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제 나이 29살. 제 마음에는 원망과 증오가 가득합니다.우선 아버지라는 인간에 대해 말부터 하겠습니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술만 먹으면 추운 겨울 베란다에 가둬 놓고 물고문을 식히거나 뜨거운 욕조에 자식들을 담구고 고문을 하는 노래를 부르는 미친 사이코였습니다. 엄마와 여동생 그리고 저는 집안에서 맞는 일이 일상이었고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소심 그 자체였지만 사과는 끝끝내 하지 않은 인간말종이었습니다.어린 시절 초등학교, 중학교랑 고등학교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선생들과 일진들에게 찍혀 얻어맞은 일도 다반사였습니다.그렇게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아버지는 "성장 과정이다." 라거나 "못나디 못난 머저리다. 정신력이 헤이해져서 그렇다."라면서 오히려 저를 때리기에만 급급했습니다.어머니는 직장과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오히려 제 말을 듣지 않고 "병신같은 새끼."라면서 저에게 욕을 하거나 "개같은 집구석."이라고 하면서 혼자서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어느 정도 대가리가 커지니 반항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술에 취해 욕을 일삼으면서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 키워주고 먹여주니까 뭐같냐?" 라면서 주먹으로 머리나 가슴팍을 무진장 때렸지만 저는 끝까지 울지 않았습니다. 난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악바리 정신이 발휘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런 아버지로 인해 제 정신은 점점 피폐해졌고 기피 대상이 되어갔습니다. 어떤 친구는 "일진들로 인해 친구를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줬다. 미안하다."면서 고백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자존심은 살아가지고 더 달려들거나 친해지려고 악바리처럼 굴면 다들 피하기에 바빴습니다.인생 망했다. 자살해라.태어난 것이 죄다. 얼른 자살해서 국가에 이바지해라.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해라. 넌 태어나면 안됐던 강아지다.학교 동창들과 선생님들이 저에게 한 말이며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아버지라는 인간은 군대에서도 술 취해서 면회실에 나타나 고참들과 중대장이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습니다. 그 날 이후로 고참들과 중대장은 저를 관심병사로 등재시켰습니다.허나 인과응보였을까요?아버지라는 인간은 술을 마시면서 점점 사람이 미쳐갔고 머리가 빠지고 이가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들에게 찍혀서 좌천되어 지방을 왔다갔다했고 후배들은 그런 아버지를 정신병자라고 하며 무시했고 그 스트레스로 술을 마신 후 자식들에게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마침내 우리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더니 피를 토하며 한쪽 눈을 영원히 감지 못한채 20시간이나 중환자실에서 끄르르르륵 거리다가 마지막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제가 25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저는 장례식장에서 울었습니다. "드디어 해방이다."라는 마음에서요.그렇게 날 때리고 욕하던 일진들이나 선생들을 만나면 일진들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끝끝내 나를 외면하거나 내 얼굴을 쳐다보지만 그 때 처럼 때리지를 못합니다. 도망가기에 바쁘죠. 아버지라는 인간은 나와 두 여자(우리 엄마와 여동생)의 인생을 망쳐놓았습니다. 성적인 행위까지 술취해 서슴치 않게 행하던 이 인간으로 인해 제 여동생은 페미니즘에 심취해 지금 남성 혐오를 부르짖고 있고 엄마는 당뇨와 위장에 문제가 생겨 평생 약을 먹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용기를 내어 학교로 찾아갔습니다. 선생들은 그 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는 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이해는 갑니다. 그 수많은 애들을 통제하려면 그 때는 그랬어야 했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그 때에도 나같은 애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다만 아닌 척을 했겠지라는 생각에 평생 그렇게 사세요 라고 하고 그냥 나왔습니다.지금 저는 시간이 흘러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직장을 잡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입니다. 지금은 즐겨 마시던 술도 끊었고 담배는 아예 피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 당시 폭력에 대해 한이 너무나도 큽니다...그리고 저희 집안을 지금이라도 잘 이끌고 싶습니다. 이런 제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