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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사태에서 살아남는 삶 ㅈㄴ 재밌겠음 上

ㅇㅇ |2020.09.05 22:08
조회 145,623 |추천 749

*재밌겠음 이라는 표현은 진짜 좀비사태가 재밌을 것 같다는 의미가 아닌 모든 글들의 제목 통일성을 위해 사용*

추천 BGM ) Sam Smith - My Oasis


너는 꽤나 돈좀 있고 성적 되는 애들이 간다는 국제고등학교에 빽으로 입학해 다니고 있는 학생이야. 중학교 성적도 평균 점수에 간당간당하게 닿는 수준이었고 출석률도 안좋았지만 학교 이사장이 엄마의 친한 지인이라서 운좋게 낙하산으로 들어간 케이스였지

모든 일정이 빡세고 교복도 구린, 심지어 집에서 거리마저 먼 국제고를 겨우 버티면서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어. 짝사랑을 하고있었거든

- 야 김승현!
- 왜. 또 숙제안했냐?
- ..그런게 아니라..

귀찮다는듯 그럼 뭔데 하며 뒤돌아 물어보는 승현에 너가 아랑곳 않고 말해

- 우리 다음주에 하와이가잖아~
- 코타키나발루야
- 암튼.. 모처럼 수학여행인데 나랑 비행기 자리 옆에 앉을래?

승현이 어림없는 소리라는듯 코웃음 치며 말해

- 뭔소리야 나 이어폰 꽂고 잘건데
- ..재미없는놈
-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당일날 말도없이 옆에 앉아서 나 귀찮게 하지 마
- 안해 ㅅㅂ
- 그럼 다행이고 ㅋㅋ

다시 뒤돌아 엎드려서 자는데 뭔가 미련남아서 자냐? 하고 괜히 샤프로 등 꾹꾹 찔러봤지만 죽은듯 반응도 없어

성격 자체가 너한테만 차가운건 아니었지만 너가 좋아하는 애인 만큼 너한테만큼은 차갑지 않았으면 좋겠는 너야. 잘생긴 것들은 꼭 얼굴값을해요.. 내가 지 좋아하는거 뻔히 알면서.

한숨쉬면서 창밖 바라봤어. 그래도 국제고 오니까 수학여행도 해외로 가고 개꿀이네. 가서 뭐입지? 머리 양갈래로 땋을까? 원피스 주문한거 오늘 온다그랬는데. 기대 가득한 얼굴로 싱긋 웃었어

.
.
202x년 x월 x일 수학여행 당일

- 다들 여권 잘 챙겼지? 잃어버리면 너네만 손해야
- 네에~
- 그럼 다 티켓 잘 들고 비행기 탑승한다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너네 과 애들이 비행기로 탑승했어. 너는 당연히 걔 옆 아니면 근처라도 앉고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아무 창가쪽 빈자리에 앉아

- 안녕..~ 옆에 앉아도 되지?
- 그래

같이 앉게된 이 남자애는 너네반 반장이었어. 반장치고 되게 조용하고 막 나대지도 않아서 말도 몇번 못 섞어본 애였는데 어쩌다 같이 앉게돼서 어색해 미치겠는거지. 결국 니가 침묵을 깨고 말해

- 그나저나 우리 같은반인데 말을 몇번 못나눠봤네
- 그러네
- 근데 너 여기 가본적 있어? 코타뭐시기..
- 없어
- 아 응..

와 얜 더 강적이다 ㅅㅂ 김승현보다 백배는 더 싸가지없네. 이 학교는 무슨 사회부적응자들만 다니는 학굔가? 중학교때 남자애들은 안이랬는데..

아예 이어폰 끼고 고개까지 돌렸길래 더이상 너도 말 안걸었어. 괜히 여기앉았다.. 시작부터 울것같은 심정으로 비행기 타다보니까 어느새 5시간이 흘러 여행지에 도착했어

다들 각자 배정된 리조트 호수로 가서 짐 풀고 씻는데 너네과가 사람이 많이 적은 편이었어서 선생님들 합한 총 인원이 70명이 채 안됐어

리조트에서 짐을 풀고 5시간 내내 앉아있느라 불편한 몸 스트레칭 좀 하니까 뼈에서 뚜둑 뚜둑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어. 바로 커텐 쳐서 바깥 구경하니까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고 리조트 밑엔 수영장이 있어서 정말 예뻤어


도착하고 나서부턴 저녁이라 그런가 어두웠지만 불빛들이 예쁘게 빛나서 좋았어. 기념으로 사진 찰칵찰칵 찍고 언니 몰래 가져온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불빛이 예쁘게 올라오고 있는 수영장도 찍었어

그렇게 첫날엔 다들 피곤해서 리조트에서 저녁 먹고 리조트 주변 좀 걷다가 지쳐서 잠든게 다야. 내일은 바다가는 날인데. 너도 너무 설레서 내일 입을 원피스에 미리 아끼는 향수 칙칙 뿌려서 옷걸이에 걸어놨어

- 아 뭔 향수를 벌써 뿌려대
- 야 잔향 몰라? 잔향이 사람 미치게하는거라고
- 그런다고 김승현이 니 좋아할것같냐 ㅋㅋ

같은방 친구가 감자칩 먹으면서 쪼개는데 넌 아랑곳 안하고 내일 입을 원피스,샌들,반지 목걸이까지 싹다 꺼내 정리해놓고 나서야 맘 편히 침대에 누울 수 있었어. 내일 진짜 그냥 확 고백해버릴까? 같은반도 올해가 마지막일텐테..

이런저런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넌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어. 내일 너한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채.

_

다음날이 되고 계획대로 알람 맞추고 일찍 일어나서 씻고 머리 하고 화장하고 옷까지 싹다 입는데 총 2시간이 걸렸어. 오늘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상큼해야지

날씨는 끝내줬고 예정대로 다들 리조트 앞 바다 가서 신나게 물놀이하고 몇몇 애들은 돈 더내고 서핑까지 했어. 바닷가 근처엔 칵테일과 음료수 스무디 아이스크림이 팔고 밤엔 야시장이 서는 것 같았어

자기 친구들과 서핑한다고 바쁜 탓에 걔랑 딱 붙어있진 못했지만 해변에서 앉아서 헤벌쭉 걔만 쳐다보고있었어. 나중에 줘야겠다 하고 신나게 노는 걔 사진도 찰칵찰칵 찍어서 인화했지. 래쉬가드가 진짜 잘어울렸어

다들 정신없이 놀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자 몇몇은 컨디션이 안좋다고 먼저 들어오는 애들도 있었어. 리조트 수영장도 이미 너네 학교 애들과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꽉 찼어

해가 완전 저물자 다들 씻고 리조트 뷔페에서 저녁먹는데 넌 습관적으로 걔를 찾았어. 머리도 덜 말린채 회색 후드 입고 너한테 손 흔드는 걔 옆에 껌딱지같이 딱 붙어서 걔가 집는 음식 너도 하나 집고 철저히 걔 입맛대로 니 접시를 채워갔어

솔직히 걔가 좀 까칠하게 대하긴 해도 친했긴 친했으니까 걔도 그런 널 보고 내가 졌다 졌어 하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해

- 그만 담아 돼지야 ㅋㅋ
- 야 이거 맛있냐?
- ㅈ나 맛있음. 내꺼까지 하나 더 담아서 따라와

그렇게 마지막으로 소세지 두개 담아서 걔 테이블로 쫄래쫄래 쫓아가서 앉았어. 걔랑 너랑은 그냥 접시 나란히 두고 서로 공유하면서 나눠먹었는데 오물오물 잘도 먹는 걔를 니가 뚫어져라 쳐다봐

- ..먹는건 왜 쳐다보는건데
- 야 나 아까 어땠어? 오늘 힘 엄청 준건데
- 귀엽던데. 양갈래

걔가 시선은 접시에 고정하고 소세지 오물거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너 혼자 또 얼굴 빨개져서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해쉬브라운 포크로 분해하면서 뭐래 ㅋㅋ 했어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있는데 아까 걔한테 쫄라서 같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중 가장 맘에드는걸 찍어서 카톡 프사로 바꿔

오늘 꼭 고백하려고 했는데 못했어. 근데 꼭 남자친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깝고 좋은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구나 생각해

_

2시간쯤 지났나, 지쳐서 침대에서 폰 하면서 쉬고있는데 갑자기 복도 어디선가 찢어질 것 같은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

- 꺄아아아아악!!!!!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내가 잘못들은건가 싶어서 불안한 마음에 니 옆에서 코골며 잘 자는 친구들 보면서 안심하는데 이번엔 여러명이 소리지르는 비명과 함께 우당탕탕 무언가가 방 밖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거야. 넌 순간 느껴



잘못들은게 아니었구나

자고있는 친구들을 흔들어 깨운뒤 휴대폰을 꽉 쥐고 문을 소리 안나게 살짝 열어. 좁은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광경에 넌 경악했어

당장 바로 앞에 보이는 복도엔 핏자국이 잔뜩 흩뿌려져있고 사람들은 경악하며 소리지르며 다같이 비상구쪽으로 미친듯이 뛰어가고 있었어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심각함을 느낀 너와 친구들이 서로를 쳐다봤어. 모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걸 느끼는 것 같았어. 친구 한명이 울먹이며 인터폰으로 호텔 로비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연결음 울릴 뿐 아무도 받지않았어

자다깨서 정신없는 친구들에게 너가 빨리 선생님한테 전화해보라고 시켜. 그리곤 몸만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문을 열어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상황을 확인하러 복도로 조심스레 나가봐

복도엔 저 멀리서 뛰어오던 옆방 남자애 한명이 빨리 가야된다며, 이 건물에 괴물새끼가 있다며 패닉 가득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신발도 신지 않은채 비상계단 쪽으로 뛰어갔어

그 말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간 곳은 핏자국이 처음 시작된 왼쪽 방들이었어. 그중 승현이 배정된 호수는 왼쪽에서 두번째였고 그걸 발견한 순간 넌 생각해. 당장 걔를 찾아야겠다고

놀라서 울고있는 방 친구들에게 얼른 나가야돼 하고 타일른 뒤 너도 허겁지겁 운동화 구겨신고 나와. 가장 무서운건 지금 그 괴물이 날 쫓아올까가 아닌 걔가 혹시나 잘못된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함이야.

걱정되는 마음에 심장이 쿵쿵 뛰다못해 귓가에 들릴 정도였어

- 김승현!!!!!

복도 한가운데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이 터져라 걔 이름을 불러댔어. 밖을 돌아다니자 복도엔 여기저기 피투성이 시체들이 널부러져있었고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보는건 끔찍할 수준이었어

도저히 보이지 않는 걔를 찾으러 1층까지 내려와. 다들 리조트 입구 쪽에 모여서 밖으로 도망가느라 정신없는데 그 난장판 속에서도 회색 옷 입은 사람만 보면 혹시 걔일까봐 닥치는대로 붙잡았어. 하지만 모두 다른 사람이었지

여기서 포기하고 나갈 수는 없었어. 혹시나 저기 끝쪽에서 나가는 문도 못찾고 헤매는건 아닐지 걱정이 돼 1층 끝쪽까지 뒤져봐

- 야 같이가!!!! 제발..!!

순간 니 등 뒤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그르렁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멈춘다고 하던데. 닭살이 돋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서 천천히 뒤를 돌아봐

뒤 돈 곳엔 슬리퍼를 신고 뛰다 발을 헛디뎌 크게 넘어진 옆반 여자아이가 너에게 간절히 울부짖다 사람 형체의 괴생명체에 목덜미를 물어뜯기고 말아. 자세히 보니 괴물은 아까 바닷가에서 승현과 같이 서핑하던 옆반 남자애였어

목덜미의 살점이 뜯겨나가자 팍 하고 피가 튀겨 복도 카펫과 벽지가 엉망진창이 됐어. 고통스러워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옆반 여자애는 의식을 잃은채 남자애에게 물어뜯기고 있고 넌 그걸 바로 앞에서 멍하니 쳐다보고있었어

- ..말도안돼...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 너가 멍하니 있다가 의리없이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해. 순간 소화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가려는 너를 누가 확 붙잡고 자기쪽으로 이끌어. 놀라서 올려다보니 어제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너네반 반장이었어

- 남 도와주고 할 시간 없어 빨리와
- 너 미쳤어?!! 저러다 진짜 죽으면 어떡할건데?
- 그러다 너도 저 괴물 밥 된다 정신차려

니가 대답하기도 전에 니 손목 붙잡고 자기쪽으로 이끄는데 힘이 너무 세서 뿌리칠 수도 없었어. 뒤에서는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괴물의 쩝쩝소리가 섞여서 역겹게 들려왔어

옆반 여자애의 간절한 마지막 눈빛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려서 이끌려가는 와중에도 친구를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머릿속에 가득해

반장을 따라서 정신없이 앞만보고 뛰다보니 도착한 곳은 리조트 근처 식당 옆 골목이었어. 바깥에 나와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괴물화 되어있었고 영화에서 효과음이라도 입힌 것 처럼 이상한 으르렁 소리까지 냈어

괴물의 특징은 살아있는 사람만 보면 미친듯이 달려들어 목덜미나 팔을 물어뜯어. 마치 좀비영화에 나오는 좀비같이. 밤인데도 리조트 수영장 불빛이 번쩍번쩍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괴물이 된 사람들의 차이가 명확하게 눈에 구분됐어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헐떡대는데 반장이 와중에 자기입 막고 반대손으로 니 입을 막으면서 쉿 해

- 조용히해
- ...
- ..니 친구들은 어딨어. 몇명이나 물렸어?
- 나도 몰라..
- 한명도?
- 어.. 근데 혹시 김승현 봤어?
- 김승현?

반장이 인상쓰며 뭔갈 생각해. 같은반 앤데 혹시 모르는건가? 얼굴은 알겠지? 지금 어딨는지 아나? 싶어서 너가 물어봐

- 혹시 봤어?? 키 크고! 눈 이렇게 생긴애!!
- 누군지 모르겠는데
- 나 걔 꼭 만나야돼.. 지금 찾으러 가면 안돼? 제발...
- ..저길 다시 들어갈 순 없을거야. 몇혼지 알아?
- 307호.. 307호일거야 아마

희망을 바라는 눈이 절망으로 바뀌는데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어

- ...307호면 맨 끝쪽이네. 이미 물렸을 가능성이 높아
- 말도안돼...
- 힘들겠지만 당장은 니 몸 사리는걸 더 신경쓰는게 급할거야
- 죽었다는거야? 말해봐...

반장이 불안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 대답만 기다리는 널 몇초동안 묵묵히 쳐다보더니 결국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말해

- ..그럴 확률이 가장 높지

너가 풀석 주저앉아. 눈에선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정도였어. 절망감에 소리내서 우는 너에게 말해

- 지금 울고있을 시간 없어. 숙소로 부터 최대한 멀리 가야돼
- ...내가 왜..?
- 뭐?
- 난 안갈래

니 대답에 반장이 어이없다는듯 말하곤 혼자 걸어가버려

- 그럼 여기 있던가 혼자

모자 꾹 눌러쓰고 진짜 혼자 골목 밖으로 걸어가는데 따라갈 힘도 없고 더이상 살기도 싫어서 그냥 여기 있으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생각하며 하수구 옆에서 쭈그려 앉아서 울기만 했어

- 하.. ㅆ발 진짜..
- ..간다며

욕하면서 다시 걸어와 너한테 말해

- 너라도 살아야할거아냐!! 아무것도 못해보고 여기서 그냥 뒤질래?
- 어차피 너도 나랑 가면 위험해지기만 할걸
- 혼자가는 것 보단 백배 나아
- 진짜 그럴까..
- 아 몰라 너 안가면 나도 여기 앉아있을거야. 나 죽으면 다 니책임이다

반장이 니 옆에 말없이 풀썩 앉아서 정말 앉아만있는거야. 시간은 가고 있고 이곳에 계속 앉아있으면 언젠간 들킨다는걸 뻔히 알면서 훌쩍훌쩍 울고만 있는 너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모잘라보여서 벌떡 일어나서 콧물 닦았어

그리곤 비명소리와 함께 아수라장이 된 골목 밖을 보니까 다시 심장이 미친듯이 쿵쿵 뛰었어. 너와 반장 둘만 앉아있는 조용한 골목과 난리가 난 골목 밖은 마치 다른세상 같았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 이런걸까? 너가 말해

- 나 너무 무서워..
- ..나도야
- 죽을지도 몰라
- 그렇지
-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다..

반장이 말해

- ...그러게.

_

너가 골목 뒤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가 식당 밖에 굴러다니는 빈 식용유 통으로 식당 뒤쪽 유리벽에 힘껏 던져. 하지만 살짝 금이 갔을 뿐 팅 하고 튕겨나와 바닥에 떨어져

- 나와봐

반장이 어디선가 바위만한 돌맹이를 주워와 힘껏 던져. 와장창 요란한 소리가 나며 식당 뒷문이 산산조각이 났어. 소리가 제법 크게 나서 혹시나 그 괴물들이 듣진 않았을까 한참을 주위를 살피고는 조심스레 들어갔어

챙길만한 것이 많을 것 같은 주방으로 들어가자 기름 쩐내와 묵힌 행주 냄새가 진동을 했어. 주방 위생이 생각보다 너무 더러워서 인상을 찌푸려. 원래였다면 내일 여기서 저녁먹는거였는데.. 큰일날뻔했네

- 확실히 식당이라 그런지 칼이 많네
- ...
- ..다칠수도있니까 날카로운 부분은 수건으로 감싸서 가지고 다녀

고개 끄덕이며 날카로운 칼 몇개를 챙겨 싱크대에 널부러진 행주나 수건으로 둘둘 둘러 말았어. 하지만 가방따윈 없는 너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만있었지

그제서야 반장이 니가 들고있는 칼을 전부 자기 배낭에 넣어줘. 그리곤 싱크대 밑을 뒤적거리더니 컵 두개를 꺼내 수돗물로 담아서 너에게 줘

- 미리 마셔둬. 수도도 곧 끊길 것 같으니까
- ..석회수 마시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 나중에 목말라 죽는 것 보단 낫겠지

맞는말이었어. 재난영화 보면 심할땐 변기물도 마시던데 이것 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어. 생수와 음료수가 담긴 냉장고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고.. 굳이 소리나게 다시 유리를 깰 필요는 없었어

바로 벌컥벌컥 수돗물 한잔을 들이키고 두잔 꽉 채워서 마시고 나서야 좀 안심하고 벽에 기대 바닥에 풀썩 앉았어. 하도 더운 날씨에 뛰어다니고 울고 긴장하느라 힘이 다 풀려서 반장도 너도 이마가 땀으로 흥건했어

그때 반장이 고개를 떨구고 허탈하게 웃기 시작해

- 왜 웃어?
- 나 원래 수학여행 안오려고 그랬거든
- ..오지말걸 그랬네

니 말에 웃으면서 끄덕이다 말해

- ..그래도 너랑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서 좋네
- 무슨뜻이야?..

니 질문에 대답도 안한채 에어컨도 켜지지 않은 어둡고 좁은 주방에서 반장은 체력이 아직 남아있는지 이것저것 뒤적거리기 시작해. 그리곤 무언갈 발견하고 말해

- ..찾았다
- 뭔데?

반장이 들고있는 것은 중간에 빨간 십자가 마크가 박힌 구급상자였어. 주방에선 하루종일 칼을 사용하니까 다칠때를 대비해서 장만해둔 모양이었어. 꽤나 큰 크기여서 작은 배낭에 모두 들어가기엔 무리였지

- 야 이걸 다 어떻게 들고 가? 그리고 한번 물리면 죽는..

그때 주방 바깥에서 부스럭 부스럭 인기척이 들려. 놀라서 경직된 너에 반장이 쉿 하더니 살짝 몸을 일으켜서 부엌 밖을 봤어

깨진 유리 문 사이로 괴물 한마리가 걸어 들어왔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한건 걸음걸이가 사람은 아니었어. 게다가 덩치도 엄청나게 크고 웬만한 성인 남자 두명에서 제압하기 힘들 정도의 피지컬이었어.

반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시 수그려 앉더니 덜덜 떨며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어

- 뭔데..?
-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길고양이같아
- 아.. 놀래라
- 그래도 소리나면 들키기 쉬우니까 조용히있어

끄덕이는 너를 보더니 바로 구급상자를 뒤적여 두껍게 말려있는 붕대를 꺼내. 더 뒤적거려 봤지만 붕대는 고작 두 뭉치 뿐이었어. 고민할 틈도 없이 니 손을 잡더니 붕대를 칭칭 감기 시작했어

- 야 뭐하는거야?!
- 조용히해
- 이거 감아서 뭐하게?
- 손등 하나라도 물리면 일단 감염이야. 내가 본 바로는 그랬어
- ..그럼 너는?

니 말에 아무 대답이없어. 뭔가 초조하기라도 한듯 긴장한 표정으로 계속 뒤를 힐끔 힐끔 쳐다봤어. 그리곤 양 손에 붕대를 두껍게 감아주며 뜬금없이 말해

- 넌 여기 와본적 있어?
- 없지.. 갑자기 그건 왜
- 나만 알려줬잖아. 비행기에서
- 내가 그랬나..?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던 첫날 아무말 없이 앉아있는게 어색해 비행기에서 걔한테 아무거나 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 시작했어

- 별걸 다 기억하네..

니 양 손에 붕대가 모두 감겨지자 걔가 가방에서 챙긴 칼 두개를 꺼내 하나는 너에게, 하나는 자기 손에 쥐며 말해

- 명심해. 힘들겠지만 머리를 찔러야 가장 쉽게 끝나
- 무슨뜻이야? 왜 갑자기 그런걸 알려주는건데..?
- 혹시 내가 없더라도 니 몸은 니가 지켜야지
- 야 갑자기 왜그래 너..!!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우는 널 뒤로하고 반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 입구로 걸어가. 조용한 가게 안에 발자국 소리가 퍼지자 부엌 바깥에서 그르렁 거리며 소리에 반응하는 괴물 울음소리가 들렸어

생각치도 못한 괴물의 소리에 놀란 너가 눈이 커져 쳐다보자 걔가 뒤돌아 살짝 웃으며 말해

- 눈물 닦고 꼭 살아남아. 살아남아서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

추천수749
반대수94
베플ㅇㅇ|2020.09.06 00:43
어남반 - 반장(추) vs 어남승 - 승현이(반)
베플ㅇㅇ|2020.09.06 00:15
너네 승현이 살아있을거같다 추 좀비한테 이미 물리거나 죽었음 반
베플ㅇㅇ|2020.09.06 01:41
아.. 근데 외국 갔는데 좀비 터지면 진짜 __같겠다 사람들이랑 말도 잘 안통하고 주변 지형지물도 잘 몰라서 생존하기 ㅈㄴ 불리할듯
베플ㅇㅇ|2020.09.06 00:47
아 제발 반장 죽이지마ㅜㅜ 내가 들어가서 살려주면 안되냐
베플ㅇㅇ|2020.09.06 01:10
그래서 결혼은 언제하는데
찬반ㅇㅇ|2020.09.06 20:36 전체보기
진심으로 뭐가 재밌다는 건지 모르겠음 전에 올라오던 조선시댄가 그런 글은 재밌게 봤는데... 인소 느낌으로 보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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