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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망한 재수생

판 보니까 나 같은 안타까운 상황인 친구들이 많아서 글을 써 이게 정말 그럴 수 있더라. 평소 모평이나 사설볼 때는 안정적이게 받다가 수능 날 미끄러진다는 거. 그거 진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거더라. 내가 그랬거든. 누군가는 그것도 실력이라고 다 자기 책임이라고 할 지 모르지, 물론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인 건 나도 인정해. 근데 그냥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우리한테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거라고 생각하자는거야. 나한테 일어날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아니, 상상도 하기 싫었던 일이 벌어지더라고. 정말 수능 보기 전까지는 내 결과가 이렇게 처참히 부숴질 지 몰랐어. 최고의 결과를 원한 것도, 노력한만큼 나오길 바란것도 아니고. '최악만 면하자' 라는 심정이었거든. 정말 겸손하게 마음 먹고 시험을 봤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역대급으로 최악이었어. 작년하고 크게 차이가 없더라 내가 이때까지 뭐했나 싶을 정도로. 어제는 그 결과를 부정했어. 아직 성적표 안 나왔다고. 근데 다음날인 오늘에서야 실감이 나더라. 오늘이 논술 보는 날이거든. 그래서 어제 알람도 맞춰놓고 일찍 일어났는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최저 못 맞췄는데 가야 돼?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어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거야.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원서비 지원해 준 엄마 생각해서라도 그냥 최저 맞춘것처럼 굴어서 아무 일 없는 듯이 보고 오자고. 어쩌면 또 이게 가치 있는 경험일 수 있으니까 일단 가서 뭐라도 쓰고 나오자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렇게 5분을 누워있었는데, 엄마가 방문 열고 들어오더니 조심스럽게 말하더라. 최저 못 맞춘거면 안 가도 된다고. 엄마한테 미안해하지 말라고. 푹 쉬라고. 너무 죄송하더라. 무슨 내가 죄인이 된 것 마냥 그런 기분이 들더라.. 우선 원서비는 알바해서 갚으려고.. 이게 맞는 것 같아. 사실 그렇잖아, 최저를 못 맞췄다는 건 원하는 등급을 못 받은거고 수능 성적으로 대학 가기 힘들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 어.. 어쩌다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차마 내가 삼수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안 떨어지더라. 재수 때 충분히 했고 다시는 못 돌아가겠어서도 있지만 부모님이 그 힘든 1년의 시간을 묵묵히 바라보고 지지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것 같아서 또 그 고통을 안겨드리기 싫었어. 물론 아쉬움, 미련, 후회 이런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히지만 내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내 몫이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훌훌 털어버리려고 노력 중이야. 현실에 맞춰 대책을 세우려고 해도 아직 막막하고 눈앞이 깜깜해. 내 성적으로 어디를 가야할 지, 맞춰서 갈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될 지. 나는 여기에서 멈추지만 너희가 더 도전해보고 싶거나 여건이 된다면 얼마든지 다시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 너희들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거야. 그러니까 우리 수능 그거 한 번 미끄러졌다고 실패자나 낙오자처럼 자기를 치부해버리지 말자. 그저 운이 나빴던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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