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문에 연재되던 4컷 만화중에 "고바우 영감"이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사회문화적 이슈를 만화로 그려냈는데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50여년 동안이나 꾸준히 연재되다보니
단순히 4컷 시사만화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하나의 사료로서 가치를 지닐 정도가 되었지요.
대한민국의 국가등록 문화재일 뿐 아니라 세계 최장기간 연재 4컷만화로 기네스북 기록까지 갖고 있는지라 아예 모아서 단행본으로 출판될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있는데, 배고픈 예술가의 삶을 그려낸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더군요.
가난한 예술가가 하도 그림이 안 팔리자 베레모를 집어 던지며 "장사나 해야겠다"며 떠납니다.
지나가던 거지가 그 베레모를 주워다 쓰며 "왠 횡재냐"라고 좋아하기도 잠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데 "이거 왜 이래! 예술가라면 배고파도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뇨?"라는 반응만 나옵니다.
그러자 거지도 베레모를 집어던지며 "이키! 이걸 쓰면 굶게 되는 흉물이로구나!"하는 이야기.
그래서인지 작가라고 하면 왠지 둥그런 안경을 쓴 수척한 사내가 골방에 틀어박혀 라면상자를 엎어놓고 그 위에 원고지로 글을 쓰는 장면이 연상되곤 합니다. 조그만 창문 너머로 눈이 내리고, 불기운이라곤 없는 냉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주린 배를 움켜잡는 모습 역시 곧잘 따라붙지요.
문학 공부해서는 취업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 외에도, 배고픈 작가만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 예술혼에 대한 낭만까지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듯 배고픈 문인들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먹지 못하는 한을 풀기라도 한 듯 유독 음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비빔밥, 잡채, 빈대떡, 국밥, 냉면, 두부에 김치찌개까지.
그 내용 역시 맛에 대한 예찬에서부터 사람 사는 모습을 음식에 빗댄 글이나 조그만 입 하나 채우지 못하는 빈곤한 신세에 대한 자조 섞인 한탄까지 다양하지요. 그리고 그 간절함이 듬뿍 담긴 음식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에 침이 절로 고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글 중의 하나인 채만식의 "산적"을 읽으며 산적을 몇 장 굽기로 합니다.
우선은 정육점에서 산적거리 소고기 (보통 설도나 우둔) 석 장을 사 옵니다.
양파 반 개에 갈아만든 배 음료수를 한 컵 정도 부어서 믹서에 곱게 갈아 고기에 문질러 줍니다.
양파와 배의 맛이 배어들 뿐 아니라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연육작용도 합니다.
두세시간 정도 연육제에 담가두었다가 이번에는 양념장에 재워둡니다.
사람마다 양념장 만드는 기준은 다른데, 저는 간장 5큰술, 물 5큰술, 설탕과 올리고당과 매실청과 꿀과 참기름을 각각 1큰술씩, 그리고 다진마늘과 후추를 적당히 넣습니다.
마늘과 후추는 귀신이 싫어한다는 말도 있고, 절에서는 오신채에 속하는 마늘을 금지하기 때문에 제사 때 쓰는 산적에는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맛으로 먹는 산적이기 때문에 다진 마늘과 후추도 취향에 맞춰 듬뿍 넣어줍니다.
이렇게 보면 산적은 만들기 쉬운 음식은 아닙니다.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칼집을 곱게 내야 하고, 양념장에 한참동안 재워둬야 하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엔 정육점에서 고기 살 때 "산적 만들거니까 한 번 눌러 주세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기계에 돌려서 칼집을 촘촘히 넣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채만식의 “산적”은 책을 읽다 말고 일어나 고기에 양념 듬뿍 발라 구워 먹고픈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
평소에는 볼 일도 없고 제사나 차례상에나 올리던 고기 요리, 그것도 다른 맛있는 반찬에 비하면 손이 가지 않아 거의 그대로 밀폐용기에 담겨 냉장고 속으로 직행하는 것이 산적입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읽다 보면 기름기가 부족해 퍽퍽한 느낌마저 드는 갈회색 고기 한 점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더 불가사의한 사실은 정작 요리의 맛에 대한 설명이라곤 글의 말미에 나온 한 문장이 전부라는 점이지요.
“양념도 변변치 못한 산적 맛이 퍽도 맛이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산적이 어떤 맛이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고, 상상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맛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맛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자극 이상의 무언가라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마치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에게는 아무리 맛있는 돼지고기 요리도 혐오식품이고, 코카콜라 컴퍼니가 큰돈을 들여 신제품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콜라맛과 엮인 사람들의 추억과 익숙함을 이기지 못하고 단종시킨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온갖 미사여구로 음식의 외형과 맛을 묘사하며 감각에 호소하는 글보다, 때로는 그 음식을 둘러싼 배경 설명만 담담하게 늘어놓는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공감하며 입맛을 다시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인 “나”는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한 끝에 아내를 보내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고 쌀을 받아오도록 시킵니다.
“가기에 십 분 누더기니까 뇌작거리느라고 오 분, 아차! 단번에 들어가는 데서는 안될 것이고 몇 군데 다니느라면 그것이 한 십오 분, 쌀을 팔아가지고 오느라면 십오 분, 그래서 삼십오 분. 삼십오 분! 삼십오 분이 나에게는 서른닷새나 되는 것같이 아득하였다. (중략) 생각을 하니 한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허연 더운 밥을 먹을 일이 기쁘기도 하였다.”
- 채만식, "산적" 중에서
무기력한 가장의 자조 섞인 넋두리, 그 와중에도 주린 배를 어찌할 수 없어 배고픔과 싸우며 밥을 기다리는 그 심정이 독자에게도 심한 허기를 느끼게 만듭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아내의 손에는, 그러나 쌀은 온데간데 없고 조그만 고깃덩이만 들려 있을 뿐입니다.
“그건 뭐요 대관절?”
“고기지 뭐야!”
“고기? 왠 고기?”
“산적 구어 먹으려구.”
“산적? 쌀은? 밥은?”
“밥?...... 어이구머니...... 참......”
- 채만식, "산적" 중에서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받은 오십 전을 들고 나오는 길. 선술집에서 화로를 놓고 석수(석쇠)에 산적을 지글지글 굽는 냄새에 아내는 그야말로 ‘홀린 듯이’ 쌀은 잊고 산적 구워 먹을 고기를 사 온 것이지요.
부끄럽고 슬픈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푸줏간에 가서 물러 오겠다는 아내에게, 주인공은 “내일은 또 어떻게 할 셈치구 그렇게 먹고 싶던 거니까 해 먹자”라며 유쾌하게 웃어 넘깁니다.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로를 놓고 이글거리는 참숯불에 석쇠를 올려 고기를 구워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숯불 화로를 놓을 방법은 없으니 아쉬운대로 석쇠에 고기를 끼우고 가스 토치로 지져가며 굽습니다.
두툼한 스테이크라면 겉은 타고 속은 설익겠지만, 산적은 워낙 얇은데다가 칼집까지 촘촘히 내서인지 토치만으로도 충분히 구워집니다.
취향에 맞게 앞뒤로 뒤집어가며 구워줍니다. 이번에는 미디움에서 미디움 웰던 정도 되는 63도에 온도를 맞췄습니다.
다 구워질 때면 직화구이 특유의 "고기 굽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숯불갈비집 주변을 지나가면 맡을 수 있는 그 냄새지요.
이 매력적이고 저항하기 힘든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채만식이 그의 자전적 소설에서 묘사한 산적이 단순히 양념 바른 고기구이 그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됩니다.
고기를 워낙 좋아해 지인들이 채만식(菜만食: 채소만 먹는다)이 아니라 육만식(肉만食: 고기만 먹는다)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던 작가의 식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원고지를 넉넉하게 가져본 적도 없는 빈한한 삶을 산 탓에 친구에게“죽을 때라도 머리맡에 원고 용지를 수북히 놓아 보고 싶다”고 편지를 썼던 형편을 고려하면 이 향긋한 고기 굽는 냄새가 가난한 작가의 심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상상이 되니까요.
다 구워진 산적을 겹쳐 쌓으면 한결 더 풍성하게 보입니다.
제삿상에 올릴 때는 끄트머리를 잘라 네모 반듯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냥 "산적을 먹기 위해 산적을 구운" 날이니까 생략합니다.
그런데 네모반듯한 모양을 제외하더라도 평소에 먹던 산적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팬에 구웠을 때는 표면에 윤기도 흐르지 않고 냄새도 별로 나지 않았는데
토치에 직화로 구운 산적은 지글거리는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부터 차원이 다릅니다.
가위로 자를 때도 훨씬 더 부드러운 느낌이고,
한 입 베어물면 산적이 아니라 간장 소스를 곁들인 고급 스테이크를 먹는 것마냥 육즙이 흘러넘치며 살살 녹네요.
하지만 이것도 숯불구이에 비하면 손색이 있으니 우리가 평소에 먹던 산적이 전통적인 요리에 비하면 얼마나 다운그레이드 된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식생활이 많이 풍족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흰쌀밥에 고깃국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누구나 손쉽게 다양한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지요.
산적 역시 마찬가지.
저렴한 미국산, 호주산 소고기의 수입 덕에 이제 산적 재료를 구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양념장 역시 마트에서 모든 재료를 손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다른 부분에서 고난을 선사합니다.
원래 산적이라 하면 散(흩어질 산)자에 炙(구울 적)자를 조합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여기서 散은 고기를 잘라 산가지(꼬치)에 꿴다는 의미. 아니면 잘 두드려서 흩어질 정도로 부드럽게 만든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炙은 고기를 불에 직화로 굽는 요리법을 의미합니다.
요즘 산적을 만들 때는 주로 프라이팬을 사용하니 엄밀히 따지면 번철(燔鐵: 달군 철판)에 ‘지지는’ 방식이라 적이 아니라 煎(달일 전)을 쓰는 육전(肉煎: 고기전)에 가까운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코팅팬은 고열로 요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결과적으로 육즙이 흘러나오며 구운 고기가 아니라 삶은 고기가 되어버립니다.
감칠맛이 나는 마이야르 반응도, 구운 고기 특유의 폭력적인 향기도, 터져나올듯한 육즙도 없습니다.
관리가 쉽고, 가볍고, 저렴한 코팅팬의 편리함은 산적의 불맛을 희생한 대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맛을 편리함과 교환했을지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무거운 가마솥에서부터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에 이르기까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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