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음*
*웹툰 경성야상곡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글임*
- 한국어
“ 일본어
추천 BGM ) 아이유 - 바람꽃
1910년 8월. 조선의 국권피탈로 인해 대한제국이 멸망하게 되며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어. 일본 측에선 겉으론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 마냥 그럴듯하게 법을 정해 조선을 통치한다고 했지만 실제론 무분별한 침략이었고 이 시대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경멸하고 개 취급도 안했지
이를 직감한 조선인 부유층들은 두가지로 나뉘었어
첫째. 조국을 팔아먹고 일본놈들의 앞잡이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
둘째.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까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쓴 사람들
슬프게도 부유층의 95% 이상은 모두 전자였어. 이들 중에선 일본의 세뇌를 받아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이들도 있었고 승진 등의 단순히 자신의 재산 보호와 이익을 위해 친일을 하는 이들도, 다른 조선인들 처럼 자신도 목숨을 잃을까 무서워 강제로 친일 행동을 하는 이들도 있었어
단 한가지 똑같은 점은 이들 모두 자신을 ‘더러운 조.센징’ 이라며 조롱하는 일본인들 앞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점이지
*
고작 7살이 되던 해 여름 경성(서울). 늘 살고있던 넓은 한옥 앞 허리춤에 총을 찬 일본군사들이 차를 세우고 내려. 생전 처음 보는 복장과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쎄한 분위기. 마을 근처에선 곡소리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지르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와 겁먹은 니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뒤로 숨었어
곧이어 아빠가 일본군사들과 대화 한 뒤 너희 가족은 아빠를 따라 생전 처음보는 ‘자동차’ 라는 것에 타. 어린 너를 직접 들어 차 뒷자석에 태우려는 일본군에 니가 놀라서 엄마! 하고 소리치자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아이는 제가 안고 탈게요. 부탁드립니다.”
인심이라도 쓰는 마냥 끄덕이는 군사들. 그렇게 엄마의 품에 안겨 아무것도 모르는 채 창문 밖을 바라보자 몽둥이로 사람들을 때리는 군사들과 울고불고 살려달라며 소리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먹은 너에 엄마가 눈을 가려주며 귓가에 속삭였어
- 눈 감고 백 까지만 세자.. 시월아
그렇게 엄마의 말대로 눈을 감고 20까지 셌나, 스르르 잠이들었어. 그것이 그 날의 마지막 기억이야
.
잠이 많던 7살의 넌 늘 꿈을 꿨어. 오늘의 꿈은 이상하게도 엄청나게 큰 붉은색 괴물에게 잡아먹혀 그들의 노예가 되는 꿈. 무서운 꿈에 인상을 찌푸리고 일어나자 보이는 광경은 늘 보던 익숙한 한옥이 아닌 특이한 다다미 형식의 바닥에 니 몸엔 불편하고 타이트한 치마폭의 기모노가 입혀져있었어
- 엄마?
모든게 낯설고 이상한 니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가장 처음으로 엄마를 찾았어. 그러자 침울한 표정의 엄마가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기모노를 입곤 니 앞에 앉아있어. 엄마를 발견하고 그제서야 안심한 너가 징징대듯 말해
- 엄마 나 이거 싫어, 불편하고 이상해.. 다시 갈아입을래
그러자 엄마가 평소와는 다른 단호하고 냉정한 말투로 생뚱맞은 말을 하기 시작해
- 이제부터 네 이름은 다케우치 요미코야. 알겠니?
- 무슨소리야 엄마? 여긴 어디야..? 나 무서워
- 네 이름이 뭐라고?
- 내 이름은 시월인데..
그 때 엄마가 네 뺨을 내리쳤어. 옆으로 돌아간 고개. 놀라 아픈것도 모르고 눈이 커져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눈물을 뚝 뚝 흘리면서도 입으론 단호한 어조로 말했어
- 따라해. 와타시노 나마에와 다케우치 요미코데스
- 싫어..!
- 어서 따라하라니까!
엄마가 화났다. 늘 상냥한 말씨에 원하는건 뭐든지 다 들어주던 엄마가 갑자기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이름을 지어주고 이상한 말을 시킨다. 이상한 이름을 지어주길래 진짜 이름을 말하자 갑자기 뺨을 때린다
- 으아아앙...!!
모든게 이상하고 낯선 니가 결국 못견디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
“그 집에 있던 것은 전부 버려주세요.”
아빠는 그 날 이후 가지고 있던 모든 한복을 버리고 양복을 입기 시작했어. 엄마는 늘 기모노를 입고 더이상 머리도 땋아 내리지 않고 늘 쪽신을 신으며 일본말을 쓰기 시작했어
그렇게 넌 조선인 출신 다케우치 겐지의 딸로서 강제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어
.
10살이 됐어. 엄마도,아빠도 모두 변했어. 역겹게도 어린 나이의 너는 일본어를 가르치는대로 빠르게 습득했고 8살, 일본 나이로 7살이라는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어느새 2년이 흘렀어
“요미코 쟤 조선인이라며?”
“에, 진짜?! 그치만 일본 이름을 쓰고 있잖아?”
“응.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요미코네 엄마 아빠가 둘다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랐대!”
“헤에~ 요미코도 조.센징 이래요~~”
그때 가만히 자리에서 듣고있던 니가 드르륵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벅저벅 걸어가 가운데 키가 가장 작은 뻐드렁니 여자애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말했어
- 그래 나 조선인이다. 그래서 니가 어쩔건데?
“히엑..! 뭐하는거야! 안 놔?”
- 내가 너네랑 학교 다니고 싶어서 다녀? 다 니들 때문이잖아!! 전부 다 너네 부모 때문인데..
“..뭐, 뭐라는거야! 일본어로 말해 더러운 조.센징아!”
‘더러운 조.센징.’ 7살 이후로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들어오던 말. 심지어 아버지의 입에서도 나오던 그 말. 울컥한 너가 여자애의 머리를 벽에 쾅 찍으며 말했어
- 다 빼앗았으면 됐잖아..!!! 가족도, 집도.. 목숨도.
“아파..!! 아파!”
- ...그러니까 제발 우리 좀 가만히 냅둬. 부탁할게..
“요미코가 미사에 죽이려고 한다! 선생님 불러!”
그날 너는 조선인 주제에 일본인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이유로 10살의 어린 나이에도 한 학기 정학을 먹었고 높은 신분의 아버지 덕에 겨우 일주일만에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
“미사에에게 직접 사과하렴.”
- 난 잘못한거 없어요..!
“도대체 왜 이 아비 속을 못 썩여서 안달이야 넌!!”
아빠가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멍이 들 정도로 널 체벌했어. 열 대가 넘게 세게 맞았는데도 입술을 꽉 깨물고 난 잘못한 것 없다며 로봇마냥 외쳐대는 너에 결국 한숨을 쉬며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방 밖으로 나가며 반성 할 때 까지 방에 가둬버리고 하루종일 밥을 굶기라며 하녀들에게 신신당부 했어
몇분째 불도 들어오지 않는 껌껌한 방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울고있는데 누군가 방 문을 두드리고 작게 말해
“아가씨..!”
“....”
“주인님 보시기 전에 이거라도 얼른 드세요.”
“난 안먹어.”
“아침부터 굶으셨잖아요..! 얼른요!!”
“안먹는다고!”
“그럼 문 앞에 둘게요. 됐죠? 얼른 드시고 주셔야해요. 들키면 저희 혼나요.”
이 집에서 어린 너를 이해해 주는건 엄마도,아빠도 아닌 하녀였어. 하녀 중 늘 너를 친동생 여기듯 예뻐해주는 하녀 에리. 일본인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직업을 얻기는 힘들었던지라 뿌리가 조선인인지,일본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표면상은 일본인이었어
하지만 일본인 조선인 할 거 없이 열 살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상냥한 언니는 거부할 수 없이 따뜻한 존재였지. 그것도 매정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너와 같은 형편이라면 더욱 그랬고
“..에리, 갔어?”
“아니요~ 전 아직 여기 있답니다.”
“내 방으로 들어와.”
에리가 방으로 들어왔어. 전등도 키지 않은 채 혼자 구석에서 울고있는 널 발견하고 전등을 키자 원피스 밑으로 보이는 퉁퉁 부은 붉은 종아리에 놀란 눈치였어
“에리가 나 좀 안아줘.”
“아가씨.. 괜찮아요?”
“에리는 나 잘못한 거 없는거 알지?”
“그럼요. 우리 아가씨는 잘못 없어요.”
에리가 널 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달래듯 말했어. 에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혼자 가족 여럿을 부양하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있었어
“에리 동생들은 좋겠다.”
“..왜요?”
“에리같이 상냥한 언니도 있고 말이야.”
“제가 아가씨 언니 해드리면 되죠.”
“고마워. 에리.”
“아니에요.”
“..에리도 알고있겠지만 난 아빠가 싫어.”
“....”
말이 없어진 에리. 하녀의 신분으로 거기에 동조할 순 없지만 에리도 똑같은 생각이었을거야. 단순히 부잣집에서 고용한 하녀와 아가씨의 인연이지만 단순한 20살 성인의 시선으로 봐선 넌 그저 사랑을 못받고 자란 응석부리고 싶어하는 열 살짜리 꼬맹이일 뿐이니까
“에리도 내가 더러운 조.센징이야?”
“...무슨 뜻이에요 아가씨?”
“일본인들이 나보고 더러운 조.센징이래.”
“..그건 아가씨가 부러워서 그런거에요.”
“내가?”
“아가씨가 늘 예쁜 옷만 입고,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부럽겠어요.”
에리가 가지고 있던 손거울로 니 얼굴을 비춰주며 말했어
“눈도 이렇게 예쁘고, 코도 오똑하고요. 피부도 비단같이 좋아요.”
“정말?”
“전 아가씨한테 거짓말 안해요.”
“그러면 에리는 나 싫어하지마. 알았지?”
“그럼요 아가씨.”
.
그 사건을 계기로 너와 같이 그 학교에 다니고 있던 몇 안되는 조선인들은 더욱더 경각심을 가지고 조선인의 신분을 숨기며 위태롭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 조선인이 조선 땅에서 조선인임을 숨기고 다녀야 하는 것은 참으로 기괴했지
일주일의 정학이 끝나고 안 간다는 걸 다독여 겨우 학교에 다녀온 너가 집에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에게 달려가 쫑알쫑알 한국어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그런 니가 못마땅했던 아빠가 식사중 말해
“오늘부로 우리집에서 조선말 사용 금지다.”
- 싫어요!
“조선말을 자꾸 써서 그런가. 행동도 조신치 못하고 늘 천박해. 도대체 넌 왜 바뀌질 못하는건지 궁금하구나.”
- 아빠도 조선말을 쓰는 조선인이었던걸요
식사중에 싸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놀란 엄마가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진정시키듯 말했어
- 집에서까지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건 지나친 것 같아요 여보
“얜 이제 일본인이야! 태어난 곳만 조선일 뿐이지 일본인 요미코라고! 이젠 더러운 조.센징 따위가 아니라 이말이야!”
- ..애도 아직 어린데 말 가려서 하세요
듣자듣자 하니까 토할 것 같네. 열받은 니가 쥐고있던 포크를 식탁에 던져버리고 눈물이 차오른 채로 아빠를 노려보고 말해
- 그날 그 일본인 애가 나보고 먼저 엄마 아빠 더러운 조선인이라고 말해서 그런거야..!! 난 잘못한거 없어!
울먹이며 방으로 뛰어와버렸어. 이 집의 유일한 피난처인 니 방 문을 열자 니가 식사중인 틈에 니 방을 정리하고 있던 하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이며 말해
“식사중이신 줄 알고..”
그 때 하녀의 뒤로 보이는 반쯤 닫힌 옷장을 발견해. 옷장을 열어봐도 모두 기모노. 한복이라곤 그날 이곳에 끌려오면서 입고온 한복 단 한 벌 뿐이었어
그런 한복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보물로 여겨오며 절대 못만지게 했는데. 아빠한테 들킬까 몰래 숨겨둔 내 보물을 어떻게 손 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너가 소리지르며 말해
“옷장은 건들지 말랬잖아!!!”
“죄..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요즘 방이 더럽다는 말씀을 하셔서 구석구석 정리하는 바람에 그만..”
“이 방 주인은 난데 왜 다들 아빠 말만 듣는건데? 이 방 주인은 나라고, 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너에 하녀가 당황해 고개를 숙인채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어. 당장 꺼지라며 하녀를 쫓아내고 바로 옷장 제일 구석에 바르게 개놓은 한복을 꺼내 품에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
그 때 식사를 마치고 보다못한 아빠가 니가 우는 소리를 따라 니 방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 잽싸게 침대 밑으로 한복을 숨겼어
“곧 있으면 사토가 오기로 했으니 눈 붓지않게 그만 그쳐라.”
- ..사톤가 사탕인가 관심 없어요. 헛수고니 초대하지마세요
“너가 머지않아 결혼하게 될 남편이야. 게다가 일본인이니 특별히 잘보여야 한다고.”
- 내가 왜 일본인이랑 결혼해야되는데? 나는 조선인인데. 조선인 강원영의 딸 강시월인데!!
- 그럼 내 집에서 나가
‘어린아이니까 넘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버지가 매번 엄마한테 하는 말이었어. 도대체 일본놈들이 무얼 해준다고 뼛속까지 일본인 행세를 내고있는 것인지 어린 넌 늘 궁금했어. 참다못한 아빠가 신발 한 짝 주지 않은채 널 집 밖으로 내쫓았어
“반성하기 전까지 집 안으로 들어올 생각 마라.”
10월인데도 제법 추운 초겨울 날씨인지라 집에서 입는 용도로 쓰는 얇은 실크 원피스 하나 걸친 채 맨발로 밖에 서있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었어. 하지만 자존심은 누구보다 센 너인지라 추워서 빨개진 발 동동 구르는 한이 있어도 저 집구석에 다시 들어갈 마음은 없었어
- 나는 잘못한거 없어.. 나는...
혼자 중얼거리다 보니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나. 한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어린 6살 너에게 웃으면서 한 자 한 자 가르쳐주신 할머니. 어린나이에 일본어를 배우느라 지금도 한글은 쓸 줄 모르지만 할머니 덕에 니 이름 세 글자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어
- 할머니 보고싶다..
할머니. 곧 있으면 내 생일인데, 엄마 아빠는 기억도 못해요. 할머니가 해주신 밥이 그리워요. 할머니 냄새가 그리워요. 할머니랑 같이 한옥에서 자던 그 시절이 그리워요
.
- 애를 왜 쫓아내고 그래요? 아직 어린애가 뭘 안다고..!!
“내 집에선 조선말 금지라고 했을텐데?”
아빠가 귀찮다는듯 파이프형 담배를 빨아들이고 엄마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어. 그러자 엄마의 얼굴에 담배연기가 그대로 뿜어져나왔어. 하지만 엄만 아랑곳 하지 않고 아빠를 끝까지 쫓아가 말해
- 당신 정말 징그러워요. 알아요?
- 더러운 조선인에서 탈피하여 위대하신 천황 폐하의 뜻을 따르고 싶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징그러운가?
- ..당신도 조선인이잖아요. 우리 조국의 피가 지금도 당신 몸에서 흐르고 있다고요
그때 아빠가 걸음을 멈추고 정색하며 엄마한테 얼굴을 들이대자 엄마가 살짝 겁먹어 움찔했어
- 기어오르지 마. 니가 누구 덕에 지금 이렇게 편하게 먹고사는건데, 조선인들 지금 어떻게 사는지 몰라? 당장 경성 구석쪽으로만 들어가도 굶어죽는 사람들 투성이야
- ....
- 그리고 내 조국은 일본이야. 약해빠진 조선따위가 아니라고
말문이 막힌 엄마가 주먹을 꽉 쥔 채 말했어
“알겠어요.”
.
그렇게 20분 쯤 밖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나. 비싼 검정색 차 한대가 집 앞에 섰어. 그리곤 내리는 사토와 그의 부모. 너네 학교 친구이자 약혼자인 사토의 부모는 모두 일본인이었어
“요미코?”
어두운 날씨에도 가장 처음으로 널 알아보고 한 걸음에 달려오는 사토. 그런 너는 사토가 별로 반갑지 않아 그냥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피했어
“추운데 여기서 뭐하는거야.. 얼른 들어가자.”
“저 집구석 너나 들어가.”
“요미코가 안 가면 나도 안 가.”
아무것도 모르고 미소지으면서 니 옆에 서는 사토에 니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어. 지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입어놓고.. 기가차서 그냥 자진해서 사토의 부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어
누구보다 살갑게 사토의 부모에게 인사하는 아빠와 엄마. 아빠의 눈짓에 넌 언제나 그랬듯 예의를 갖춰 꾸벅 인사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고 사토는 겉옷을 벗기도 전에 그런 너를 쫓아 허겁지겁 니 방으로 쫓아들어갔어
“요미코, 오늘 기분 안좋아?”
“넌 노크도 없이 여자 방을 함부로 들어오는구나.”
“에! 미안.. 다시 나갔다 올게.”
“됐어. 그냥 거기에 앉아.”
오늘따라 더 예민한 너에 사토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니 눈치를 봤어. 어색한 공기만 흐르자 니가 먼저 말을 붙여
“...너는 나한테 왜 잘해줘? 너네한테 난 그저 조선인일 뿐이잖아.”
“그야 난 요미코가 좋은걸.”
“..거짓말. 난 일본인 안믿어.”
“그럼 나도 조선인 할까?”
“응. 너도 조선인 해.”
“좋아. 그럼 나도 오늘부터 조선인이다!”
모잘라 보일 정도로 헤헤 웃으면서 자기도 조선인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토가 이상해보였어. 자기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면서..
- 바보. 너 웃는거 못생겼어
“에? 무슨뜻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일본인이면 질색을 하는 너에게 사토는 반가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또래 친구가 없어서일까, 사토는 너에게 가장 편한 사람 중 하나였어. 일본인이면서 널 ‘조선인’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아이이기도 했고
“요미코, 수요일에 생일이지?”
“..어떻게 알았어?”
“수첩에 적어놨으니까. 자 이거 받아.”
사토가 얼굴을 붉히며 화려한 핑크색 보석으로 장식된 비싸보이는 팔찌를 너에게 건넸어. 우리 엄마 아빠도 모르는데.. 기억해줬구나. 보통의 10살 여자아이라면 기뻐서 좋아했을 테지만 손에 건네진 분홍빛 팔찌를 내려다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어
- ...
7살이던 3년 전 그 날, 일본군의 자동차를 타고 아빠를 따라 어디론가 끌려가듯 이동했을때 창문 밖으로 비춰지던 경성의 모습이, 조선인들이 울며 무릎을 꿇고 제발 아이만은 같이 있게 해달라며 빌고있는 그 모습이 난 지금도 이렇게 생생한데
일본인들은 남의 땅에 침략해 호화로운 저택에서 이런 비싼 사치품이나 주고받으며 즐기고 있구나
“미안, 난 이거 못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