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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9년차의 인간관계 푸념

ㅇㅇ |2020.12.13 02:56
조회 1,767 |추천 2
유학생. 네 맞습니다.저희 부모님도 결혼 후 정말 힘들게 신혼을 시작하셔서노력과 운이 맞아 현재 남들보다 적은 걱정없는 삶을 주신,부모님을 만나게되어 노력한 만큼 부담없이세상을 크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학을 하며 겪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푸념을하고자 글을 올려봅니다.
유학생. 미래가 밝고 삶에 대해 걱정없는,지식인.
유학을 오래하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은 다른 형태로바뀌게 되고 대체 되더군요.
"배부른 소리하네"
네, 알고있습니다. 정말 배부른 소리를 한다 하실 수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본 제 삶에서 삶의 기본이 되는것들에대해서 걱정을 해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많은 분들이 얘기하지 않은그런 푸념을 하려합니다.

***

군전역 후 한국대학교 때려치고 학사학위부터 영국에서 유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어찌하다보니 어느덧 박사과정 연구를 마치는 단계에 있는9년차 유학생이 되었습니다.

***

9년전 유학을 오기전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학위세탁하러 유학간다는 이야기를 장난 스럽게 이야길 했습니다.저도 부모님 덕에 천연덕 스럽게 여느 친구들과 같이 웃으며넘겼지만 지금도 되새김질을 하니 저에게는장난으로 다가오지 않았었습니다.또 그 한 문장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영국으로 오게되었고 부모님과 통화를할때면 거의 격주로 제 친구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저희 부모님을 만날때마다자식유학 보내고 퇴학을 당해 취준한다는 있지도 않는,그런 돈을 줘도 읽지 않을 D 급 이야기를 지어서 저희 부모님과 저를그리고 저희 가족의 미래를 비아냥 거린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매년 귀국하여 친구들과 친구들의 연인과술 한잔을 할때 유학을 한다는 사실을 시기를 하며 공공연히 저를자신들의 연인이나 새로만난 사람들 앞에서 보통사람이면 "상을 뒤집어 엎을",그런 식으로 내리까는 경우도 허다 했습니다. 
보통 삶이 바뀌는 계기를 찾아보면 대부분이 흔히 "하찮다"고 생각하는상황에서 결심을 하게되는데 저는 그 때 였던것 같습니다.
당시 그러한 공격에 반응않고 "그래 나는 이런 기회가 있으니 운을 가진 사람으로서 친한친구라도 그런 때때로 나를 험담하는것은 당연한거야" 그러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웃으며 넘겼습니다.제가 죄를 진것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떳떳이 성공하신것인데 말입니다.(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기부도 많이 하시고 기본적으로 사회를 위해 1940~70 년대 수준으로 부유계층의 세율을 올려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분들입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강하지 못해 8~9년이지난 지금도 기억하며 제 삶의 원동력으로 삶고 있습니다.
그 당시 느꼈던 기분을 원동력으로 삼고 정말 미친듯이, 악착같이 공부를 하다보니 흥미를 가지게되어 박사를 시작하게 되었었는데, 생각해보면 학사생 때 공부의 노력의 정도는 아마도: 흥미 60 %, 그리고어떻게든 우리가족 내려까는 인간들 때문에 40 % 이었던것 같습니다.
물론 어제 통화에서도 친구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이제는자식 두명 영국 박사유학보내고 퇴학 당한 이야기를 한다고웃으며 통화합니다.
***
그렇게 버티고 발전하고 하다보니,학사때, 약 6~9년전에 비아냥거리던 친구들은이제 나이가 30대 들어서며 저는 아직 학자의 길에서 경험을 해보지는 못한직장인의 삶의 현실에서 경험을 통해 배웠는지아니면, 학위세탁이 아닌 제 성적으로 보다 나은 대학원으로 진학을 해서 제 미래가치를 보고 그래서 인지,이제는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나와의 연을 유지하려하는게 눈에 띄게 보입니다.
대학교도 일류대학교 (120위 내) 이었지만 대학원을 10위권으로 진학하여연구를 하며 "배워도 배워도 난 아직한참이나 부족하고 난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사실을 하루 하루 인지하며 주말도 없이 지내는데 
학사생때도 그랫지만 대학원에서 부터 눈에 띄게언제 그렇다는 듯이, 축하의 이유로10년가까이 인연이 끊어졌던 친구들이나  그렇게 친하지 않던, 그냥 아는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시작하기 했습니다.
또, 흔히 성공이라 하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흔히 재력을 보시는데, 자연스럽게재력과 지식을 가진 모르던 분들에게서도 먼저 연락이 닿아 소통을 하기도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도 매년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세계적인 증권/은행, 반도체, 전자기기, IT만날 기회를 제공해서 회사에서도 경력직으로 (과장급)채용할 의사가 있음을 보이시고 연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연이 닿고, 만난 친구분들과 이런이야기를 하면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고 친구를 많이 잃었다고 서로 공감합니다.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른 분들에게 하는것을 정말 조심스러워하신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이유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당연히 너가 이해해야지" 이런식으로 상대방이말을 시작을 해서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도 사람인지라 상처를 준 친구들은친구라 생각안하고 단순히 원동력을 제공해준 존재로 생각되고,오히려 학창시절의 오랜 친구보다 현재 모든것을 털어놓아도 험담과 질투를 안할 새로운 인연들을 더 찾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며 되새김질을 하며 술 한 잔걸칠 수 있는 정말 오랜 학창시절 친구보다현재의 상황에서 부담없이 일상과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서로를 응원해주는 그런 새로운 친구가 좋았던것 같습니다.
씁쓸합니다. 평생을 같이할 친구를 잃고,한국의 사회가, 비교할 곳이 영국밖에 없지만,남의 성공을 조금이라도 축복을 해줄 수 없는것이자연스러운 통상적인 것이 되었다는것이...
그렇게 한국에 친구에 대한 미련은 없고한국은 내 조국이고 가족이 있고 내 학창시절을 보냇던 곳,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런 곳이 되었습니다.한국에 들어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귀국을 한다하면학창시절처럼 정을 다 주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비영어권 이공계열 유학생으로서 얼마나 힘들었냐고 물으면,영어를 제대로 못하는데 유학을 또 이론을 다루는 순수학문이다보니까nomenclature와 같은 전공어휘 과학 영어때문에 영국친구들 한번볼때저는 5 ~ 7번봐야 이해가 갔었고,지금도 논문을 보면 적어도 3번은 읽어야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말그대로 엉덩이가 닳도록 공부했습니다. 
물론 남 (영국인) 들보다 더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순간부터 그 에 따라오는 자존감의 하락은 어쩔 수 없더군요.정말 20번은 때려치고 싶었는데 그 내려까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버텼습니다.어찌보면 그런식으로 고마운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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