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솜씨인데도 읽어주시면서 따끔한 조언, 따뜻한 위로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 추가글 씁니다.
우선 새로 이사 간 집주소를 아주머니께 가르쳐 드린 건 절대 아닙니다. 여자저차해서 아주머니가 알게 되셨고 그래서 찾아오신겁니다. 아마 그 지역에 볼일이 생겨 가셨다가 저희 모녀를 보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면 우연찮은 경로로 알게 되셨거나요. 절대 주소 가르쳐드린 적 없고, 아주머니도 억지로 알아내신 건 아닐겁니다.
두번째로 저희 아빠 병문안 갔던 건 제가 아빠를 놓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엄마가 할 말도 있고 해서 병문안 가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미쳤냐며 말렸습니다. 염치 없게 아빠가 엄마한테 연락해서 한 번만 와달라고까지 해서 그냥 제가 갔습니다. 걱정돼서 간 거 아닙니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하는 마음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미친 아줌마 불쌍한 엄마 워딩을 불편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셔 사과드립니다. 불륜으로 이루어진 가정인 걸 몰랐을 6살에 그렇게 느낀거지 당연히 지금은 불쌍한 아줌마와 미친 엄마입니다. 그리고 제가 쉽사리 천륜을 끊지 못하는 건 엄마가 제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입니다. 유부남과 가정 차린 걸 알았을 때 엄마 친정은 엄마와 절연했습니다. 제게 남은 혈육은 엄마뿐이라 끊어내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불륜가정 자녀라는 걸 깨달았던 10살 이후로 엄마와의 교류는 그냥 형식적이고 의식주에만 그친 교류였습니다. 다른 모녀처럼 데이트를 한 것도, 행복하게 지낸 것도 아닙니다. 날 이렇게 만든 근원이 엄마라는 걸 알기에 저도 그렇게 잘 지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주머니와 그 자녀분들에게는 늘 죄송스럽습니다. 당연하죠. 제가 가정을 파탄 낸 주범은 아니지만 제 존재 자체로 그 분들껜 지울 수 없는 상처니까요. 그냥 가장 원망스러운 건 아빠와 엄마, 날 따라다니는 시선들입니다. 천륜 끊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꼴, 저도 우습네요. 아빠 쪽은 이미 병문안 갔을 때 완전히 관계가 정리 되었습니다. 엄마랑도 별 교류는 없지만, 막상 끊으려니까 무섭고 또 계속 이대로 지내려니 원망스럽고 그 연속이네요. 길고 재미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
나는 불륜의 증거입니다. 생기고 싶어 생긴 게 아니고,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지만 누군가의 뜻이 만들어내버린 불륜의 증거입니다.
내가 6살 때, 집에 웬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던 건지 눈은 거의 못 뜬 상태였고 밤새 손톱을 뜯었는지 검지 엄지손톱이 다 갈라져 피가 굳어있었습니다. 뒤이어 우리 아빠가 들어왔습니다. 많이 급했던 모양이었어요. 신발도 안 벗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와서는 그 여자를 데리고 나가려고 계속 안아올리려고 하더라구요. 너무 무서워 엄마 뒤로 숨었는데, 엄마는 겁에 질려 울기만 할 뿐 날 보호해주지도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엄마한테 경찰아저씨 부르자고 징징거리며 울었습니다. 너무 무섭다고. 6살 어린 여자 아이가 보기에 살기에 찬 여자와 그를 필사적으로 말리는 아빠의 모습은 공포 이상이었습니다.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오후 10시가 되면 집에 왔다가 일요일 오전 8시에 나갔습니다. 나는 아빠와 놀이동산을 갔다는 친구, 가족여행 갔다가 아빠가 솜사탕을 사줬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너무 부러웠습니다. 난 한 달에 겨우 두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얼굴을 친구들은 매일같이 보며 함께 노니까요. 엄마한테 물어보면 아빠가 바빠서 그런거다, 아빠가 대단한 사람이어서 할 일이 많다 라며 절 달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6년간 몰래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아빠의 숨겨진 여자였다는 걸요.
그 여자는 아빠의 본처였습니다. 당시 결혼한 지 17년 된, 아주 오래 되고 깊은 인연의 부부였습니다. 불륜 이라는 개념이 없던 제겐 그냥 미친 아줌마와 불쌍한 엄마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학부모들과 반 아이들의 시선은 저를 너무 불편하게 했습니다. '더러운 기집애'. 내가 7살 때 같은 반 친구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너무 속이 상해 엄마에게 울며 말했습니다. 내가 저런 말을 들었다고, 너무 무섭다고. 난 당연히 엄마가 그 친구를 혼내주자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냥 우는 내 얼굴을 쓸어주며 한숨만 쉬었습니다. 자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엄마 잘못이니까 그냥 무시하고 넘기라고만 했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보호 아래 자라며 초등학교에 입학해 3학년이 됐을 때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내가 불륜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걸요. 가끔 찾아와선 첩년 살려준 거 도리나 제대로 하라며 돈을 요구하는 아주머니, 계속해서 퍼지는 소문들, 이젠 두 집 살림마저 하지 않는 아빠는 그걸 알게 하기 충분한 증거였죠. 10살들도 알 건 다 알아서 절 피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렇게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퍼진 소문인지, 모르는 게 간첩일 정도로 모두가 알더라구요. 다행히 초등학교 졸업하고는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면서 무성했던 소문들도 제 꼬리를 따라다니지 않았습니다. 가끔 가다 아주머니가 집을 찾아내셔서 도망 가봤자 소용 없다며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소송 걸겠다고 할 때도 빚쟁이라고 이웃들 속이며 여차저차 살아왔습니다.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저만큼은요. 친구들의 따돌림을 그냥 넘기고 학부모들의 수군거림을 참으며 사람 구실은 하려고 공부만 죽어라 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를 둔 치명적인 컴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왜 이런건가요. 왜 하필 초등학생 때 제 수치를 들먹이며 따돌렸던 친구가 제 직장 동료로 있게 되는 건가요. 아직도 그렇게 사냐고? 그건 내가 너한테 물어야지. 아직도 상대 약점 잡아서 따돌리며 사냐고 내가 물어야지.
내가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건 그들 잘못이지 내 탓이 아니잖아요. 나까지 원망스럽고 나한테도 책임을 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 되지만 왜 나를 비난하나요. 난 그저 태어난 죄밖에 없어요. 태어나서 열심히 최선 다해 산 죄밖에 없어요. 나도 수치스럽고 더러운 행위의 결과물이 나라는 사실이 정말 화나고 억울합니다. 하지만 어째요. 낳은 건 그들이고 만든 것도 그들이고. 혹여 내가 누군가에게 또다시 상처가 될까 전 결혼은 꿈도 안 꿉니다. 이미 내 존재 자체로 상처 받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저도 너무 괴롭습니다. 제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빠가 몸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처음으로 성인인 상태의 저와 그 아주머니가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경멸스러워하던 눈빛이 정말 생생합니다. 3년 전인데도 마치 방금 전처럼 그 눈빛이 내 속을 후벼팝니다.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고개 숙였는지 모릅니다. 아빠는 미안하단 말도 없이 우리 집을 떠났고 사죄 없이 아주머니한테 돌아갔지만 아빠의 실수인 저는 늘 미안하고 죄송해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생각이 가능한 나이가 되면서부터 함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것뿐이에요. 내가 뭘 어떻게 더 할 수 있나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달래봐도 제일 큰 죄인은 나라는 시선에 짓눌려 나조차도 나를 채찍질합니다. 정말 제가 잘못한 겁니까. 난 최선을 다해 남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이따금씩 아주머니의 자녀들이 무언가 요구하면 윤리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이상 다 응해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가 제일 큰 죄인인건가요? 전 언제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