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 난 같은 음악동아리 선후배관계이다. 신입생시절 그 여자아이는 남자처럼 짧은 커트 머리에 자기 손바닥만 한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고 다니는 자유분방한 아이였다.
4년 전 햇살이 따뜻했던 여름, 나는 평소 동아리 방에서 음악을 혼자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간과 공간은 나만의 편안한 작은 안식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며, 동아리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짧은 머리에 그 여자아이가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한참을 가만히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순간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난 귀척을 하였고, 그제야 그 아이가 내가 계속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혼자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쑥스러운 미소를 보이는 그녀가 너무나 귀여웠다.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매일 동아리방에서 만나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평소 나만이 즐기던 공간에 그 아이가 작은 안식처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그 후 동아리에서는 물론 학교생활 전반에서 우리는 연인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을 바보같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정말로 좋아지면서 나도 모를 걱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당시 그 아이와의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어느 순간 깨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항상 옆에 있으면서도, 좀 더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을 느낀 그 아이도 나를 위해 많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을 어린 동생으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평소 안하던 화장을 하고, 머리도 기르고, 예쁜 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훨씬 여성스러워진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지만, 그에 따른 부담감은 더욱 커져만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난 그 아이에게 사랑한 단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그 아이에게서 꼬박꼬박 편지받았고, 그 것은 힘든 군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그 아이가 더욱 생각날까봐 일부로 면회도 오지 말라고 하고, 휴가를 나와서도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나는 미안한 마음에 상병휴가 때서야 학교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과 술에 취한 밤 나는 그 아이를 집에 바래다주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가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우린 빨간 실타래 속에 서로 엉켜 있는 것 같아. 오빠가 계속 그 실타래를 복잡하게 엉클려고 하고 있지만, 난 그 실타래를 계속 풀어 볼 거야.” 그땐 난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술에 취한 그녀에게 웃음만을 지어보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아이와의 만남은 또다시 고백하지 못하고 그렇게 지나가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바보 같은 내 자신이 싫어, 나는 그 아이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나는 군대를 전역하게 되었고,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더욱더 여성스러워진 그 아이는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4학년으로 바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고, 바쁜 와중에도 나를 반갑게 맞이 해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은 그 아이에게는 남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내 사랑에 용기가 없었던 나 자신보다는 그 아이에게 당당하게 다가가준 그 남자친구가 부러우면서도 고마웠다.
그 후 새롭게 동아리신입생을 소개하는 자리에 그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한 것도 있었지만, 술 한 잔 하다 보니 마치 어제 만난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 아이의 남자친구가 바래다주기위해서 온다하여, 잠깐 기다리는 곳에서 단둘이 있게 되었다. 일 년 전과 달리 정막이 흘렀고,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언제, 예전처럼 동아리방에 가서 음악도 듣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럴까?”
순간 가슴이 뛰었지만, 조금이나마 그 아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아이에게는 이젠 멋진 남자친구가 있고,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때 보였던 바보 같은 웃음 대신에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좋지! 하지만, 예전에 네가 그랬지. 마치 우린 실타래처럼 엉켜있다고, 이제 그만 그 실은 놓자.”
곧 그 아이의 남자친구가 다가왔다. 인사를 주고받고, 그 아이가 남자친구와 함께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이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일 년 전의 바보 같은 순간에 비하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