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글에 시동생을 떠맡게 되었다는 글 보고 저랑 너무 비슷해서 써봅니다. 그 글에 댓글로 쓰다가 길어져서 새로 써요.
글 길어요!
저희 부부 맞벌이고 아이는 그 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저희 남편은 작은 섬 출신이고 저희 결혼할 때 늦둥이 막내 시동생이 초등학생이었어요. 결혼하고 2년 후, 저희 남편은 시어머니와 둘이서 얘기 끝내고 시동생이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제게 아무런 상의 없이 짐싸서 시동생을 저희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일요일 저녁에 갑자기 시동생을 앞세우고 집으로 들어와서 사과상자 대여섯개를 방안으로 옮기더니 “오늘부터 우리집에서 같이 살거야” 한마디 하고 둘이 신나서 침대사러 나가더군요.
그날 밤, 이게 지금 무슨 난리냐고 남편을 붙들고 묻는 제게 남편은 간난쟁이도 아닌데 다큰애 챙길게 뭐가 있냐며 너 밥 차릴 때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고 별일 아닌 듯 얘기 하더군요. 이사람이 미쳤나 돌았나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대화를 더 해봤자 통할것 같지도 않았고, 저도 한성격 하는지라 알았다고, 정말 나 밥먹을 때 숟가락 하나만 더 놓고 다른건 일체 손 안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남편은 내말이 그말이다~ 할 것도 없다~ 이제야 이해를 하는구나~ 하며 역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동영상도 찍어두고 일부러 카톡 대화도 남겨뒀습니다.
그후 저는 정말 시동생과 관련된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래도 어린아이인데.. 하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내가 지금 어린애를 상대로 맞는 행동을 하는 걸까 하는 죄책감도 들었지만 시동생도 그리 예쁜 행동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던터라 (말투에 항상 욕설이 섞여 있었고, 제 지갑에 손을 대는 현장을 잡기도 했습니다) 죄책감은 곧 사라졌습니다.
중학교 입학 직전 보름 정도는 어찌어찌해서 무사히 지나 갔습니다. 시동생이 태어나고 거의 처음으로 함께 살게 된 남편과 시동생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형제간의 애틋함이 컸는지 둘이 으쌰으쌰 하면서 옷이나 학용품을 사러 다니고 맛집도 찾아 다니고 하더군요. 인터넷 검색해서 학원도 찾아서 보내고, 낮에 혼자 있는 시간에 끼니 걱정된다고 배달음식 시켜주면서 살뜰히 챙겼구요.
저도 그 때까지는 이정도면 할만 한데? 하며 슬슬 둔감해지기 시작할 무렵, 개학을 하고 시동생이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니게 될 때 쯤 남편이 지쳐가는게 눈에 보이더군요.
남편은 시동생 관련해서 학교나 학원에서 오는 연락들을 은근슬쩍 제게 돌리거나 (당연히 남편에게 연락하라고 단호히 전달하고 저는 일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체험학습? 현장학습? 도시락을 준비해 달라고 전날 밤에 갑자기 부탁하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거절했구요.
저희는 주말에 빨래를 몰아서 했는데, 시동생이 활동량이 많다 보니 시동생의 교복, 체육복, 속옷, 양말 등은 주중에도 한두번 세탁을 해야 했고, 남편은 은근히 제가 해 주길 바라더군요. 당연히 저는 안했습니다. 낮에 시동생이 먹고 싱크대에 쌓아둔 설거지들도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고대로 뒀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돈문제였습니다. 시부모님은 시동생 밑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전혀 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희는 각자 월급에서 얼마씩 생활비를 내고 나머지는 각자 관리하고 있었고, 시동생 관련 비용은 모두 남편이 부담했습니다. 힘들어 하더군요. 참고서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사춘기 아이라 고가의 특정 브랜드 옷이나 최신형 전자기기 등을 요구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어떤때는 남편이 시동생한테 대놓고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돈 찍어내는 기계냐고 하면서ㅋ 심지어 식비도 정말 많이 들더라구요. 제가 여자형제만 있어서 성장기 남자아이들이 얼마나 먹는지 잘 몰랐는데 시동생 혼자 점심으로 치킨 2마리를 먹더군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더라는....ㅡ.ㅡ
급기야 시동생이 여름에 춘추복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고 학교에서 남편에게 연락이 간 후 남편이 폭발했습니다. 하복 맞추라고 시동생에게 준 돈을 다른데 썼다는군요.
그리고 그 불똥은 제게도 튀었구요. 아무리 그래도 한집에 사는 어린 시동생인데 어떻게 그렇게 나몰라라 하냐. 너무한거 아니냐며 제게 화를 내더군요. 다 큰애 신경쓸 일이 뭐가 있냐고 자기 입으로 말했으면서 ㅡ.ㅡ
나랑 한마디 상의는 커녕 통보조차 없이 날 투명인간 취급하고 멋대로 시동생을 데려온건 당신인데 내가 왜 그 뒷처리를 해야 하냐, 당신이 내게 유일하게 부탁했던 밥차릴 때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일은 책임감 갖고 꾸준히 하고 있다. 행동에 책임 못 지고 있는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하고 눈하나 깜짝 안하고 받아쳤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시동생이 집으로 오고 몇달동안 이를 갈며 준비한 멘트기도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1학년만 겨우 마치고 2학년 올라가기 전에 남편은 시동생 학교 옆에 작은 투룸 빌라를 구해서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그 곳으로 이사시켰습니다. 여름방학때 부터 이사하기 전까지 시동생과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같이 싸웠고 (둘이 치고박고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저와 남편도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사이가 안좋아졌습니다.
시동생이 나가고 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는 별거도 하고, 상담도 받으며 서로 노력해서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되긴 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고, 저와 남편 둘 다에게 그 때 기억은 아직도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신혼생활 3년 즐기고 아이 갖자던 결혼전 계획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