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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설화(雪化)

sOda |2004.02.15 05:31
조회 902 |추천 0

설화(雪化) 

 

 

 

“무엄하구나! 우리가 누군줄 알고 감히 칼을 들이 미는게냐!”

 

“저희는 명을 받은것뿐입니다. 어서 비키시지요!”

 

 

대문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젊은 귀족들과 병사들간에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뒷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원이였다.

 

 

“담이야, 아버님! 어서 이리로...!”

 

“아니, 자네가 어떻게...”

 

“오라버니...!”

 

 

앞 마당에서 병사들과 입씨름을 하며 시간을 버는 젊은이들은 원이가 데려온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어서 저를 따라오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뒷마당에는 원이가 준비해둔 말과 호위병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난 가지 않겠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어찌 도망을 가란 말인가!”

 

“안됩니다! 일단은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제가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알아본 후에 연락드릴테니 우선은 제 말대로 하십시오.”

 

“아버지, 원이 오라버니 말씀대로 하세요!”

 

“담이를 생각해서라도 아버님이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필시 이것은 무슨 착오가 있거나, 아니라면... 모함이 분명합니다. 지금 잡히는 것은 저들 뜻대로 되는 것이니 시간을 버셔야 합니다.”

 

“죄인들이 도망친다!”

 

“뒷쪽이다! 모두 잡아라!”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담이의 아비는 할 수 없이 말에 올랐다.

 

원이는 담이를 태운 후, 호위병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원이와 담이, 그리고 담이 아비를 태운 말은 세곳으로 나뉘어 달려 나갔다.

 

병사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추적을 어렵게 하려는 원이의 계획이었다.


 

 

8.  짝잃은 귀고리


 

챙!

 

날카로운 쇳소리가 정적을 가르며 찢어지듯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곳을 따라가자, 왠 복면의 청년이 병사들에게 에워싸여 있다.

 

숫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기세는 만만치가 않았다.

 

병사들도 청년의 무술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한 듯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칼을 버려라!”

 

 

병사 하나가 용기를 내 소리를 지르자, 청년은 대답대신 날 듯이 공중을 뛰어 오르더니 병사의 창을 두동강내 버렸다.

 

칼을 뽑는것도, 다시 집어 넣는것도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포위진이 넓어졌다.

 

청년은 그 틈을 타 땅을 몇 번 딛지도 않고, 병사들 사이를 바람처럼 뚫고 사라졌다.

 

병사들은 그저 팔을 늘어뜨린채 멍하니 청년이 사라진 곳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복면의 청년은 주위를 살피는 기색도 없이 왠 집 담을 훌쩍 넘는다.

 

복면을 끌어내리자, 휘의 얼굴이 드러났다.

 

휘는 자신이 왜 이렇게 초조한지 알 수 없었다.

 

평소답지 않게 서둔 바람에 마을 어귀에서 병사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는가...

 

집안 어느구석이나 사람의 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가구들이며 뜯어진 문짝이며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있는걸로 보아 이 집에 폭풍같은 불행이 지나갔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휘는 문득 발에 밟힌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주인에게서 떨어진 귀고리 한짝이었다.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귀갑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걸로 보아 종의 물건은 아니었다.

 

 

“네 주인은 어디갔느냐?”

 

 

휘는 귀고리를 손에 꽈악 움켜쥐며 한숨을 쉬었다.


 

 

9.  담이의 행방


 

한편...

 

결 또한 사방으로 담이를 찾고 있었다.

 

알아본즉 담이의 부친이 세금을 속이고 빼돌렸다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담이는 계루부로 보내는 노비명단에 끼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도착한 노비들 중에 담이는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계율을 어긴자는 제가회의에서 처리하도록 되있지 않은가.

 

거기다 돈을 빼돌렸다면 사형이 아니라 열배로 갚으면 되는 일이다.

 

틀림없는 모함이다...

 

그렇다면 담이는 대체 어디로 간것일까?

 

휘가 관노부로 들어가 행방을 쫓고는 있지만 반드시 찾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우리 부족의 눈치를 살피는 관노부 중앙에서도 담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다행인 일이다.


때는 벌써 혹한을 알리는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산간지방에는 벌써부터 얼음이 얼고, 마을로 내려오는 들짐승도 줄었다.

 

 

“아니, 이렇게 추운데 방에 있지 않고 왜 나와 있는거냐?”

 

“오라버니!”

 

 

담이는 마루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다 낯익은 목소리에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아옥이는?”

 

“언덕배기에 갔어요. 마지막으로 나물 좀 캐야겠다구요.”

 

“들어가자.”

 

 

담이는 서둘러 원이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는요?”

 

“절노부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가셨다고 들었다. 너무 걱정마라. 경계만 넘으면 안전하실거다.”

 

“아아... 무사하셔야 할텐데...”

 

 

담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모든일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

 

병사들이 들이닥치고, 아버지를 따르던 사람들이 병사들과 뒤섞여 정신없이 혼잡한 가운데 담이는 누군지도 모를 손에 이끌려 마을을 빠져 나왔다.

 

마을이 멀어지고 동이 틀 즈음에야 담이는 말을 몰고 있는 사람이 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시던 아버지를 반 강제로 말에 태워 마을을 빠져나가게 한것도 원이 오라버니의 사람들이었다.

 

원래는 절노부의 경계에서 합류하기로 되있었으나 며칠사이에 담이를 찾는 내용의 방이 전국에 퍼졌고, 경계가 삼엄해져 담이만 몸을 숨기게 된 것이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지요? 아버지는요? 우린 어떻게 해야죠...?”

 

“......”

 

 

원이로써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담이가 무사히 절노부로 들어간다고 해도,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지지 않는 한, 살아서 관노부땅을 밟지 못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와 담이는...

 

원이의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가득차는 그때, 아옥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아가씨! 아가씨!!!”

 

“무슨 일이냐?”

 

“허억허억... 아이고, 원이님! 저, 저, 저기... 언, 언덕아래로...!”

 

“차분히 말해야지. 무슨 일이냐?”

 

“벼, 병사들이...!”

 

“뭐야?”

 

 

원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쳐 나왔다.

 

 

“병사들이라고?”

 

“예! 벼, 병사들이에요. 줄잡아 삼십은 되보여요! 어, 어떡하죠?”

 

“담이랑 아옥이는 옷만 더 껴입고 나오거라. 어서 여기를 떠야겠다.”

 

 

원이는 자신의 말에 담이를 태우고, 다른 말에는 아옥이를 타게 했다.

 

 

“오라버니는 말도없이 어쩌시려구요?”

 

“난 병사들을 따돌려야겠다. 사냥하러 왔다 낙마하여 말을 잃어 버렸다고 할 참이다. 너희는 되도록이면 숲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거라. 내가 틈을 봐서 뒤따라가겠다. 혹시 내가 못 따라잡으면 절노부 경계에 파사달이란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중림이란 약재사를 찾아라. 내 이야기를 하면 은신처를 마련해 줄거다. 내가 도착할때까지 그곳에 숨어 있거라.”

 

“알았어요. 오라버니, 몸조심하세요.”

 

“내 걱정은 말고, 아옥이 넌 담이를 잘 돌봐야 한다-”

 

“걱정마십시요~”


 

 

10.  죽음을 피해


산행은 힘들고 고달팠다.

 

쉬지 않고 달리느라 말도, 말을 탄 담이와 아옥이도 완전히 지쳐 버렸다.

 

거기다 병사들이 마을마다 깔려있어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친 담이와 아옥이는 수풀에서 나는 기척도 모른채 힘든 발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때 수풀뒤로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리고 있었다.

 

 

“저 계집이 분명하지요?”

 

“그래- 맞는 것 같다.”

 

“지금 나가서 포박을 씌울까요?”

 

“계집이 둘이니 성급하게 나섰다가는 진짜를 놓칠수도 있다. 기회를 봐서 동시에 둘을 잡아야 한다.”

 

“큭큭... 알겠습니다.”

 

 

담이와 아옥이의 뒤를 따라 수풀뒤의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밀하고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방심한 것이 있었으니, 아무리 담이가 많이 지쳐있다고는 하나, 오세때부터 무술을 익힌 몸이라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이는 뒤쫓는 기척을 알아차렸다.

 

 

“아옥아... 고개 돌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예? 예...”

 

“내가 말에 박차를 가하면 동시에 너도 힘껏 달리되, 산 아래쪽으로 뛰어.”

 

“예?”

 

“시키는대로 해. 너도 살고 나도 살려면 그 수 밖에 없어.”

 

“아, 아가씨!”

 

“내가 꼭 너를 다시 찾을테니까... 안정된 날을 골라서 파사달로 가도록 해. 알았지? 살게되면 꼭 다시 만나자...”

 

“아가씨...!”

 

 

아옥이의 말에 울먹거림이 섞여 있었다.

 

 

“뛰엇!”

 

 

담이는 힘껏 말의 궁둥이를 발로 찼다.

 

아옥이도 동시에 말머리를 돌리며 아래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수풀뒤의 그림자들은 당황했다.

 

 

“뭐, 뭐얏! 계집들이 눈치챘다!”

 

“누, 누구를 잡지요?”

 

 

이때 달리던 담이가 말을 세우고 뒤로 돌았다.

 

 

“저 계집이닷!”

 

 

아옥이는 달리는 중에도 담이가 걱정되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아옥이는 담이가 적들에게 일부러 얼굴을 보이기 위해 멈춰섰다는 것을 알았다.

 

 

“아가씨!!!”

 

 

아옥이도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담이는 다시 말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적들을 유인함과 동시에 아옥이를 떨쳐내기 위함이리라.

 

아옥이는 흐느끼며 멈췄던 말을 달렸다.

 

‘아가씨, 꼭 살아남으셔야 해요...! 아가씨가 살아만 계신다면 어디든 이 아옥이가 쫓아 갈거에요...!’

 

담이는 위협적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활이다!

 

화살을 피하기 위해 갈지자로 뛰면 속도가 느려져 금방 잡히고 말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담이는 화살에 맞을 것을 각오하고 몸을 숙인채 최대한 속력을 내 달리기 시작했다.

 

원이 오라버니의 말은 준마다.

 

주인이 죽을각오를 한 것을 알았는지 지친기색 없이 용감하게 달리고 있었다.

 

 

“놓치겠습니다!”

 

“죽여도 좋으니 겨냥해서 쏴라!”

 

“죽어도 포상금이 나옵니까?”

 

“놓치는것보단 시체라도 들고가는게 한푼이라도 받지 않겠냐?”

 

“그건 그런데... 우리가 죽였다고 벌을 받으면 어쩝니까?”

 

“멍청한 녀석. 우리가 죽였다고 말할 사람이 여기 있냐?”

 

“어, 없습죠! 얘들아! 활을 쏴라!”

 

 

화살이 더욱 거센 기세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담이는 순간 몸을 틀어 휘가 주었던 단검을 날렸다.

 

단검은 정확히 검이의 머리를 노리던 사수의 가슴에 꽂혔다.

 

얼마나 치열하게 달렸을까.

 

담이는 오로지 앞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지만 뒤따르던 자들은 숲의 양쪽에 나 있는 비석을 보았다.

 

일종의 관문임을 알리는 경고문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비석을 발견한 순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 온통 얼굴을 가린 청년 서넛이 머리위로 뛰어내렸다. 정확히 넷이었다.

 

넷은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동안 벌써 여러명의 머리를 베거나 뚫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담이를 뒤쫓던 자들은 전멸했다.

 

네 청년은 말도 없이 나무들을 갈지자로 딛으며 땅을 딛지 않고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들이 소리없이 움직이는 계루부의 ‘달나미’라는건 후에 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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