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었을 거예요. 갑자기 찬 바람이 확 불어오는. 그때 우린 긴 여행을 끝냈습니다.
다툼과 고요. 관계와 자유 속에서 우린 덜 아프고 더 편한 쪽을 선택했습니다.
네, 이별이었어요. 한참 지난 일이지만 가끔 생각해요. 그때를 닮은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렇게 계절의 경계선에 서 있을 때면 말이죠.
우리가, 지금 함깨했다면 결말이 달랐을까 하고요.
우린 너무 어렸어요. 어렸지만 어린줄도 모르고 사랑은 또 거침없었죠.
다투고 화해하고. 미워하고 이해했다가 원망하고.
성숙하지 못한 내 모습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죠.
너무 많은 것을 서로의 잘못으로 돌렸어요. 사실 가장 부족했던 건 내 자신이었는데 말이죠. 그 사실을 이제야 이해하네요.
기억나나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안에서 내게 편지를 썻던 일을요.
종이비행기를 접어 저에게 건넸죠. 미안하고 고맙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두 단어를 쓰지 못해 몇 줄을 쓰던 사람.
편지를 건넬 때도 삐죽 입을 내밀던 사람. 언젠가 가을에 그 편지를 다시 읽어본 적이 있어요.
그만 읽어야 할것만 같아서 멈추었죠. 구겨 넣을순 없어서 당신이 접은 그 선 그대로를 따라접었어요.
한참 지난 선을 따라 접었을 뿐인데 머릿속은 여러 창문이 지나갑니다.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종이인데 접힌 선을 따라 접으니 당신 지문이, 당신 체온이 느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날 당신은 검은 옷을 입었었는데. 편지를 쓰며 종이비행기를 접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신도 나처럼 우리가 잘 지냈으면 했을까.
마음에 멍이 번지고 또 번져 그날은 오래 잠들수 없었습니다.
더는 당신을 노래할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일까요. 어떤 자장가도 서로에겐 필요 없는데 무슨 궁상일까요.
몇 번의 가을을 맞이하고 느꼇어요.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서로가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을요.
사람은 꼭 한번 사랑을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단 한번 진짜 사랑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이루어지지 않든 이루어지든요.
축하해요. 결혼한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축하한다는 말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네여.
애초에 나는 그런 삶과 거리가 멀었으니 잘 됐다고 생각해요. 잘된 일이라고. 우리 여행이 끝났다는 게요.
요즘 저는 지워지지 않는 이름에 관해 쓰고 있어요. 세상 무엇을 한 번 이라도 사랑해봤다면 자주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있어요.
참 여전하죠 나라는 사람. 우리가 멀어지던 그때처럼 바람 한번 쓸쓸하네요.
봄은 저녁조차 설레는데 가을밤은 이상하게 쓸쓸해요. 낮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 때문이겠죠.
안부라는 말이 요즘 계절과 어울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고요.
당신, 어떻게 살고 있어요? 몇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는 알 수가 없네요.
괜찮나요, 이번 사랑은. 덜 아픈가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나요.
듣고 싶은 말이 많네요. 하고싶은 말도요.
이 모든 걸 다 전할 수 없으니 우리를 이별이라고 부르는 거겠죠.
바람은 이토록 똑같은데. 계절의 냄새 또한 이토록 똑같은데 우리만 달라졌네요.
나는 여전히 가을이 아프답니다.
9월24일 박근호 작가님 인스타에 게시되어있는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