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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쉬웠다

여름 |2020.06.27 03:13
조회 390 |추천 3

손바닥만 보고도 사랑에 빠지던 시절이 있었다.

덜컹 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네 어깨에 기대어 있을 때 사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듯이 쿵쾅거려서 입을 꾹 다문채로 자는 척 네 어깨를 빌렸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내 머리가 네 어깨를 벗어나려 할때 따듯한 온기가 이마에 머물렀다.
얼굴을 까마득 덮은 머리칼 사이로 실 눈을 떠서 마주한 것은 네 손바닥 이었다.

크고 단단하고 따듯한 손바닥.

얼굴에 일순 열이 오른 것은 더운 날씨 탓이 아니고,
손바닥이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네 손바닥은 버스가 덜컹 거릴때마다 내 이마를 찾아왔다.
조심스럽고 아주 다정한 온기로 사정없이 흔들릴 뻔한 내 이마를 받쳐주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당연하게도 사랑에 빠졌다.
손바닥에 빠져선 금새 나는 네 전부를 사랑했다.

장난스러운 웃음 소리도,
다른 곳은 전부 땀에 흠뻑 젖어도 유난히 보송하던 손바닥도,
내 걱정에 눈물을 쏟아내던 네 동그란 눈도,
거칠게 수염이 난 삐죽거리는 턱도.

세상에서 널 사랑하는 게 가장 쉬웠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얼굴이나 외형, 키, 사는 곳, 그런 무수한 선택지를 따지며 만남을 시작하지 않아도 사랑에 빠지던 시절.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너여서 쉽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때 나였기에 쉽게 널 사랑한 것을 깨닫는다.

그 때 나는 사랑이 쉬웠다.

추천수3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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