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여동생이 태어났다.
관심을 독차지하던 나는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었다.
어머니가 만삭이어서 배가 볼록하게 나왔던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기억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녀온 뒤 잔돈을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는데
잔돈이 없어졌다고 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그 방에는 나와 이제 갓 100일이 지난 여동생만이
있었기에 범인은 나라고 단정 지었다.
어머니가 여동생을 분유를 먹이기 위해 안았는데 그 밑에는 없어진 잔돈들이
굴러 들어가 있었다.
그날 이후 여동생은 내 인생의 불청객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누나라고 데려왔다.
나랑 4살 차이였다.
순한 듯했지만 싸울 때는 꺾기의 달인이었다.
힘으로 이겨내지 못했던 나는 말로서 공격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에게 그 장면을 들키고 말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뺨을 맞았다.
그리고 그날 학교를 가지 않았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불청객이 생긴 것이다.
30대가 되어서 부모님께서 연이어 돌아가셨다.
슬픈고 아픈 건 나인데 주위에서 더 설레발을 쳤다.
아버지 임종 직전 막내 이모는 나에게 뭐라도 말을 하라며 재촉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얼른!"
죄송한 게 없었다.
그저 많지 않은 연세에 유명을 달리하시는 아버지가 불쌍할 뿐이었다.
그 말에 화가 나서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덕분에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 이모라는 사람은 내 인생의 세 번째 불청객이 되었다.
얼마 후 어머니께서도 유명을 달리하셨다.
때마침 타지에 있어서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그 도시를 쫓겨나듯 떠났다.
시간이 흐르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 네 엄마가 빌려간 돈 갚아! 당장!"
막내 이모라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위선자라 실컷 퍼붓고 전화를 끊었는데 큰 이모가 전화가 왔다.
달래는 듯하면서도 짓밟는 말투에 화가 났다.
더 이상의 인연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혼자 잘 먹고 잘살아라!"라고
축복을 해주셨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서로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찾아가 보지도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도 않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던가?
추측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 없이 잘 살고 있는 거 보니 내가 그들 인생의 불청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