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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인생 잘 버텨왔지만 너무 힘드네요 꼭 읽어주세요

쓰니 |2020.04.04 02:06
조회 778 |추천 7
안녕하세요 ㅎㅎ
십 몇 년동안 많은 힘든 일을 겪고 견뎌왔었지만 그냥 너무 속상한 마음에 첨으로 네이트에 회원가입하고 글을 써봐요
길어도 언어력이 조금 딸려 글 읽기 불편해도 이해해주세요 털어놓을 곳이 이곳밖에 없어서요
저는 올해 21살 여자에요
저는 8살때 부모님 이혼 하시고 엄마는 그 동안 모았던 재산 다 우리를 위해 놔두고 혼자 집을 나가셨어요 엄마 혼자 다른 지역에서 이모 집에 얹혀 살고 노가다 하시면서 돈을 버셨더라구요 이혼을 하게 된 계기는 집안 형편도 있고 엄마 아빠랑 애초에 성격이 안맞는 부분도 있고해서요 아빠는 제가 5살?정도 일때부터 일을 하지 않으셨거든요 원래는 그래도 나름 괜찮은 직장에 다니셨는데 저희 지역의 경제가 아마 그때 급격히 안좋아졌을 때였을거에요 많은 공장들이 사라졌고 시위하는 곳도 많았었고 실업자들도 많이 증가했었던 시기였었죠 그래서 저희 아빠도 잘리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셨어요 남들은 그래도 삼촌들이나 주변 사람들 보면 그래도 다른 직장 구해보고 힘든 일이라도 뛰었었는데 아빠는 힘든 일과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으실려고 했고 원래도 이름있는 공장에서 일했던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일을 할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도 커가면서 아빠가 통화하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힘들것 같다는 이유로 일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초반에는 버틸만 했죠 원래 집에 남아있는 재산들이 있었으니까 그 재산으로 먹고 살고 했어요 근데 돈은 쓰기만 하면 사라지는게 당연하잖아요? 당연히 얼마 가지 않아 돈은 얼마 남아있지 않게 되었죠 게다가 밥,술과 야식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아빠는 식비가 다른 사람들 보다 많이 나가죠 몇 년을 집 밖에 잘 안나가시고 놀기만 하다가 이제 잠깐 잠깐 일을 나가시지만 1년에 3개월을 일 할까말까 하는 정도로 일을 나가세요 집 안에 돈이 없다보니 저는 용돈이란걸 제대로 받아 본 적도 없어요 집 안 형편도 어렵고 어렸을때부터 부부싸움을 매일매일 보고 자랐고 따뜻한 사랑을 받고싶었던 저는 중2-3때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왔었어요 제가 초6때 아들,딸내미를 보기위해서 저희 지역으로 내려와 작은 원룸에 사시면서 일을 하러 내려온 엄마랑 정신 병원에 다니면서 진료를 계속 해나갔죠 하지만 제 경우에 정신과 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힘들더라구요 제가 힘들어했을때도 아빠는 무심했어요 제가 먹는 약이 어떤 약인지 약 봉투에 쓰여져있는 병원이 어떤 병원인지 궁금해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쟤는 왜 저럴까 왜 이렇게 엄마를 닮아서 비정상적일까 하고 중얼중얼 거리시기 바빴어요 저는 너무 실망스러웠죠 그래도 딸인데.. 저를 딸로 생각하는 지도 솔직히 의심스러웠어요 그렇게 커왔어요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남들이 하는거 잘 못했었고 늘 비교 당하기 일수였죠 그렇지만 늘 곁에서 친구들이 별 볼일 없었던 저를 응원해 주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묵묵히 있어주는 친구들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거 같네요 우울증은 운동으로 극복했어요 운동을 하면 긍정적인 호르몬?이 나온다는 엄마의 조언으로 엄마가 헬스장을 끊어 주어서 중3여름방학때 정말 좽일 런닝머신위를 달렸었어요 덕분에 여름방학 동안 9kg을 감량하고 자존감도 어느정도 되찾고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어요 물론 늘 형편은 어려웠고 많이 굶는 일도 있었지만요 수능을 치고 난 뒤 저는 바로 엄마가 다니시는 공장에 들어가서 대학 입학 전까지 일을 했었어요 아침부터 밤9시까지 계속 일을 했었죠 물론 아빠는 그때도 놀고 있었어요 정말 쉴틈 없이 일을 한 덕분에 배우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저는 대학 기숙사비도 마련하고 등록금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빠 엄마 용돈도 드렸고 저도 드디어 쇼핑이란걸 첨으로 해볼 수 있었어요 제가 스스로 돈을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때 깨닫게 되었죠 드디어 예쁜 옷도 입을 수 있었고 예쁘게 꾸밀 수도 있게 된게 너무 행복했어요 그리고 방학이 되면 저는 늘 일을 했었어요 여름에는 홀 서빙을 했고 겨울에는 국가근로를 했었어요 돈이 어느정도 생겨 아빠엄마한테 비싼 홍삼원액을 선물했었는데 엄마는 무척이나 고마워 하셨지만 아빠는 고맙다는 한 마디 없었어요 원래 표현을 잘 못하시기에 조금 서운했지만 이해는 했었어요 근데 저는 아빠에게 그 홍삼을 드렸었는데 아빠는 그걸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렸어요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아빠가 아빠 돈으로 산것처럼 해서 드리더라구요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사실 제가 일부러 우울증을 앓았을때 안봤어요 명절일때도 일부러 안갔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미웠었거든요 오로지 자기 아들만 잘 나서 며느리들 고생시키는 모습들이 언젠가 그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생때 엄마가 저희 지역에 내려오셨을때 할머니가 저를 무작정 차를 태우시고 엄마한테 가자며 했었죠 저는 그때 어렸지만 어느 정도 눈치는 있었던 테라 할머니를 엄마한테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었죠 그런데 할머니와 같이 오신 5명 정도의 다른 할머니들과 제가 엄마집 앞에 있는데 아이가 집 비밀번호를 몰라 울고 있다라며 엄마한테 거짓말을 해서 집 주소를 알아냈었어요 저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 자리에서 울었었는데 그 울음소리까지 엄마한테 들려주면서 상황을 꾸며냈었어요 저는 그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고 화가 났었지만 많은 할머니들 틈에서 어찌 할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네요 집 주소를 알아낸 할머니와 다른 할머니들은 며칠 밤을 내내 엄마 집 앞에 잠복하면서 엄마를 기다렸었어요 이혼 하기 전에도 머느리들을 많이 괴롭히셨으면서요..
할머니가 엄마한테 항상 하는말은 그거에요 애들을 위해서 다시 재혼해라 돈은 너가 내 아들보다 쪼끔 젊으니 니가 벌면 되지 않냐 머 이런식의 내용이죠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늘 이런식이에요 항상 아들만 잘났고 저와 여자사촌들과 남자 사천들을 대하는 태도와 설날의 세뱃돈 그냥 모든 것이 차별적이에요 머 이건 그 시대 사상이기에 제가 머 어찌할바 있을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도 저를 미워하세요 왜냐하면 아빠의 말 때문이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빠가 정말 성실히 일을 하시는 줄 아시고 대학 들어간 저희 한테 용돈도 주시는 줄 아세요 단 한번도 받아본적 없는데 말이죠 아내 없이 자식 둘을 열심히 키우는 줄 아는데 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죠 할머니가 보내 주시는 반찬들 냉동고기들 다 아빠의 술과 야식으로만 쓰기 바쁘고 가끔이나만 번 돈들 역시 당첨되지도 않는 로또나 야식들로 쓰기 바빠요 아마 그 야식값만 줄이고 모아놨으면 두둑한 적금이 하나 모였을텐데.. 제 입장에서는 화가나요
좀 막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말해 주고 싶어요 2명의 며느리들을 잃으신건 할머니가 아들을 잘 키우지 못한 벌이라고 제가 이런 상황 속에서 자랐다고 아빠가 성실하지 않으시다는것을요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통화하실때면 늘 일하는 척을 해요 현실은 집에서 좽일 티비보는게 다이지만요 아빠는 여기저기 돈도 많이 빌렸어요 엄마한테나 할아버지 한테나 은행에서나 그래서 빚이 많은데 갚으실 생각은 전혀 안하세요 가끔이나마 번 돈은 다 쓰기 바쁘시죠 노후는 제가 번 돈으로 사실 계획이신거 같은데 화가 나요
이런 아빠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빠 역시 아빠를 보고 그대로 자라서 인지 똑같아요 오빠는 사교성도 없어서 멀리 내다보지도 못하고 스펙하나 없이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고 살아요 식습관도 쏙빼닮아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면 잘 먹지도 않고요 이런 집에서 사는게 너무 힘듭니다 당장 엄마집에서 살고 싶지만 엄마 집은 정말 작은 원룸이라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한 번 하소연 해봤어요 아직 다 털어 놓고 싶은게 많지만 이 정도만 할려구요 그래도 조금은 시원하네요
글이 너무 길고 문장이 두서 없어서 다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화가 났었는데 조금은 시원한 기분이네요
추천수7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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