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요즘따라 보고싶네
12년 6월 21일 엄마가 날 떠난 날
6월 19일 내 생일 이틀 뒤였지
초등학교 2학년이였던 나는
엄마가 집에 돌아오니 없던 날
엄청 울었던 게 기억나
몇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쇼파에 앉아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유독 엄마 무릎 위에 앉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
키가 작은 편이 아니였는데도 초등학교 다니기 직전까지 운전석 엄마 무릎 위에 앉고싶어 떼를 썼었잖아
그때도 어김없이 기타치던 엄마 무릎위에 앉았었지
엄마는 기타연습을 포기하고 날 무릎위에 앉혀줬었어
항상 안된다면서 결국 이기지 못하고 날 앉혔었는데
아직도 기억나
엄마가 없었던 그 날 집
사실 나 그때 울었어
그냥 어린 마음에 집에 엄마가 없어서였을까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밤이 되어도
아무도 오지않았던 우리집
언니는 고등학생이였고 오빠는 육사 기숙사에서 생활했었지 아빠는 일때문에 서울에 계셨고
주말마다 아빠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 지 몰라
그 날 이후로 엄마가 입원해있단 걸 알았지
누가 말해줬는 지는 모르겠어 그냥 그냥 엄마가 아프다는 걸 들었던 것 같아
나 혼자 있기엔 참 넓었던 우리집
엄마가 ㄱㅈ기독교병원에 있었을 때
사촌언니와 병문안을 갔었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어디서 주워들었었어
허브가 기관지에 좋다고
코묻은 돈으로 엄마 병실에 허브 가져다주려고 충장로를 얼마나 돌아다녔는 지 몰라
하지만 허브는 없었고 꽃만 잔뜩 팔았었지
그래도 꽃을 사들고 엄마한테 갔었어
엄마는 1층 로비로 마중나와서
이런 거 안줘도 된다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줘서 부담스럽다고 1인실이 아니라서 다른 환자들한테 좀 눈치보인다고 했었지
엄마 나 그때 조금 서운했어
내가 엄마 주려고 많이 돌아다니고 고민하고 고민해서 결국 꽃을 사왔던 거란 말야
그래도 엄마 얼굴 보니까 좋았었어
그때 나 아무것도 몰랐었잖아 겨우 9살 봄이였는데
그러고 몇주뒤였을까 몇달뒤였을까
엄마가 응급차를 타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는 거 들었어
위독해져서였나 수술하기위해서였나 아니면 둘 다 였나 잘 기억이 안나
그래도 아빠가 엄마를 도와줄 수 있으니까 더 나았겠지
엄마.
내가 엄마 세브란스로 갔을 때 준 종이꽃있잖아
그거 학교에서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접는 수업했었는데
나 엄마주려고 방과후에 남아서까지 열심히 만들어서 준거였어
임ㅇㄹ선생님이 엄마가 좋아하실 거라고 그러시더라
광주에서 서울까지 가져간 내 종이꽃다발 좋아해줘서 고마워
막상 도착했을 때 솔직히 두려웠던 거 같아
엄마 얼굴봐서 좋았는데
그냥
그냥 무서웠나봐 모든게
왜 엄마 옆에 더 있지않았을까?
왜 고모랑 사촌언니들이랑 밖에 나가있었을까?
어른들은 불편할까봐 나가계신거였겠지
사촌언니가 나한테
엄마 얼굴 광주가면 못보니까 엄마한테 가있으라고 그랬는데 난 어린마음에 그냥 사촌언니랑 노는 게 재밌으니까 싫다고했었어
엄마
엄마 나 너무 후회해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
내가 엄마 반찬으로 나온 브로콜리도 뺏어먹었었는데
엄마가 브로콜리를 잘먹는다고 칭찬도 했었잖아
아 너무 그리워 너무 보고싶어
이렇게 하나하나 기억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마음이 너무 아파
근데
이렇게 한 번씩 생각하지않으면
그 기억들이 사라질 것 같아
나는 8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야하는데
하나 둘 씩 지워지는 게 느껴져
엄마 내가 준 종이꽃다발 항상 병실에 뒀었다며
엄마 수술까지 성공했다며
난 그때
식물인간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되었어
지금까지 몰라도 아무 문제없는 단어인데 말이야
엄마
깨어나기까지 했었다며
근데 왜
왜
왜 그렇게 된거야?
엄마 나 어렸지만 걱정 많이했어
내 생일날 모두가 축하해줬던 내 생일날 참 좋았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틀 뒤였던 거야?
아빠랑 오빠는 이미 알고있었을 지도 몰라
엄마
나는 오빠가 장례식장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
팔에는 이상한 걸 두르고 정장을 입고있었던 오빠
나는 오빠를 만나서 좋았는데 다들 울고있더라
그때 나도 알았지
참 미운 게 사촌언니들은 장례식장가는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나한테 말 안해줬었어
명절도 아닌데 가족들 다 봐서 좋았는데
눈물이 나더라
엄마
엄마 사진 옆에 내가 준 종이꽃다발
그거 오빠가 놔둔 거래
나랑 언니는 울기 바빴었지
나 그때 처음으로 밤새봤어
초2때 밤 한 번 새보는 게 꿈이였는데
그렇게 새볼 줄이야
근데 이상하게도
난 엄마 장례식 때 기억이 잘 안나
5일장이였는데
왜 나는 엄마 관 옮기때만 생각이 날까
엄마 화장하려고 들어갈 때 였나 그때 사촌할아버지께서 내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엄마 관 한 번 만져보라고 했었어
나 그때 거절했지 힘주면서 싫다고
왜 그랬냐면
나 너무 무서웠어 그냥
그냥 그 안에 엄마가 있다는 게 두려웠었나봐
너무 그냥 죽음을 느끼기엔 너무 어렸었나봐
그때 손 대볼 걸 엄마의 마지막 온기가 느껴졌을 수도 있잖아
엄마
너무 보고싶어 너무 그리워
이제 난 곧
엄마 없이 보낸 날이 더 많아져
나 2개월뒤면 18살이야
엄마가 떠난 지 벌써 8년지났어
어떻게 8년을 버텨왔나싶어
그리고 어떻게 내 남은 생을 살아갈까싶어
내 나이에 부모님의 역할이 큰 것같아
내 친구들 보면 그래
그냥.. 부럽더라
나 자존심 센 거 알잖아
근데 그냥 하염없이 부럽더라 너무너무
아빠가 뭐 해줬다 엄마가 뭐 사줬다
이런 거
아니
그냥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러워 나는 나는 그래
나도 엄마랑 전화하고싶어 아빠랑 용돈협상하고싶어
아빠도 너무 보고싶어요
아빠 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질문 항상 친구들은 둘 다 이럴 때 난 아빠라고 했었어요
사실 지금도 아빠가 더 좋아요
아빠가 내 첫번째 사춘기시절 함께 해줬잖아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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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많이 위로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판 처음 깔아서 일기쓰듯이 쓴 건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중간에 끊긴 이유는
울다 지쳐서 쓰다가 잠들었네요ㅠ
저희 엄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십니다
폐렴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2년동안 버티시다가 우울증이 심해지셔서
돌아가셨는데
어른들은 저에게 아빠가 돌아가신 제대로 된 이유를 안알려주시네요
저희 가족끼리는 부모님이야기를 서로 꺼리거든요
저한테만 꺼리는 거 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상처받을까봐 다들 쉬쉬하시는 것 같고
언니랑 오빠랑 셋이서 부모님얘기는 잘 안합니다
저도 먼저 물어보고 싶고 말 꺼내고싶은데
언니 오빠 둘 다 잘 버티고있는데 괜히 제가 흔드는 건 아닐 지, 얘기하다가 내가 더 상처받지는 않을 지 걱정되고 두려워서 말 못하겠어요
17살이라는 나이가 많이 힘든 시기라고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철이 들고 있는 걸까요? ㅋㅋ....
부모님 얘기 친구들에게는 절대 안합니다
아무리 그립고 힘들어도 작년까지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었지만
저는 부모님이 안계시는 게 제 가장 큰 하자인 것 같아서요
자존심이 세서 그런지.. 그냥 제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20년도 되고나서야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들 몇명에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말하고 털어놓다보니 저도 답답한 부분이 풀리더라구요
제 또래친구들은 제 상황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죽음 이라는 게 멀게만 느껴질텐데 그래도 친구들이 얘기를 듣고 너가 부모님이 계시든 안계시든 너는 너고 그 사실로 인해 내가 너를 다르게 대하진 않을 거라고 했던 말이 참 고마웠던 것 같네요
제가 봤던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주말에 광주에 있으시다가
서울로 올라가시기 전에 언니와 저랑 함께 저녁밥을 먹고 가시려고했었습니다
저는 영어학원이 늦게끝나 같이 먹지 못해서
언니랑 아빠 둘이 밥을 먹었어요
제가 영어 끝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택시안에서 아빠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빠 이제 간다고 집가서 밥 먹으라고 하시고 가셨어요
그게 아빠와 저의 마지막입니다
며칠 뒤 또 똑같이
오빠가 장례식장앞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때도 고모 사촌언니는 그때까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아빠도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끝나고 언니랑 집에와서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둘 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밤이 기억이 나네요
안방에 아빠가 있을 것만 같은데
이게 꿈은 아닐까
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였습니다
가장 슬픈 게 뭔지 아세요?
저희 엄마는 음대출신으로 노래를 부르던 직업이셨고
악기도 다루시고 교회 찬양대활동을 열심히 하셨었어요
저는 항상 엄마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랐었습니다
근데
이제 엄마 목소리가 기억이 안나요
냄새같은 거는 지나가다가 아 이 냄새 우리 엄마 냄새다 우리 엄마 향수냄새다 하며 생각이 가끔 나는데요
목소리는 더이상 기억이 안나네요
지금까지 많은 소리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는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않네요
또,
엄마 아빠의 촉감? 이 기억이 안납니다
저희 가족은 스킨쉽을 안하는 편도 아니고
저는 막둥이여서 가족한테 이쁨을 많이 받았는데도
아빠 손을 맨날 잡고 다녔는데도
아빠 손이 부드러웠는 지, 까슬까슬했는 지, 차가웠는 지, 따뜻했는 지
전혀
전혀 기억이 나질않네요
저는 작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작년에 언니가 결혼을 했는데
형부한테 내 마지막 남은 가족을 빼앗기는 느낌이였어요
오빠는 이미 결혼을 했고
이제 마지막 남은 언니도 결혼을 하니까
저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느낌이엿어요
착한 동생이라면 언니가 잘되는 걸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걸 좋아해야되지만
저는 착한 동생이 아닌가봅니다
오빠 언니 결혼식에 전 항상 울었습니다
그냥 너무
저만 혼자가 되는 느낌이였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감정들이 사라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혼자인 느낌은 많이 들어요
저는 오빠한테 용돈받는 것도 너무 미안합니다
언니 신혼집에 얹혀사는 것도 너무 미안합니다
형부한테 새언니한테 정말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제가 가족에게 짐인 것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어요
제 친구들 중에 막둥이인 애들은 형제나 자매가 결혼해서 독립하면
엄마아빠 집에서 잘 살던데
형부가 물론 정말 잘해주시지만
솔직히 눈치보이고 너무 미안해요
누가 신혼집에 아내 동생을 데리고있고싶어할까요
형부한테 너무 죄송하고 고마워요
하지만 행동은 쉽지가 않아요
반항하게되고 떼쓰게 됩니다
그냥 왜 하필이면 나일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졸업식때 친구들에게
부모님이 안계시는 사실을 들킬까 걱정해보신 적 있나요
학교에서
안내장에 부모님 싸인 해오라고 할 때
오빠 언니 이름인 거 들킬까봐
걱정해보신 적 있나요
연락처에
엄마 아빠 없는 거 보일까봐
핸드폰 가려서 해보신 적 있나요
그냥
그냥
어떤 삶을 살고 계시는 지 모르지만
저는 남들이 부럽습니다
저보다 힘든 삶을 살고 계시는 분도
많겠지만
오늘은 제가 가장 불쌍한 척 해보고싶네요
보고싶은 엄마 아빠
천국이 있든 없든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으면 좋겠어
그냥
꿈에라도 나와주면 안돼요?
아무 말 안해도 되니까
그냥 다시 딱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