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보이였다. 틈만 나면 무릎이 까지도록, 등짝이 아프도록,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온몸을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려 대던. 팔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허공을 향해 두 다리를 차올려 정지동작으로 ‘나이키 포즈’를 멋지게 만들어 내던. 헐렁한 힙합 바지를 입고 거리에서 춤을 추던 춤꾼은, 이제 운동화 대신 발레 슈즈를 신고 화려하게 무대를 수놓는 발레리노가 됐다. 지난달 31일 열린 동아무용콩쿠르의 심사 결과가 발표된 후 부문별 금상 수상자 중 발레부문 수상자 이동훈(21·세종대 무용과 3년)은 단연 화제였다. 비보이 출신이라는 전력도 독특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학에 입학해 무용을 전공하기 전까지 그가 받은 발레 교육이라곤 3년간 사설 발레 학원에 다닌 것이 전부였다는 점이다.》 ○ 고교시절 학원서만 배운 기량으로 국내대회 휩쓸어 발레 영재들이 대부분 예중이나 예고, 혹은 해외 발레 스쿨 출신인 것과 달리 인문계 고교를 나온 그는 개인 레슨조차 받아 본 적이 없다. 오로지 학원에서 배운 발레로 그는 고교 시절 이미 10여 개의 국내 콩쿠르를 석권했다. 제도적인 교육의 뒷받침이 없어도 재능은 꽃필 수 있는 걸까. 그의 어머니 임순자 씨는 “내가 직장에 다니느라 바빠서 애를 잘 챙겨 주지 못했고 절대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지원을 해 준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는 얘기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초인(超人)’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던 비보이였다. 어느 날 무용과 출신이던 체육 교사가 그의 춤을 눈여겨보곤 “제대로 춤을 배워 보라”며 서울에 있는 한 발레학원을 소개해 줬다. “비트가 강한 비보이 음악에 비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추는 발레가 좀 심심하게 느껴졌고 스트레칭 동작은 너무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발레가 싫지 않고 재미있었다”는 것이 그의 기억이다. 오히려 처음에 반대한 사람은 그리 여유있지 않은 가정 형편을 걱정해야 했던 엄마였다. 중3 겨울방학 때 발레를 시작한 그는 서울의 예고들보다 비교적 학비가 싼 지방 예고에 진학했지만 무용보다 방송 연예 쪽이 강했던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자 1학년만 마친 후 발레 학원과 가까운 서울 경기고로 전학했다. 집(경기 성남시)이 멀다 보니 오전 5시 반이면 일어나 서울로 등교해 남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고, 방과 후 다시 발레 학원으로 갔다가 밤 12시나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생활을 그는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중3 겨울방학 때부터 고3 때까지 3년 내내 그를 가르친 ‘yj발레피플’의 최윤정 원장은 “처음엔 주변에서 ‘왜 저런 애를 학생으로 받았느냐’고 물어 볼 정도로 동훈이는 발레를 하기에는 신체 조건이 좋지 않은 아이였다”고 했다. ○ 10%의 재능을 꽃피운 90%의 성실함 최 원장은 “발레를 가르치다 보면 70%의 타고난 재능을 갖고도 30%의 노력을 하지 않아 실패하는 아이가 수두룩하다. 동훈이는 10% 정도의 재능을 90%의 성실함으로 활짝 피워 낸 경우”라고 얘기한다. 이동훈 스스로도 “키가 큰 것(181cm)만 빼고는 신체 조건이 발레를 하기에는 안 좋다”고 인정한다. 발레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신체 조건 중 하나는 턴 아웃(turn-out·골반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두 다리가 이루는 각이 180도가 되도록 하는 발레의 기본 동작). 박세은을 비롯해 이른바 ‘발레 영재’들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턴 아웃이 쉽게 되는 체형이지만 그는 턴 아웃이 안 되는, 발레에 부적합한 체형이었다. 하지만 그는 독하게 고통을 참으며 조금씩 자신의 신체 조건을 바꿔 냈다. 심지어 그는, 발바닥이 옴폭 파이고 발등이 아치형으로 튀어나와야 발끝 라인이 매끈해 보이는 발레에서는 최악인 평발이다. 게다가 비보이로 울퉁불퉁해진 상체 근육도 발레에 적합한 매끈한 몸으로 바꾸기 위해 그는 남보다 두 배 이상 기초 훈련을 했고, 튀어나온 무릎 때문에 다리에 무거운 생수통을 얹어 놓기도 했다. 이번 콩쿠르에서 그의 춤은 “당장 해외 무대에 선보여도 우승할 만큼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심사위원 김인숙 서울기독대 무용학과 교수)는 평을 들었다. 콩쿠르 본선에서 그는 유례없이 높은 24.4점(25점 만점)으로 본선 진출자 중 최고점을 받았다. 물론 그에게도 힘들었던 순간이 없지 않았다. 한때 신체 조건과 가정 형편 등 타고난 환경 때문에 갈등하기도 했다. 중3 때부터 같은 학원에서 발레를 배운 한 친구는 누가 봐도 이상적인 발레리노의 신체 조건을 타고났다. 멋진 몸을 가진 그 친구와 나란히 비교될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좌절했다. 친구가 해외 발레 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걸 보면서 그는 초조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올해 동아무용콩쿠르 무대에서 선의의 경쟁자로 만났다. 그는 금상을, 친구는 동상을 받았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친구가 있어 내가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나를 자극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라이벌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중요한지도 깨달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