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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꿀꿀이 바구미 9장 (01-02)

마쉬맬로우 |2004.02.23 05:50
조회 529 |추천 0

 

 

 

9




“넌 규칙을 너무 많이 어기고 있어. 규칙을 따라주지 않을 거라면 이곳을 나가도록 해.”

밤이가 말했다.

“내보낸다고? 내가 싫어졌니?”

“싫어서가 아니야. 네가 규칙을 어기기 때문이지. 그리고 또 규칙을 어겼어. 서로의 호의를 의심하지 않는 것. 도대체 지킬 생각이 있긴 한 거니?”

“너와 같이 지내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벌이는 밤이와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수암이 혼자 서울로 올라가 버린 것도 그랬지만 불쌍한 영들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굉장히 침울해했다.


계획대로 라면 지금쯤은 흥겹게 놀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모든 것을 잊고 빨리 잠이 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에는 자기 전보다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민태식? 민태식이 도대체 누굴까?’



잠든 사이에 할아버지가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30대로 보이는 다케다 할아버지는 어두운 산길을 걷고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지만 숨은 가쁘지 않다.


야밤에 무슨 일로 산에 오르는 것일까?


다케다씨는 멀리 불빛을 발견하고는 더욱 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도착한 곳은 산속에 위치한 허름한 집이었다.


멀리서 보였던 불빛은 이 집이였지 싶다.


안으로 들어가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주위를 다케다씨는 한참이나 주위를 살피더니 숨소리도 죽인 채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간다.


주위에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검은 복면과 30센티는 되보임직한 칼.


복면을 얼굴에 쓰고 손에는 칼을 쥐고는 집 안으로 살며시 들어간다.


다케다씨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조그만 탁자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남자는 흠칫 놀라는 기색이였으나 이내 안정을 찾는 표정이다.


“키노모토?”


다케다씨는 남자의 질문에 맞다는 말을 하는 듯 하다.


남자는 자신을 해할지도 모르는 칼을 보고도 왜 그리 태연한지 다케다씨에게 앉을 것을 권하듯 방석을 하나 내여준다.


화를 내는 다케다씨.


하지만 남자가 또 뭐라 뭐라하자 자리에 앉는다.


줏대없어 보인다.


다케다씨는 간간히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지만 남자의 말은 열심히 듣는다.


그의 긴장이 약간 풀리는 순간 남자는 조그만 탁자에서 총을 꺼내더니 다케다씨를 쏘았다.


남자도 긴장해서인지 다행히도 총알은 다케다씨의 어깨를 뚫고 나갔다.


황급히 방밖으로 뛰어나가는 다케다씨.


이후 몇 번의 총성이 들리지만 다케다씨는 빗나간 듯하다.


숲속에 자리를 잡은 다케다씨는 어깨를 살펴본다.


소리를 낼 수 없는 형편이라 아픔에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만 악물고.


아픔이 전해오는지 나의 어깨도 아파온다.


전기에 감전된 듯이 찌릿찌릿하면서 어깨가 뻥뚫린 것 같은 처음 맛보는 고통이었다.


다케다씨는 울지 않았지만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이 흘렀다.


나도 덩달아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이가 부서질 것 같다.


붉은 피가 너무나 많이 흐른다.


다케다씨는 칼을 들고는 상처부위를 직접 베어내는데. 


나는 거의 기절직전이다.


으윽.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다케다씨.


그건 비명이 아니었다.


[민태식!]


그의 이름을 자신의 상처에 새기는 행동처럼 보인다.


다케다의 목소리는 어두운 숲속 저멀리까지 퍼져갔다.



할아버지의 과거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할아버지는 당시의 감정을 느끼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민태식....네 일가족까지.. 다 ...]



증오와 분노가 뒤섞인 엄청난 살기였다.


난 어깨의 고통과 할아버지의 살기로 무더운 날씨에도 땀을 흘리면서도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 민가네 일족을 향한 살기임이 분명했다.


지금은 단순히 할아버지의 살기가 방안에 넘치는 것뿐지만 나중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한 큰 일이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민태식이 누구지? 그 사람을 죽이러 한국에 왔다는 건가 복잡한 사연의 할아버지군.’



머리가 복잡했지만 넋 놓고 앉아 있을 시간은 없었다.


침울해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침을 준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밥을 앉히고, 간단한 찌개를 끓였다. 아직 일어난 사람들은 없었다.



‘십년 후에는 누군가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게 될까? 설마 시집 못 간 이모랑 단둘이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식탁에 밥을 차리고 있는데 영민씨가 들어왔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식사 전이시죠?”


“혜림아, 이 사진 좀 봐.”



‘밥을 본체만체하다니 급한 일인가봐.’



“사진 나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요.”



영민씨가 황급히 내민 사진들을 받아 들었다.



“이상한 게 찍혔어. 폐가에서 직은 사진을 빨리 보려고 현상을 맡겼는데 이런 사진이 있더라.”



멀대랑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멀대를 삼킬 듯한 기세로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사진들 좀 봐요.”



다른 사진들은 영들이 찍힌 사진이 많지 않았다.


찍는다고 다 영들이 찍히는 것은 아니듯 했다.


단체 사진에서 어렴풋하게 찍힌 사진이 한 두장 있는 정도였다.



“어떻게 된 거죠, 이게?”


“내가 묻고 싶어서 갖고 온 건데 나에게 물으면 어떻게 해?”


‘할아버지가 죽이려했던 사람이름이 뭐였더라. 민씨였는데. 맞다 민태식. 멀대도 민씨랑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건가? 민씨 일족까지 다 죽이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럼 멀대가 위험한거야?’


“잠시만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고 멀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어디야? 잠깐 보자. 로비로 나와.”



급하게 로비로 뛰어 나갔다.


아직 멀대는 오지 않고 있었다.


멀쩡한 목소리는 들었지만 얼굴을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불안했다.



“왜 안 오는 거야?”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불안해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멀대가 보였다.


일단 시야에 멀대가 잡히자 드는 안도감.



‘아직은 무사하구나.’



나는 단숨에 멀대에게 달려갔다.


숨을 미처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멀리서 보이는 멀대를 불렀다.



“여봉아!”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너 괜찮지? 별일 없는 거지?”



보니 눈만 부었을 뿐 별 일은 없는 듯했다.



“무슨 일? 밤새 죽기라도 했을까봐?”



태연히 장난을 치는 멀대를 보자 멀대가 무사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혹시나 사람들과 마주칠까 멀대를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여봉아 너한테 위험한 일이 닥칠지도 몰라. 내 옆에 있으면 더더욱 그렇고.”


“무슨 말이야, 난데없이?”


“내가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은 믿지?”


“그렇기는 하지만 네가 너무 갑작스럽게 얘기를 하니까. 무슨 일인데?”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너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건 확실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말에 멀대의 표정도 조금은 굳어졌다.



9-2


“나랑 관련된 일이라고?”


“너도 관련된 일이야. 너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조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멀대는 나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나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나에게 무슨 일 생기면 네가 지켜줄 거잖아.”



멀대는 나의 머리를 흩트렸다.


오히려 놀란 나를 안심시키려 하다니 바보 멀대.



“난 너 안 지켜.”


“에이 거짓말.”



‘안 지키는 것이 못 지킬 수도 있단 말이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으니까 이렇게 불안해서 온 줄도 모르고. 멀대 너는 정말 바보다.’



나도 순간 바보 같은 궁금증이 생겼다.



“너 나랑 주연이랑 같이 위험에 빠지면 누굴 구해줄래?”


“더 위험한 사람부터 구해야겠지.”



내 예상과 달리 멀대는 대답을 쉽게 했다.



“똑같이 위험하다면?”


“그럴 일이 있겠냐? 니들이 동시에 똑같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있기는 힘들지.”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줄 알면서도 거짓말을 못하는 멀대.


아부성 발언보다 솔직한 대답이 듣기 좋았다.



“그렇겠지. 암튼 너 당분간 조심해.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나한테 즉각 얘기해줘.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래야 할 텐데.’



“그래. 알았어.”



할아버지와 멀대가 이런 관계가 되다니 아직까지 믿기가 어려웠다.



“혜림아 너무 걱정마. 나 명 긴 놈이거든.”



나의 그늘을 보았을까 멀대는 나를 위해 농담을 던졌다.


멀대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조금은 놓기로 했다.



“혜림아! 아직 밥도 못 먹었지? 같이 먹으러 가자.”


“아니. 나 가봐야 해. 밥만 차려놓고 뛰어나왔어.”



실은 조금이라도 빨리 사람들을 만나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그래?”



멀대는 굉장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항상 야박하게만 굴었었지.’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을 해줘도 날 안심시킬 생각만 하는 멀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십분만 걷자.”


“그러자.”



걷다보니 멀대랑 단둘이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바닷가에서 일이 꼬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바다에 와서 주연이랑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리고 골뱅이 아저씨가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우리 둘 지금 잘 지내고 있겠지.’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오던 멀대의 얼굴이 떠올랐다.



‘골뱅이 아저씨 말대로 나는 뽀뽀에 한 맺힌 아이인가?’



“혜림아.”



멀대가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분위기를 잡으려는지 목소리를 깔았다.



“응?”


“너랑 바닷가에 갔던 일 생각난다.”


“응.”


“그날 일이 많이 꼬였지?”



‘멀대도 부끄러운 생각을 하나봐. 어머머.’


“그날 까지 우리 사이 좋았는데. 그날로 돌이키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 하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겠지.”



‘멀대야! 네가 슈퍼맨이라면 지구를 돌거라. 일초에 일곱번 지구를 돌면 과거로도 가더라.’



“네가 슈퍼맨이 아니라면야 불가능 하겠지.”



멀대가 슈퍼맨의 빨간 삼각 팬티를 바지에 덧입고 지구를 도는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왔다.



“뭐라구?”


“아니야.”



‘왜 난 사람들이 분위기만 잡으면 웃음이 날까? 참아야하느니.’



“마음 단번에 돌리라고 안할게. 나랑 한번만 놀러가자. 너 나한테 약속 했잖아.”


“주연이는? 주연이 힘들다고 하면 또 금방 갈 거잖아.”



또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너는 왜 자꾸 너랑 주연이를 비교하니? 내 마음 속에서는 너랑 주연이 비교한 적 한번 도 없었어. 누구나 지나간 과거는 있는 거잖아. 주연이는 고등학교 때 잠시 만났던 애일뿐이야. 너는 그런 사람 없었어?”



멀대의 목소리도 사방에 퍼질 만큼 커졌다.



“난 없는데.”



자랑은 아니었지만 없었다.


난 공부만 했다고.



“없었니?”



말끝이 흐려진다.


멀대는 이제는 빨간 팬티를 사러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어 보였다.



“없었다는 게 불만이야?”


“아니. 혜림이처럼 귀여운 애를 남자들이 가만히 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멀대의 닭살 멘트는 수암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효과를 거두어  내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약속 지킬께. 그런데 날짜까지는 약속할 수가 없어.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니까.”


“진짜지? 너 약속한거다.”



멀대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파편을 뿜으며 좋아했다.



“그래. 이만 가볼게. 너무 늦었다.”


“응. 가봐.”



방으로 돌아가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수암.


수암이라면 쉽게 해결해줄 수 있을 듯 했다.


어쩌면 내가 멀대와 관련된 일이라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멀대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두렵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수암 오빠에게 멀대와 관련된 일을 부탁하기는 왠지 미안했다.


그럼 누가 있을까?


다음으로 생각난 것은 보연이.


일단은 보연이에게 할아버지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얼른 방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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