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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생활 이야기 vol.2 (since,1995)

쥰세이 |2004.02.18 04:06
조회 3,837 |추천 0

※ 역주: 9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과 다른 부분이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종로에 위치한 T여행사에서 KLM항공사(유럽행 중 제일 쌈)티켓을 샀다.
너무 신이 난다. 예전 배낭여행을 다닐 때 이후로, 신혼여행 때가 아니면
다시는 비행기 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
출국날짜를 보름 남기고 있었다.

 

- 뭘 준비한다지? 트렁크부터 사야겠군.

부모님 몰래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척하면서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필요한 옷가지 몇 벌과 책 등등 가방에 하나 둘씩
쌓아갔다. 그리곤 대학친구에게 트렁크를 맡겼다. (이 대학친구는 아직도 각별
하게 지내고 있다. J라고 칭하겠음)

= 야, 이거 뭐냐? 너 혹시 아직도 ...?

- 뭐.. 내가 뭐?
= 또 P 때문에 집에서 술 먹고.(한 여자로 인해 힘든 시기였음), 니네 아버지한테

   꼬장이라도 피웠냐?
- 젠장, 지붕 무너지는 소리하지 마라. 몇 일만 맡기자구.

= 그럼 뭐냐? 너 왜 짐 싸들고 오는 건데?
- 시끄러. 신세지자고 친구가 부탁하면 그렇게 알고 아무 것도 묻지마.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길 소주, 막걸리까지 모든
술을 섭렵하며 J에게 내가 유학 갈 결심을 하게 된 모든 경위를 설명했다.
그런데 이 놈의 한마디가 날 미치게 했다. 

= 마, 잊을 건 잊어야 해. 그게 삶이란 거야. 여자는 다 그런 거야. 그래서 독일로
  가시겠다? 너 미쳤냐? 그냥 미친 척하고 잊으면 되잖아?

 

삶? 그게 무엇이기에.. 26살의 나이에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많았으리라.
그건 나나 J나 마찬가지였다. 술김에 J에게 되받아 쳤다.

- 뭘 잊으란 건데? 아무 것도 모르면 아는 척이라도 하지마.
  네가 삶이 뭔지 알아? 그리고 삶과 사랑은 달라. 세상은 교과서처럼 흘러가지 않아.

 

다음날 저녁 <다녀왔습니다>란 인사와 함께 천연덕스럽게 집으로 들어갔다.

 

스파이 007작전이 완벽하게 진행되며 흐른 출국 일주일을 남겨놓을 무렵,
동생과 부모님을 불러 거실 소파에 앉혔다.
- 저 일주일 뒤에 독일로 공부하러 떠납니다.
무슨 소릴 하냐는 듯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시는 부모님과 동생.
-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어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가 반대하실 건
  뻔한 일이고, 나름대로 판단이 섰고 결심했어요. 이제 와서 불쑥 이런 말씀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한참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독..독일로 유학을 간다고?
- 네. 죄송합니다.
철썩! 난생 두 번째로 아버지한테 따귀를 맞았다.
(처음은 대학 때 데모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간 날 맞았음)

 

아버지께서 반대하시는 이유가 있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신 당신께서는 13세에
가출해 상경하셨다. 그 당시 쌀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던 할아버지께서는 중학교에
가겠다는 아버지를 광에 가둘 정도로 밭일이나 도우라며 반대하셨다고 한다.
악착같이 건설현장에서 전전긍긍하시면서 돈을 모아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건축설계)까지 다니시면서 늘 생각하시던 각오가 있었다. 성공해야 한다고 ...,
그러시면서 늘 내게 강요하셨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내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바라시는 것은 바로 설계사무실을 이어 받는 거였다.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내게 하신 말씀이 있으시다.

=대학졸업하고 경력 쌓은 다음에 건축사시험을 치러라.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지금까지 온 거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부전자전이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 듯 나 역시 아버지식 대로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봐 오던 아버지의 설계작업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담배를 입에 여문 체로 T자를 위 아래로 익숙하게 옮기시면서 날카로운 연필로 쓱쓱
그려 가는 도면. 그야말로 그림쟁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 어차피 네가 결정한 일이니, 너 맘대로 하거라. 대신 다시는 아버지 얼굴 볼
  생각일랑 하지 말거라. 도움 따위는 처음부터 바라지말고.

 

유학을 결사 반대하시던 아버지, 어머니를 뒤로하고 떠나온, 92년 배낭여행 이후로
수년만에 다시 밟는 독일! 저녁 7시가 넘어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그야말로 하이테크놀러지의 산물이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공항청사 밖으로 무조건 나왔다.
어두컴컴해지는 하늘만이 나를 반긴다.
양손에 들린 커다란 트렁크와 배낭을 메고 무조건 지하철을 타 중앙역을 향했다.
짐은 코인로커에 넣고 마인강을 따라 일단 유스호스텔에서 일박을 청한다.
뿌듯하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막막함보다 기대감에 푹 빠져 본다.

 

다음 날이 돼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날 반기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

- 아무려면 어때, 어차피 인생살이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온 건데.

바로 Bonn으로 향했다. 학원의 위치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 Mozart Str. 뒤편이라 ...,

이미 과거에 와 보던 도시라 낯설지는 않았다. 역사 안에 있는 안내소에서 위치를
물어봐 쉽게 찾아 낼 수 있었다.
학원 안으로 들어서자 한 여직원이 인사말을 건넨다.

=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 네, 지난 번에 팩스로 신청을 한 한국사람인데요. 8월말까지 오면 된다고 해서요.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그런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다시 짐을 코인로커에 ...,
막막했다.

- 오늘밤은 어디서 보낼까? 머물 집부터 구해야 하는데 ..., 큰일이네.


========================================= 다음 편에 계속 쓰겠습니다.(2)

 

☞ 클릭, 유학생활 이야기 vol.3 (since,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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