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돈 좀 있죠?”
4년만의 전화였다. 받기가 죽어도 싫었지만 그래도 받았다. 어떤 개소리를 할지 궁금해서. 그런데 받자마자 돈 타령을 들을 것 같았다면 그냥 안 받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없다고 하며 확 끊었다. 1시간 후,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았다.
“너 돈 있잖아.”
“어디서 주워듣고 지랄인데?”“엄마가 너 돈 모아뒀댔어. 그거 지금 당장 쓸 거 아니면 줘봐.”
미친다. 빌려달라는 말도 시원찮을 판에 그냥 달라는 말투. 아무래도 엄마한테만 슬쩍 말한 내 돈을 그대로 얘기했나보다. 이로써 나는 엄마마저 잃었다.
나에겐 아빠, 엄마, 오빠가 있었다. 물론 중학생 때 오빠는 잃었다. 웬 미친 정신병자만 있을 뿐. 중학생 여름방학이었다. 엄마아빠는 당연히 일을 하러 나갔고, 나와 오빠는 각자 방에서 쇼핑과 게임을 했다. 오빠의 친구들이 놀러오고 나는 방문을 잠갔다. 오빠 친구들은 양아치 무리였고 오빠는 그 무리 중에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것 같다. 밖에서 오빠의 친구들이 라면을 끓여오라는 둥 심부름을 시키는 소리가 났다. 3시간 후, 오빠의 친구들이 가고 난 뒤였다. 네이트온으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날따라 오빠의 친구들이 짓궂게 굴었는지는 몰라도 오빠는 화가 나있었다. 평소였다면 혼자 욕을 하고 말 인간이 내 방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문고리까지 부스기에 이르렀다. 나는 겁이 나 친구에게 10분이 지나도 답이 안 오면 집으로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 문을 열자 오빠의 구타가 시작됐다.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어느 남매들처럼 할 얘기하고 마는 그런 사이였다. 머리와 뺨을 손바닥으로 맞고, 발로 다리와 허리를 차였다. 맞는 부분마다 불에 타는 것 같았다. 주먹인지 손바닥인지 분간이 안 갈 즈음에 경찰이 왔다. 친구가 불러준 경찰이었다. 정신을 차린 오빠가 허둥대는 동안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경찰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생각나진 않는다. 그냥 경찰이 뭐라 말하는 소리와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정신을 놓았다. 일어나보니 상황은 이미 끝나있었다. 경찰은 없고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아빠는 소리를 지르며 오빠를 때렸다. 내가 맞은 것보다 더 맞는 것 같았는데 속상하진 않았다. 오빠는 싹싹 빌며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했다.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러고 나는 다시 잤다. 잠이 왔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오빠와 나는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옥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에게 오빠는 감옥을 언제 가냐고 해도 엄마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를 혼냈다. 고등학생이 되고 알았다. 엄마아빠가 오빠를 용서해준 거라는 것을. 그냥 별말 안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오빠가 없으니까. 내가 17살 때 오빠는 대학을 갔다. 썩 좋은 대학은 아니었으나 나도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오빠는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돈을 벌어오지 않았다. 그저 엄마아빠의 돈만 썼다. 그래서 내가 대학을 가려고 할 때에 엄마아빠는 안된다고 했다. 오빠의 학비만으로도 등골이 휜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저축하는 방법을 몰라 알바비를 받는 족족, 월급을 받는 족족 아빠에게 주었다. 아빠는 대견하다며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통장은 당연하게 오빠의 결혼비용으로 쓰였다. 오빠는 일찍 결혼했다. 사고 쳐서. 대학 졸업 후, 취준 스터디에서 만난 언니와 하루밤 보내고 아기가 덜컥 생겼다고 했다. 쓸데없는 그 책임감 때문에 내가 모아온 돈은 모두 오빠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게 억울해 아빠에게 대들자 아빠는 나를 때렸다. 오빠는 장남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21살에 나는 아빠를 잃었다.
22살에 꽤 좋은 직장을 얻었다. 월급도 괜찮게 나왔다. 그리고 새언니와 오빠는 엄마아빠가 준 돈을 들고 날랐다. 연락도 받지 않았다. 새언니가 부른 배로 어딜 도망이나 가겠냐며 웃던 오빠의 말이 사실이 되었다. 지도 같이 도망갔지만. 엄마아빠의 노후자금이 사라지자 나를 찾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 월급이 얼마인지 묻고 우리 집에 사니 월세를 내라고 했다. 다행히 아빠에게 월 40만원을 주면 엄마는 그대로 나에게 돌려주었다. 사실 나간 돈은 없었다. 몰래몰래 엄마에게 20만원씩 주었다. 통장에 또 차곡차곡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4년간 안 먹고, 안 사서 돈을 모았다. 엄마와 집을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또 엄마를 잃는다. 알고 보니 오빠가 사고를 냈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돌다가 여자 하나를 쳤다고 했다. 꽤 많이 다쳐서 상대 쪽에서 많은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낱 중국집 배달원과 애 엄마가 어디 돈이 있을까. 엄마아빠에게 전화를 미친 듯이 했겠지. 엄마는 내가 돈을 꽤나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돈 없다며 오빠의 전화를 끊고 차단했다. 어차피 내 회사의 위치는 가족 중 아무도 모른다. 물어보지를 않았으니까. 오늘 연차를 내고 짐을 쌌다. 내 짐이라곤 캐리어 하나에 꽉 찬다. 나는 집을 나간다. 친구 집에 얹혀살다가 집이 구해지는 대로 나가기로 했다. 나는 가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