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써뒀던 내용을 복붙해왔어 조언 부탁할게
나의 통금에 대해서
우선 나는 어릴 적부터 매우 이른 통금 시간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전에, 엄마는 매우 엄하시고 사고방식도 구시대적이어서 초등학교 때는 노래방은 물론 PC방 입구조차 기웃거리지 못했다. 나는 장녀였고 화목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엄마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진작에 이러한 통금을 깨뜨리지 못한것도 그 이유이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도 PC방에 출입해본 적이 없으며 고등학교 진학 후에야 프린트를 핑계로 발을 들여볼 수 있었다. 물론 PC방이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님에도 말이다. 다시 통금 이야기로 와보자면 중학교 때 나의 통금 시간은 5시 잘해야 6시였다. 7시로 늘었던 건 고등학교 진학 후의 일이다. 이에 대해 당연한 불만을 가졌지만 앞서 말했듯 난 장녀이고 엄마에게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약속을 잘 지켜왔고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가정의 자녀도 이렇겠지라며 위안을 삼았을 뿐 내 생각과는 다른 답을 들을까봐 다른 친구들에게도 쉽사리 물어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또 성인이 되면 달라지겠지라는 은연 중의 기대감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상황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이때쯤만 하더라도 왜 그렇게 통금이빡세냐 엄마가 너무 깐깐하시다라는 또래들의 말에 반발심이 생기고 내가 욕하는 것은 괜찮으면서도 남들의 얘기엔 절대 동의하지 못하는 나에 취해 더이상의 진전은 없던 터였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새로운 상황에 놓여졌다. 바로 코로나 19라는 펜데믹 상황이다. 이를 핑계로 엄마는 계속해서 통금을 유지시켰고나는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리두기 상황이 전보다 완화된 지금 아직까지도 통금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의문점이 들기 시작하고 더불어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내가 기대한 상황과는 다른 모습에 나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8시로 늘려달라는 말에도 왜 그렇게 늦게 들어와야 하냐며 너가 뭐하고 돌아다닐지 뻔하다는 게 엄마의 답이었다. 나는 코로나 상황과는 관계없이 이것은 그냥엄마의 의심에서 자초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뭐하고 돌아다닐지 뻔하다는 말이 굉장히 상처가 되었는데 날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임도 있고 또한 성인이 되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린다는 것이 잘못되었나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엄마가 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순한 의도를 지닌 행동들을 하지 못하게 사전교육이 아닌 성인이 될 때까지 싸고 도는 엄마의 교육방식이 굉장히 잘못되었고 내가 그런 교육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요즘은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서 그래라는 말도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부모라는 책임을 지녔으면 그에 응당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맞다. 아무리 엄마가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도 이 점을 고치지 않는다면 평생 보이지 않는 벽에 갈라선 채로 살아야 한다. 나는 항상 이 주제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통금이 있는 것에 부끄러워하는 나의 옹졸한 마인드와 우리 엄마가 이렇게나 고지식하다라는 치부를 다른 곳에 내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통금있는 자녀들이 뒤집어 엎어 통금을 깬 일화 등의 글을 보면서 적어도 우리 엄마는 저렇게까지 안해도 어련히 알아서 풀어주겠지라며 늘상 생각해왔다. 이 주제로 엄마와 말다툼을 할 때마다 밥상을 뒤엎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가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것만 벌써 수천번이다. 내가 이렇게행동했을 때 과연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윽박지르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고이는데 이 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할뿐 실제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내가 너무 일을 크게 벌리나 싶다가도 미래를 생각하면 꼭 거쳐가야하는 관문인가 싶다가도 나를 이런 상황으로 내몬 엄마가 싫어지고 마지막엔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당신이 화날 땐 잘만 윽박지르고 할 말 못할 말 구분하지 않고 퍼붓다가도 내가 조금만 반박하고 대들어도 굉장한 충격을 받으신다. 친구들에게도 심지어는 동생에게조차 말하지 못해 이런 곳에나마 하소연 해본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