고 정말정말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은 천주교 집안이라 혼배성사도 말하셔서 무조건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침을 원래 안먹으니까 안먹어도 괜찮다고도 하였다. 이런 말에 그녀는 감동했다고 했고, 식사를 마치고 같이 카페에서 커피한잔 하며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가족들은 집으로 가셨다. 그녀와 나는 다시 데이트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으며 “이런게 행복아닌가”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소화좀 시킬겸 좀 걷고 싶다 하여 청계천을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너무 행복하다고 표현하던 그녀.. 아니 오히려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여름이나 봄은 안되겠냐고 하던 그녀.. 자녀계획에 대한 얘기도 나누면서 “우리가 애기낳으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오빠가 사십쯤 되니까 빨리 낳아야 되지 않겠냐”고 말하던 그녀.. 나도 물론 빨리 하고 싶었다.. 나는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그녀는 일본어를 가르친다고 하던 그녀.. “우리동네가 아닌 오빠네 동네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던 그녀.. 함께 우리 동네를 걸으면서 초밥도 사먹고 우리 집에 또 놀러오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녀를 너무 이뻐하며 없는 것도 만들어 주실 정도로 아껴하시던 우리 부모님.. 한방차를 직접 끓이시며 여자친구네 집에 보내라는 우리 어머니.. 비싼 패딩 구입해서 옷이 안 맞아 아껴두던걸 그녀에게 그냥 주던 우리 어머니.. 떡국떡을 시골에서 썰어와 그녀의 부모님에게 전달하라는 우리 어머니.. 제주도에서 함께 찍은 커플사진을 인쇄하여 우리 둘에게 나눠주던 우리 아버지..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결혼에 대해 더 많은 확신을 주었고, 그녀와 있는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했고 우리 가족에게도 너무 감사했다. 빨리 그녀와 우리를 닮은 애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생일날 청혼을 하기 위해 비밀로 하고, 적금을 깨고 결혼반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300일 기념으로 비교적 비싼 호텔을 예약하고 호캉스를 하기위해 놀러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월 15일 할아버지 생신으로 시골집에서 자고 올라와 2월 16일 그녀를 만나기로 했었다. 그녀는 나에게 발렌타인데이 기념으로 줄 케이크를 만들고,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가족에게 줄 선물을 위해 그녀는 나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했었다. 원데이 클래스로 케이크를 만드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어머니 마음 또한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케이크와 선물을 받기로 한 그 날.. 그녀는 오늘 갑자기 만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녀의 행동이 이상했다. 언니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며 오늘 만나지 못할거라 말했다. 일단 언니네 가서 어떤 상황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듣고 보니 대포통장과 관련된 법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녀의 언니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그녀의 언니 계좌가 도용된 것 같다고 해서 우려되는 마음에 내가 뭔가를 도울 수 없겠냐고 제안하였다. 금전적인거나 어떤 것이든.. 너무 걱정됐지만 걱정하지 말라던 그녀.. 그 이후 카톡 답장이 늦고, 전화도 안 받는 그녀에게 혹시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계속 연락을 시도하였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무반응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카톡으로 헤어짐을 통보하며 떠났다.

 

알 수 없었다.

 

왜 헤어지는지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그녀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연락을 시도하였지만

문자, 카톡, 전화, 인스타 전부 받지 않거나 차단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절친과 그녀의 언니에게 인스타로 DM을 보냈지만 전부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친구에게 DM을 해서 그런 것일까 그녀에게 반응이 왔다.

그녀가 말하기 전 나는 그녀의 가족에게 분명 안 좋은 일이 생겼을 꺼라 확신했다. 어떤 일이 생겼든 나는 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도와드리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 말을 남겼다 “오빠도 눈치 챘겠지만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만나도 의미 없을 것 같다”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카톡으로.. 통보 후.. 헤어지는 것에 대한 이유를 묻자..

“헤어지는데 이유가 있냐”며 되묻는 그녀.. “성향이 다르다”, “미안하다”는 그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행복하다고..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그렇다면 최소한의 만나서 정리할 수 있는 배려정도는 주면 안되겠냐고 물었지만 “만나도 의미 없을 것 같다”고 말하던 그녀..

어떤 부부가 성향이 다 같을까.. 맞춰 가는거 아닐까.. 수없이 나에게 질문했지만.. 그래도 알 수 없었다. 혹시나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일까..... 문자를 남겨놓고 집 앞에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반응없던 그녀.. 대포통장은 나를 피하기 위한 변명이였던 것일까..

 

그리고 며칠 뒤 웃는 모습의 사진을 올리는 그녀..

 

아니 이게 현실인가..

 

이런 일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볼 법한 일들이라 생각했다. 아니 이런 일들은 없어야 한다. 슬픔에 잠겨 친구와 술을 마시고 헤어짐과 관련된 갖가지 추측을 하며 여러 얘기들을 나눴지만 알 수 없었다. 그녀의 형부 연락처를 알아내어 전화를 하였다. 나는 그 형부 아니 그 형님이 너무 멋있고 잘 어울리고 싶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녀의 언니네 가족은 내가 닮고 싶은 그런 부부였다. 각설하고 그녀의 형부에게 물었다. 그녀와 지금 헤어진 상태인데 알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알고는 있지만 왜 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언니 또한 그녀에게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가 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 충격 받으셨다고도 하셨다. 그렇게 그녀는 왜 헤어졌는지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알 수 있겠는가.. 내가 한 가족이 됐을 때의 모습을 그리고 계셨다던 형님의 말에 감동을 받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사실, 나는 그녀의 단면을 알고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감정이 더 강하기에 장점이 단점을 가려왔다. 그게 독이된 것일까... 그녀는 몰랐겠지만 그녀가 웨딩카페에 궁금한 것들을 글을 올렸다고 하길래 미래의 남편으로서 궁금해서 찾아봤다. 오히려 어떤 질문에 대해 내가 알아내서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편이라면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그녀는 닉네임을 바꿔가며 여러 가지 글을을 올리고 있었다. 항상 나에 대해 비교를 하는 글, 나의 경제력에 대한 글, 우리 부모님을 ‘이분들 혹은 어르신들’과 같은 존칭을 사용하지 않고 “이 사람들이랑 가족이 되는 건가”하는 표현들.. 상여금이 없는데 결혼생활 괜챦겠냐는 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글들을 보면서도 나는 참았고 또 참았다. 댓글에는 이런 분도 있었다. “글쓴이님 지금 남자친구가 이런 글을 올린다는 사실을 알고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대답 없던 그녀.. 하지만.. “그래 내가 부족해서 그런거지. 내가 부자는 아니지만 정말 행복하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 물론 정말 결혼과 관련된 질문들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느 날에는 훠궈를 먹으러 갔을 때 머리카락이 나와 노발대발하며 종업원과 사장님한테 갑질을 하던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이중인격적인 모습을 보고 실망을 했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내가 그녀의 그런 부분들을 고쳐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집은 결혼준비에 있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금전적인 지원을 해줄 수 없었다. 80~90%를 우리 집에서 감당해야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우리가 서로 좋다면 괜찮다고 하셨던 우리 부모님.. 그리고 그녀가 대학원 진학을 원하여 없는거 만들어서라도 지원해주겠다고 했었던 나.. 그리고 한 때 ”오빠는 외제차 살 생각 없냐“고 물었던 그녀.. 그리고 사귀기 전부터 “OO오빠네 잘 살아요?”라고 하던 그녀.. 이 사실은 친구에게 들었다. 항상 남들을 욕하고 헐뜯고 비교하던 그녀.. 헤어지고 나서야 그녀의 어두운 단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헤어진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그녀의 인스타에 복숭아 사진 한 개가 올라왔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다음 날에도 봤는데 두 개가 올라왔다. 그 이후 9개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그 이후엔 안 봤다. 그녀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나는 순간 의심했다. 그 복숭아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걸 봤을 때 다른 남자가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계선물을 받은 인증샷을 올렸다. 그녀는 이미 시계가 있었지만.. 주변에 물어보니 이건 남자가 준 것이라고들 하였다. 내가 딱봐도 그러했다. 그리고 하트이모티콘을 날리며 갑작스럽게 강릉여행을 다녀왔다는 글을 올리며.. 그 사람 앞에서도 나에게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던 그 웃는 모습의 사진이 올라왔다.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부자 되고 싶다”, “오빠 나 부자 만들어줘”, “오빠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해”, “오빠 아니면 이 회사에서 임원해”, “오빠 나중엔 나 일 안하고 싶어”, “오빠 살 못빼면 나 핸드백 사줘” 등...

 

부자를 만난 것일까.. 이미 시계를 갖고 있던 그녀에게 만난지 얼마 안 된 관계에서 50만원 상당의 시계를 선물하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말자, 적을 만들지 말자, 인생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말자, 남한테 편승하려고 하지 말자, 현재에 충실하자, 등.. 블로그를 하는 그녀는 항상 자기생각을 적어가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사람이 어찌 변하겠는가.. 그렇다 그녀는 그런 말들을 1년 전 아니 그 전부터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 해왔던 것이다. 남들에 대해 얘기할 때 어떻게 환승할 수 있냐고 묻던 그녀는 하이패스로 간 것이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나에게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사람을 흔히 ‘지킬 앤 하이드 신드롬’이라고 하나보다.

 

그녀의 가치관이 인생에 있어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면 처음부터 돈 많은 남자를 만났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고백했을 때 나를 차버리거나 적어도 결혼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정리했어야 했던거 아닌가? 왜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인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오히려 결혼하기 전에 헤어졌으니 하늘이 도왔다고.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교훈을 얻은 값비싼 1년이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