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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1억 모으기 돌파 축하해주세요

ㅇㅇ |2020.11.28 22:57
조회 8,475 |추천 41

어린시절 엄청 가난하게 살았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할머니께서는 부모님 없는 티 안내신다고

정성껏 길러주셨다.

초등학교때 용돈은 하루 300원

중학교때는 하루500원씩 주셨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지금생각하면 할머니도 무리를 해서 꼬박 꼬박 챙겨 주신것이었다.

가끔 집앞 텃밭에서 기르신 야채 를 시장에 가져다가 파시고..

내이름으로 수급비 나오는 얼마와 삼촌이 월마다 할머니께 드리는 용돈이 전부셨다

 

 

그러다가 할머니께서 계속 편찮으시다가 중 3때 돌아가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알았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세상이 었고 할머니 없는 세상은 상상할수가 없었다

 

무뚝뚝한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못해드린게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고 지금도 그게 한이 된다

 

지금 쓰고 있는 중에도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다..ㅜㅜ

 

그렇게 나는 중3때 혼자가 되었다

 

생계비로나오는 정확히 얼마인지 기억이 잘나진 않지만

이십만원 후반대였던거 같다

 

그걸로 혼자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고등학생이 되어 일부러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들어갔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여서 학비도 무료였고 급식도 무료였다

 

주말에만 나올수 있는 답답함이 있었고 따로 아르바이트를 할수 없어서 

고3 졸업전 알바를 했다

왜냐하면 대학교에 들어갈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척들이 있었지만 친척들은 나보고 대학을 가지말고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하라고 하셨다

그치만.. 공장은 너무도 가기싫었다.

 

 

그렇게 3년을 어떻게 버티고 버텨서

대학교를 갔다

첫 등록금은 수시정형 과 1등으로 전액장학을 받고 갔지만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았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대체되었지만 기숙사비용과 입학금은 따로 내야 한다고했다

대학 들어갈때 300만원정도 모아서 갔는데

입학금 기숙사비 약 150정도 내고

대학입학하고 한달만에 백만원 가까이 빠져 나갔다.

책도 사고 과 행사비 식비 등등..

대학교때가지 수급비는 나왔지만.. 나가는 돈이 너무많았기에 너무 마음이 조급해 졌다.

 

그래서 알아보다가 근로장학이라고 교내에서 알바를 할수 있는 것이 있어 신청하였다

그로인해..나의 대학생활은.. 학교 일 학교일로... 즐기지를 못했다..

너무 바빴다

거기다가 욕심도 있어가지고.. 동아리 회장과 학생장도 겸임하며..

그러다보니.. 내사정을 모르는 친구한명은

돈에 미쳤나보다 라고 뒷담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친구는 부모님이 등록금 기숙사비 용돈까지 다 지원해주시고 있는 친구였다.. 기숙사도 나보다 좋은 방이었고..) 그땐 조금 슬펐다..

 

전문대를 나와서 돈을 벌려고 교수님의 추천이 있었지만 편입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난으로 조금 방황을 하였다

타지생활도 하고.. 생계비도 대학졸업과 동시에 끊겨서..월세.. 식비..나갈 비용이 많았다

그래서 급한데로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월 100만원에 사대보험도 안되고 식비 30만원 따로 주는

아파트 하자보수사무소였다

 

식비를 아껴보겠다고 컵라면작은컵을 사와서 컵라면에 물을 많이넣어 배를 채웠다

가끔 대리님이 밥을 사주시기도 하였다..

그렇게 4개월정도 근무를 하고.. 전공을 살릴수 있는 길이 생겨

이직을 하였다.

 

이직을 하고난 후. 24시간 교대근무여서 생각보단 월급이 많았다

200은 넘지않았지만..

130을 벌었던 나로서는 엄청큰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에..

월급전 돈이 남은 것이 있으면 다 적금 통장으로 넣었다.

고정지출 빼고는.. 정말 많이 아꼇다..

밥도..거의 라면으로 떼우고..

옷이나 치장하는것은 거의사지않앗다.

 

 

고정 지출이 많긴하였지만.. 그때 당시로는 이자율도 지금보다 높았기 때문에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2년정도 일을하고 다른지역으로

옮겨 이직을 하였다.

월급이 조금 줄어 들고 월세가 조금 더나갔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모았다.

 

그러다가 26살이 되어

4500만원 원룸 전세집을 들어가게 되었다

 

힘들게 모은 돈이라 전세가 불안하고 무섭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월나가는 지출이 줄어드니 감사한마음으로

...

 

그리고 약 3년간 일을 한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여행을 다녔다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여행비용도 엄청 큰 것이었고

안정적인걸 좋아하는 나에게 새로운것을 도전한다는.그런...

그래도 아껴서 도미토미룸사용하고 지출을 최소화하는 계획을 세워 여행을 갔다

너무 쉼없이 달려온거같아 휴식이 필요했다.

유럽을 다녀왔다. 한달정도

너무 세상이 아름다웠다..

여행중에는 너무 너무 행복했다..

행복하면서도 할머니생각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그아픔이 줄어 들지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시절 그아픔을 하소연할 어느누구도 없었기때문인거같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국내여행을 하다가

다른일도 해보자 싶어서 다른일도 도전해보았다.

급여가 너무 작아서.. 또 현실에 부딪혔다..

그래서 나는 전공을 살린 계약직 3개월 짜리 근무를 하고 또 휴식기간을가졌다.

계약직이라 경력이인정이 되지않아 월급이 적었지만..

 

한번더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조금 느긋한 여행을..

 

다녀와서 일을 구하려니..

일이 잘 구해지지 않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으로

제주도에가서 귤 선과장에서 짧게 일을 하였다

더 하려고 했지만 전세계약이 만료가 될 시점이어서.. 이사를 해야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집을 구하러 다녔다.

 

그리고지금 살고있는집으로 겨우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이사하고 한달뒤에 취직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따

근무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벌레가나오고 하니 잠을 못자..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했는데.. 5개월동안 구해지지 않다가

겨우 구한곳이 지금 직장이다.

 

모아놓았던돈을 너무많이 탕진해서

(쉬는동안 배달어플을 너무많이 사용..ㅜㅜ)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넘게 일하다보니..

어느세 내통장에 오천만원 이상이 들어와있었다

전세보증금과합하면 1억이 조금 넘었다.

그게 내가29살 후반에 보았던 금액이다

 

 

이전처럼.. 이자가 높지않아 이자를 많이 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적금드는 것으 깨지않고, 주택청약도 청년주택청약으로바꾸고..

하다보니..그금액이 있었다

 

그리고 30살막바지인 지금은.. 1억 2천만원정도 .. 모아가는중이다

그런데 막행복하지는 않다

주변에 자랑도 하지 않는다

내가 모으는 동안에 행복한 모습을 많이 보이지않았고

계속 돈돈 거린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밖에 없기에

나름 알뜰하게 살려고 한 모습이

주변사람들에게는 조금씩 불편함을 준것같아..

그렇다고 친구들이 보자할때 안나가거나 더치페이를 안한다거나 그런건 없었다

그냥 일상에서 내가 아낄수 있는 부분에서는 나도모르게 저게 돈이얼만데 하면서

참꺼나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저렴한걸 골랐었다..그런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들..ㅜㅜ

 

주변 친구들에 비해서 지금나이에 아무런 도움없이 이정도 모은것은

많이 모았따고 생각을 하지만

아직도 나는 불안하다

결혼에 대한것은 생각도 하기 힘들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또 부딪히게 될까봐..

 

판을 자주보는건아닌데 가끔보닥보면..

연애결혼 부분에서..

다들 결혼준비 하면서 부딪히는 부분이 거의.. 돈문제더라..

 

나도..그만아끼고..

내가 하고싶은거

먹고싶은거

사고싶은거

억누르지 않고 사보고싶다..

 

명품 이런건 꿈도 꿔보지 못했지만.

 

십만원하는 브렌드옷

걱정없이 죄책감없이 사는 그런날이 왔으면 좋겠다.. 

 

 

 

 

추천수41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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