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소싯적부터 똑똑하다는 말은 정말 많이 들어왔다.
사춘기때도 학업에 몰두하느라 별달리 부모님 속타게하는 일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했고 어디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며 사회를 이끌어나갈
인재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입학후에도 내 삶이 가치관과 태도엔 큰 변화는 없었다. 성실히 학업에 임했으며 연애활동도 활발히 했다.
공대생이라 남초였지만 명문대라는 타이틀 덕분에 많은 소개팅을 받았으며 연애걱정 없이 살아왔다.
취업도 무난히 성공해서 번듯한 직장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상은 내가 경험해본 세상과 많이 변해가고 있는 듯 하다. 결혼을 고려해야하는
나이가 되자 주변의 시선이 예전만큼 호의로 가득하지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 짝을 아직 찾지 못한 아들이 걱정스러우셨던지, 결혼정보회사를 알아보셨다는 어머니는 전문직이 아니라면
비싼 가입비가 필요함을 알곤 당황하셨다. 친한 친구아들의 병원 개원소식에 축하한다며 통화를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부러움이 담겨져있었다. 늘 똑똑하다 추켜세워주던 친구들도 대학생 시절 한번도 실패한 적 없는
소개팅전적도 이제는 아무도 찾지않는 피쳐폰마냥 내 가슴속에만 남아있다.
이제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아들이 된 것만 같은 부담 때문이었을까. 지난주에 간만에 만난 의사인 대학 동아리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 자기가 이용 중인 소개팅어플이라는 다이아매치를 추천받아 설치해봤다. 그래도 동년배중에서는
내 스펙이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하찮을뿐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매칭이 성사된다던
친구와는 달리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내 휴대폰은 잠잠하기만 하다. 그놈의 전문직과이 격차를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의사가 갖고 있는 권력은 그 옛날 모든 특권을 누리고 있던 중국 황제에 견줄만 하다. 중매시장, 결혼정보회사,
게다가 소개팅어플에서마저 그들은 자신의 소득과 직업정 안정성을 무기로 하나하나 잠식해가고 있다.
의사들의 역할이 AI로 대체되기 전까지 이러한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모님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죄송한 아들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