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어머니...
부모가 자식흉 보는거야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자식은 부모흉을 감히 볼 수 없으므로 닥치고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익명이니 남겨본다.
어머니는 남의 흉을 보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지 못한다.
늘 뱀눈으로 상대를 쳐다보고 있으니
상대도 자신을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고 누가 별 말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흉을 본 게 틀림없다 난리를 친다. 정작 흉은 본인이 본다.
나는 고모를 아주 어릴 때 뵙고는 못 뵈었다.
그런데 아직도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네 고모!! 네 고모!!! 김치를 이렇게 잡고 응! 더럽게 말이야! 엉!"
고모가 김치를 젓가락으로 어떻게 했댄다. 30년이 넘게 듣고 있다.
없는 것도 지어내고 부풀리는 어머니가 30년 넘도록 고모 흉 볼 게 저거밖에 없다면
고모가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깨달았다.
근데 어머니 본인이야말로 반찬을 들쑤신다.
하루는 어이가 없어서 어머니가 멸치 한 번을 집는데 젓가락질을 몇번을 하는지 세어봤다
정확히 10번을 멸치를 집었다 놓았다 다시 집었다 다시 놓았다를 반복했다.
"멸치 한 번을 먹는데 10번을 집었다 놓았다 하시네요" 하니까
"너는 왜 그런 걸 세고 있어!!!!!" 소리를 지른다.
머리를 잘못 잘랐다고 하면 "흥! 지가 언제는 예뻤는 줄 아나보지?"
남자친구랑 헤어지면 "걔 바람났지? 걔 딴 여자 있다~ 나는 다 알아!"
회사를 그만두면 "회사에서 너 잡지도 않지? 다시 오란 말도 안하지?"
실제로 회사에서 언제든 다시 오라고 말했던 참이라 그대로 전하면
"넌 그 말을 믿니? 저렇게 애가 멍청하다."
나는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생전 떨지를 않는다.
그런 걸 앞두고 떤다, 긴장한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해본적이 없다.
직업도 남 앞에서 얘기하는 것인데 회사를 옮길 때마다 면접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근데 어머니는 말한다.
"너 벌벌 떨지? 너 남앞에서 벌벌 떨잖아!"
내 얼굴 표정을 살피며 낄낄댄다.
"누구네집 딸은 엄마한테 명품백을 턱턱 사준다더라. 걔는 전철 타고 다니면서 일이란 일은 닥치는 대로 한대!!!"
나는 그렇게 일하면 쓰러진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한다. "약먹으면 되잖아!"
그리고 정말 내가 과로로 쓰러졌다. 일이 너무 많았다.
병원에 와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OO네 집 딸은 너보다 일을 더 많이 해도 안 쓰러지던데...하긴 뭐 지가 실력이 없으니까 쓰러졌겠지~"
주님께 회개하고 자기처럼 좀 괜찮은 인간이 되어보라며 자기를 보라고
나는 이렇게 건강하다~ 낄낄대고는 가셨다.
"여보세요" 전화받자마자 "야!!!!!!!!!" 소리를 지르신다.
욕설을 퍼붓는다.
어렸을 때도 이랬다. 어렸을 때라 하면 9살, 10살을 말한다.
내가 울면서 나한테 왜 그러냐고 하면 엄마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찼다.
지금도 기억난다. 너무 좋아서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그릴 수도 있다.
내 고통이...어머니에게 저 정도의 희열이라니...나는 서 있고 어머니는 식탁의자에 앉아있었는데 환희에 찬 얼굴로 눈물 범벅인 된 내 얼굴을 더 가까이서 보려고 허리를 낮추던 모습.
"야! 네 얼굴 봐봐. ㅎㅎㅎㅎㅎ 야 너무 못생겼어! 진짜 못생겼다. 어머어머어머! 코 빨개지는 것 봐! 야! 안 울면서 말해봐. 못해? 그거 못해? 푸하하하하하하"
어머니에게 "당신 둘째딸이 당신 앞에서 마지막으로 운 것이 언제냐?"라고 묻는다면
어머니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왜냐고 묻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소리를 지르셨다.
"따지지 마! 따지지 마! 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그렇게 컸다. 대학시험보러갈 때도 아침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가 죽으라고 너같은 X은 나가 죽어야 한다며 얼굴 씻을 때도 옷입을 때도 따라들어오고
대문을 나설 때까지 죽어! 죽어! 죽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대 법대 면접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전철에서 서서 내내 창밖을 보며 조용히 울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전화받자마자 욕설을 날리는 어머니에게 "저한테 왜 그러세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말했다.
"너가 내 딸이잖아. 딸한테 이렇게 하지 누구한테 이렇게 하니?"
어머니는 남의 집 딸들은 상욕을 해도 아잉~ 엄마 왜 그래요~ 엉덩이를 흔들며 팔짱을 끼는데 저X은 지가 잘난 줄 알고 애미를 가르치려 든다고 자식 키워봤자 소용 하나도 없으며 엄마들의 희생은 끝이 없다고 하셨다.
다행히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여성혐오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을 볼 때 반쯤 진심으로 동정심을 느낀다.
저런 여자 밑에서 컸으면 네가 이성적으로는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도
본능적으로는 여자를 보면 구토를 느끼겠지...라고 말이다.
내가 병으로 시력을 잃은 적이 있다.
처음에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고 나는 이렇게 영원히 앞을 못 보게 되는 것이구나 각오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어머니께 얘기했고 어머니는 심드렁했지만 네가 교회를 안 다녔으니 이렇게 된 거라고 이제 너도 좀 회개하며 살겠구나~ 비아냥대셨다.
"야! 나랑 네 언니는 이미 얘기 다 했어. 너 이제 반성 좀 하고 새로 살겠구나 하고. 우린 다 그렇게 생각해~"
처음에는 심드렁한 어머니였지만 내 병명이 나중에 난치성 희귀질환인 것으로 나오자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보였다.
교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다.
본인 카톡에 저장된 모든 이들에게 딸이 희귀질환으로 앞을 못본다는 글을 뿌렸다.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어머니는 뿌듯해 하셨다.
"야! 봤지? 내가 얼마나 인기있는지 봤지?"
4월이었다. 나는 추워서 벌벌 떠는데 어머니는 창을 활짝 열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시를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야! 읽어!"했는데 내가 앞이 안보인다고 하자 "흥! 못 읽어? 그럼 내가 읽어줄게!"하고 읽으셨다. 왜 개 똥만 닦아주고 부모 똥은 안 닦아주냐는 별 그지같은 시였는데, 내가 그만 좀 하라고 하니까 어머니는 딴 걸 읽어주겠다고 했으며 하루 종일 내 옆에서 자기 얘기를 하며 자기랑 있으니 재밌지 않냐 하셨다. 나는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라 그만 좀 하라고 하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어머! 너 내가 인기 있는 게 싫으니?" 하셨다
나는 빛을 못 보기 때문에 형광등 아래에서조차 선글라스를 써야 했고 샤워할 때는 휴대용 흐릿한 미등 하나를 들고 들어가서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는 관심 받으려고 오버한다는 듯이 비웃었다. 병 때문에 머리카락이 암환자처럼 빠졌다. 어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야!! 네 머리카락!! 네 머리카락!! 이거봐 이거봐 이거 다 네 머리카락이야!!!!"
내가 잘 못보니 내 눈앞에 머리카락을 들이밀고 흔들었다.
"전 잘 안 보여요"라고 말하자 갑자기 톤을 바꿔 "아니잉~~ 내 귀한 딸 머리카락이라고~~ 아잉 아까워라~~~ ㅍㅎㅎㅎ" 하셨다. 아, 내 집이었다. 어머니 집도 아니었다.
엄마란 참 이렇게 희생적인 존재며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들은 자기 탓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있다며 앞을 못 보는 내게 "내가 너를 임신했을 때 낙태도 때를 놓쳐 못했지 하루도 기분 좋은 날이 없더니 글쎄 세상에 네가 이렇게 태어났네~ 역시 태교란 게 중요한가봐~"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어머니랑 살았다.
이게 내 생활이었다.
이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일은 없었다.
언니는 어머니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조차 쟤는 지 동생한테 너무 심하다 할 정도였다.
물론 남들 앞에서는 "오호호호호 세상에 저렇게 동생한테 잘하는 언니는 없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서서 갑자기 문맥에 맞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본인도 찔리긴 엄청 찔렸나보다.
아버지는 뭐했냐 물을 필요도 없다. 저런 여자랑 애 낳고 사는 남자, 처음에는 멀쩡했어도 나중에는 같은 수준으로 된다.
근데 그 여자가 지금 치매 초기란다.
모르지...지 애미의 샴쌍둥이인 그 첫째딸이 관심받고 싶어서 과장해서 하는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치매 초기란다.
치매 초기의 증상을 찾아봤다.
해놓고는 안했다, 안해놓고는 했다, 내가 언제 그랬냐 기억 안난다. 하지도 않을 일을 했다고 덮어 씌우고 사람 환장하게 만들어서 왜 저러나 했더니 알고 보니 치매라네 뭐 그런 얘기들....
근데 그렇게 치면 저 분은 한 평생이 치매였다.
방금 한 말도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 이거 웃기는 애 아니야! 야!!!!!!!!! 내가 언제 그랬어!!!" 소리를 질렀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찔려서는 "나는 기억 하나도 안나!!! 기억 하나도 안난다구!" 이랬다. 침소봉대, 왜곡, 이간질....
그 여자는 30대 때도, 40대 때도, 50대 때도....늘 그랬다.
간 좀 보다가 사람이 순하다 싶으면 가지고 놀려고 들고 성질 더러운 사람 밑에 붙는 것...
누구한테 배운건지 타고난건지 나는 알겠지만 말은 안하겠다.
그럼 줄줄이 너무 여러 사람이 나오니....
하여간 신나게 소리지르고 욕하고 비아냥대며 사셨다.
어머니는 자기 인생은 영화 같으며, 장관 마누라로 살 팔자였다고 말하는데(이걸 내가 5살 때부터 들음) 어찌됐든 둘째딸 인생을 자근자근 씹고 즐기고 눈알까지 파가며 신나게 사셨다.
억울할 일은 하나도 없이 신나게 사셨지만 늘 그렇듯 가해자 목소리가 제일 큰 법이다.
뭐라고 찧고 빻고 지어낼지 뻔히 알지만 어쩌겠는가...
그냥..써봤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 분 손에 많이도 부서졌지만 사는 게 이런 거다.
아...눈이 그렇게 된 뒤에...내가 몸이 아프니까 너무 힘들어서 전화기에 대고 제발 좀 그만하라고 나 약이라도 먹게 제발 좀 사람이 싫다고 하지 않냐고 소리를 지르고 지금은 안 보고 사니까 숨을 좀 자연스럽게 쉴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당시에도 어머니는 옆에 아버지가 계시니까 콧소리 가득 넣어 "오옹~~ 내 강아지~~ 어디가 아픈거양~~~" 문맥에 맞지도 않는 앵앵거리는 소리를 계속 내셨다. 왜 그러는지 알지만 아무리 익명이라도 여기다가는 차마 안쓸란다.
하여간... 그 여자 밑에서 태어나 힘들었고...힘들었다.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 그만 살고 싶었는데 그 여자, 그 여자 첫째딸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첫째딸과 자신의 여자 형제들은 '우리'라고 표현했고는 '우리는 너와 달라. 우리는 쿨해! 그러니까 우리는 말하고 싹 다 잊어! 우리는 뒤끝이 없지! ㅎㅎㅎ' 했었다)을 안보니까 이런 게 사는 거구나..이러면 살만하지...이래서 사는구나 싶었다.
하여간 뒤끝없는 첫째딸과 여자형제들이 그 분의 진짜 가족이니
그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빻을 거리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을테니...나는 그게 그 분들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 이해한다. 빻는다, 고로 존재한다 뭐 이런 거겠지...
아, 성질 더러운 사람들과 엮여서 힘든 사람들께...
그 자식을 보며 좀 위안을 얻으시길....
"그 사람이 성질은 더러워도 자식에게는 잘하던데?"
아님. 더 간교하게 더럽게 굶. 그러니 그 집 자식은 아무도 몰라주니 더 미침.
위안은 안되겠지만 저런 인간 밑에서 안 태어난 게 다행이구나 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