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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일 남녀관계

teppei1997 |2020.05.04 20:16
조회 519 |추천 1

오늘 싸강 과제 하다가 신기한 사실을 발견해서 글을 쓰려고 해 ㅋㅋ

바로 일제시대 조선과 일본의 남녀관계야

우리의 상식으로는 보통 강대국 남성들이 약소국 여성들을 현지 처로 두거나 임신시키고 본국으로 도망가는게 맞잖아? 근데 조선과 일본은 사뭇 달랐어.

우선 결혼한 부부 수를 살펴보면 조녀일남 커플의 수는 매년 200건 미만이었고 특이하게도 조남일녀 커플의 수가 매년 1000건 이상이었어. 책을 찾아보니까 많은 사연이 나왔어 ㅋㅋㅋ

 

 

전문학교 교사였다가 해방후 문교차관까지 맡은 S씨는 도쿄 유학 중 하숙집 딸 다카하시씨랑 사귀며 하숙비를 내긴 커녕 다카하시네 집에서 학비까지 다 내줬는데 졸업하자 여자를 버리고 귀국했다.

 

1935년 청주의 윤곡채는 기다 마야코와 혼인한 상태에서 다른 일본인 미카 미야코와 내연 관계로 두 아이를 낳은 것이 발각됐다. 마야코의 친오빠가 조선 경찰서까지 와서 윤곡채를 불러내 사과하지 않으면 동생과 조카들을 데리고 돌아가겠다고 담판을 벌였다.

 

1927년 메이지 대학생 서원록은 도쿄역에서 무라카미 하루에게 우산을 받쳐준 인연으로 연애를 시작하고 하루는 가출해서 서원록과 동거했다. 하루의 부친이 경찰에 신고하여 1년만에 딸과 서원록을 붙잡았는데 그제서야 서원록이 조선인임이 밝혀졌다. 하루는 임신한 몸이라 부친의 반대에도 결혼을 결심하여 조선까지 건너왔는데, 알고보니 서원록은 조선에 처자식이 있었다. 하루는 충격을 받아 유산하고 서원록과 서원록의 아버지가 첩을 두는건 조선의 풍습이라며 하루를 설득해 하루는 그의 첩이 되어 조선에서 계속 살았다. 

 

1932년 츄오대학에 유학중이던 강기민은 도쿄 찻집에서 알게 된 우스다 타마코를 함께 여행중에 강간하여 이후 결혼했다. 강기민은 조선에 처자식이 있었지만 타마코는 그가 조선인이라는 것도 몰랐고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알게됐다.

 

1911년 경성(서울)의 지성연은 의학전문학교 유학 시절 사귄 무라카미 하루요와 조선에서 결혼하고 장모까지 조선에 데려와 함께 살았다.

 

한명의는 10세때 부친을 잃고 미장일을 배워 일본으로 건너갔다. 미용실 사장님에게 실력을 인정 받아 1932년 사장의 외동딸 다치 소노에와 결혼했다.

 

1912년 경성에서 광산업을 하던 30세 김형박은 같은 업에 종사하던 하마다씨의 16세 딸 하마다 후쿠와 결혼했다.

 

최쇠돌은 1919년에 일본 후지노 가문에 서양자로 입적 및 혼인하여 후지노 쇠돌로 개명하고 후지노 부인에게서 1924년까지 세 딸을 낳았다. 쇠돌은 조선으로 돌아와 1925년 이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자식을 낳았다가 1927년 후지노 가문에게서 파양 및 이혼을 당했다. 쇠돌의 이중결혼과 4명의 딸에 대한 호적정리로 조일 당국은 골머리를 앓았다.

 

여기까지 이정선 作 동화와 배제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에 실린 실제 사례들이야..

 

당시 조선남자들은 일본여자들이랑 연애하고 처첩으로 거느리고 바람피우고 버리고 다 했어 .. 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 정부는 처음에 내선결혼으로 내선일체에 도움이 될 줄 알고 좋아했는데 이런 사례가 많아서 당황했대.

아 참고로 내는 내지(일본) 선은 조선이란 말이야.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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