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써 엄마의 한숨 소리를 듣는 게 3일차이다.우리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조그마한 식당에 계약이 만료되면 나가라는 건물주의 통보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방학 때면 친구들이 국내며 해외며 놀러갔던 이야기를 하면'난 덥고 추운 거 싫어, 방학에는 그냥 집에 있는게 제일 좋지'라며 웃을 때,한창 유행하던 노스페이스 패팅, 아디다스 져지를 보면서'난 저런거 입고 다니는 애들 이해가 안돼'라며 아무 로고 없는 패딩을 몰래 숨겼을 때,한번도 가본 적 없는 애슐리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가서 처음 온 티 안내려고 눈치보던 때,다음달 과외비로 걱정하는 엄마한테 과외 별로인 것 같다고 이번달까지만 하겠다고 말할 때,
못 먹고, 못 입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우리집이 평균에는 살짝 못미칠지도 모르겠다는,주말 없이 우리 부모님은 남들보다 조금 치열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자존심이 강했고,부족해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었지만남들보다 오래 앉아있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까.그리고 성적도 꽤 좋게 나왔고, 운도 꽤나 따랐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있던 것은 아니다, 어떠한 소명의식도 없었다.그냥 안정적으로 돈이 벌고 싶었다.공무원은 좋았지만 대학으로 공무원이 확정되지는 않았다.선생님도 좋았지만 많은 돈을 벌기에는 부족했다.그래서 소위 의치한이라 불리는 학과에 입학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모든 것이 술술 풀릴거라고 생각했다.졸업만하면 한달에 오백을 버네, 연봉 일억을 받네.꿈같은 이야기들이 들렸다.
근데 들어오고 보니 동기들의 씀씀이가 남다르더라.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면 어떤 명품을 샀고, 어떤 차를 몰고 다니고,어떤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고, 어떤 나라에 여행을 갔고,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했다.
누군가 말했었다. 동기들 중 성적 상위 20프로 안에 드는 애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애들이라고.정말 돈 많고 이미 부모님이 병원을 가지고 있는 애들은 그렇게 아등바등 안 산다고.들을 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건물에서 나가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내가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부모님을 위로하는 것도 아니었고,우리 집이 당장 망할까봐 불안에 떠는 일도 아니었다.그냥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켜고 국가장학금을 신청했다.그리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세상에 많아'라며 남들의 불행을 위로삼았다.
나도 알고 있다.우리집이 당장 망할 일은 없다는 것을.그냥 일이년정도 평소보다 조금 아끼고, 평소보다 조금 불충분하게 살면 된다.사려심 깊은 우리 부모님은 자존심 강한 딸을 위해 돈이 부족하단 얘기는 하시지 않을 것이고생활비, 학자금은 모두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 받고 있으니 다음학기 등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아등바등 살다가 졸업하고 나면나는 대출금 천만원을 갖고 있는 사회 초년생일 뿐이고지금 놀고 있는 동기들은 부모님 병원에서 경험을 쌓으며 병원 물려받을 준비를 하겠지결국 나는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남들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지
부모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그분들은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존경 받아 마땅하신 분이니까.내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졸업하고 나면 다른 친구들보다 취직도 잘될테고, 돈도 나름 벌겠지.
이건 그냥 가끔 찾아오는 무기력증 같은 것이다.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고개를 들어보니 꼭대기까지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고 느낄때갑자기 찾아오는 그런 무기력증.
아무도 보지 않겠지만그냥 이렇게라도 쓰다보면 좀 기분이 나아질까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적었다.내일은 좀 더 나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