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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나서-1

이헌 |2021.03.19 09:30
조회 602 |추천 0
개명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와의 성이 달랐다.

그래서 늘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담임 선생님의 상담 대상 1순위가 되곤 했다.

그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러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무슨 일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왔고 당시 작은 아버지라는 분이 나를 집 뒤로 데리고 가시더니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 잘 들어, 넌 이제부터 이 아무개가 아니라, 정 아무개야, 누가 물어봐도 그렇게 대답해야 한다."

평생 그렇게 말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날만 그렇게 답해도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왜 그래야 했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야 되는 상황이었나 보다.

다른 친인척 보다도 아버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이 미안해하셨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개명 2


중학생이 될 무렵 아버지께서 제안하셨다.

정 아무개로 성을 바꾸자며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거부했다.

몇 번의 요청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거절했다.

성마저 바꿔 버리면 나라는 본질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개명은 불발로 끝났다.



개명 3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어머니가 식사를 하자며 나 혼자 근처 식당으로 불러내셨다.

밥을 먹으며 잘 드시지도 않던 소주를 들이켜신다.

"엄마, 할 말 있으면 해."

다그치자 상기된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아무개야 청첩장도 그렇고 식장에서 그렇고 이름을 정 아무개로 해야 할 것 같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다만 처가 쪽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어머니가 알아서 하신단다.

그렇게 나는 정 아무개로 결혼을 하였다.

식장은 아버지와 호형호제하는 분이 은행장으로 계시는 은행의 예식홀을 빌려서 했다.

그리고 그 청첩장은 기념으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개명 4


나이 49살이 되고서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 보다는 이름의 특성상 동명이인의 정치인 덕에 늘 그분과 같이 욕을 먹었다.

그리고 각종 고객센터에서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른 게 5%도 안된다.

몇 날 며칠 고민을 했다.

어떤 이름으로 개명을 할까?

사주나 파동 성명학으로 이름을 받을까도 했다.

샤머니즘에 거부감이 없었던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이름은 내가 좋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개명신청 접수를 하였다.

이름 석자 중 직접 중간 한 자만 뺀 채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전이라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죄송스럽지도 않았다.

당신께서 뜻하신 대로 정 아무개로 살아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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