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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번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지 않았나요?

쓰니 |2021.01.16 20:28
조회 1,490 |추천 6
어딘가 한번 털어놓았던 이야기.
그리고 기일이 다가오며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
그냥 누군가 읽어봐줬으면 해서 적어본다.
할매. 누군가에겐 그저 할머니를 부르는 말 이겠지만
나에겐 내 6살 연상의 연인을 부르던 애칭이었다.
지금은 부를 수 조차 없는 할매는 칙칙한 스무살 겨울,
나에게 진눈깨비처럼 찾아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곳은 학원이었다. 많은게 부족했던 난
조교로 있던 그녀와 함께있는 시간이 많았다.
과제, 질문, 재시험... 어물쩍 넘어가달라는 내 철없는 요구는
항상 그녀가 건네주던 추파춥스 하나로 무마되었다.
사탕을 좋아하지 않던 난 항상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두었고,
그녀를 마주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앞주머니는 나도 모르는 사이 두둑해져만 갔다. 그러는 사이, 추가합격 통보를 받게되었다.
그때 난, 대학을 가게 된다는 기쁨보다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바로 그날, 학원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퇴근하는 그녀에게 어설픈 인사와 내 합격소식을 전했다.
축하한다는 말, 다음에 기회되면 또 보자는 말..
상투적 대화 사이에서 내 말 한마디가 츄파춥스 막대기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연락하게 번호좀 달라고.
그녀는 재등록은 학원에 문의하라는 농담으로 넘기려 했지만,
난 그 사람을 놓치기 싫었다. 재등록은 필요 없으니 밥이나 한번 먹자고. 내 얼굴을 보며 한참 웃던 그녀는 그럼 내일이나 보자며 내 핸드폰에 번호를 찍어주고 가버렸다.
그 다음날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별것 아닌 대화,
손짓 하나, 흘러나오던 노래, 공기의 냄새까지도...
헤어지기 전에 그사람은 가방에서 츄파츕스를 꺼내며 말했다.
어디 넣지 말고 지금 먹으라고. 나는 사탕과 조그만 손,
어서 받으라든 단호한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 사람은 츄파츕스 하나와 내 마음을 바꾸었다.
두세번의 데이트 후 사귄 우리.할매라는 부름과 꼬맹이라는 대답.
손을잡고 걷다 추우면 껴안고 빨대 하나로 음료를 나눠 마시며
서로의 품에서 잠드는 만남. 언제까지나 이어질 줄 알았던
이 행복은 음주운전 차량이 무참히 부셔버렸다. 함께 걷던
가로수 길. 헤어지기 싫어 최대한 늦게 걷고, 그날따라 자기가
대려다주고 싶다며 내 집 앞까지 왔다간 그녀는 돌아가던 길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오후 늦게야 그 소식을 접했다.
나는 그때까지 연락 안할거냐며 채근하고 있었다.
난 죽은 그녀를 채근하고 있었다.
내 짧은 인생에 가장 찬란하게 찾아온 그녀는 가장 허무하게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매보다 이름으로 더 불러줄걸.
그 여섯살 차이가 뭐라고. 우리가 나눴던 그 모든걸 난 누나의
커플링으로밖에 느낄 수 없다. 일주일정도를 방 안에서 커플링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작은 원 안에서 많은것들이 맴돌았다.
추억. 원망. 분노. 후회. 절망. 그리고 난 그 안에서 기절했다.
눈을뜨니 밖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사줬던 신발과 함께.
처음엔 함께 있던 장소를 걸었다. 그 다음은 그녀가 떠나간 장소를 걸었다. 주저앉아 울다가, 그 걸음으로 병원에 갔다.
그녀를 지워내야 내가 살것 같아서.
어느정도 나아졌다 생각한 후 도망치듯이 나는 입대했다.
어느덧 나는 상병이 되었다.
겨울에 만난 우리, 겨울에 헤어진 나는
혼자서 이 지독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녀를 지우기 위해 약을 집어 삼켜 본다.
전투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다가
군복데이트를 바라던걸 떠올리며 피식거린다.
부대 안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움찔거린다.
다시 약을 집어 삼킨다.
px에서 츄파츕스 하나를 사고 뚫어져라 보며 담배를 핀다.
담배좀 끊으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또 약을 집어 삼킨다.
그러다 문득, 약으로 그녀를 지우기 싫어졌다.
이젠 정말 내 손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는 내 도피처가 되지 못했다.
코로나로 막히기 전 조심스럽게 휴가를 나왔다.
돌아온 내 방은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또 목소리가 들린다. 치우고 좀 살라니까.
그 말에 홀린듯이 정리를 시작했다.
사진첩을 치우다 멍하니 두시간을 넘겨보고.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 흐느껴 울다가.
결국 그녀의 흔적은 목에 걸린 커플링 두개로 줄여졌다.
목이 무거웠다. 답답했다. 담배를 빼어물었다.
불을 붙이고 빨아들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딱 한모금만 빨아들이고, 비벼 꺼벼렸다.
병원에서 마지막 약 처방을 받고 부대로 복귀하기 전,
음주운전자의 소식을 들었다. 교도소를 나왔단다.
비버 꺼버린 담배가 한스러웠다.
허탈? 증오? 슬픔? 알수없는 감정과 함께
그녀의 납골당으로 향했다.
힘드냐고. 보고싶었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사진은 그저 나에게 웃음만 지어줬다.
울고싶었다.
차마 그 웃는 얼굴 앞에서 울 수 없어 애써 웃어보이고 나왔다.
그녀가 없던 사람이 될 순 없다. 그저 내가 그녀를 기억하며
살아갈 뿐이다. 가족 하나 없이 살던 그 사람.
친구라곤 몇 없던 그 사람. 기껏 기억해주는 사람이라곤
이렇게 나약하고 무능한 놈 뿐인데. 차라리 죽고싶었다.
그래도, 살기로 했다. 그저 떠올리며. 추억하며. 살기로 했다.
다른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기억들이 다른 기억으로 덮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결국 살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사진을 가지고 왔다는걸 알아차렸다.
관물대 한켠에 세워놓고 들여다 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웃고있다.
추천수6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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