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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쓰니 |2021.03.20 01:32
조회 474 |추천 1
그냥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싶어서 가입했어.
다들 이러고 사는데 나 혼자만 과하게 힘들어하는 것 같은 기분에 여태 터놓지도 못하고 살았네.

학교에서 수업 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 친구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알았어. 감정이 순간 욱한 것도 아니었고, 떠나간 사람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어.

나도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 코끝이 찡한 느낌도 없었고, 눈가가 찌르르하게 울린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최근에 크게 힘든 사건도 없었는데, 근래 들어 옛날 생각이 자꾸 나더라.

별거 없지만 몇 자 용기 내서 써 볼게. 두서없고 순서도 뒤죽박죽인 글이지만, 아낌없는 조언 부탁해.




나는 쌍둥이야. 1분 차이로 내가 누나고, 다른 형제는 없어.

어머니 아버지는 고등학생 때부터 약 10년간의 연애 끝에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어.

내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는 술 퍼마시고 119에 실려와 주방에서 이불 하나 덮고 잔 것, 일하러 나가신 어머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울자 효자손으로 내 종아리와 허벅지를 때린 것... 이 정도가 다야.

어머니는 당시 어린이집에 다니던 내가 우리를 봐서라도 떠나지 말아달라 울며 애원하자, "너희 때문에 내가 아직도 저 인간(쓰니 아버지)에게 잡혀 산다"고 말하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나.

현재는 아버지 혼자 다른 곳에 거주하고, 나랑 어머니, 남동생만 같이 살아. 10년 연애하고도 이골이 나는 것만 보고 살아서인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는 다짐을 했어. 그런데 나랑은 다르게 동생은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결혼하고 연애하고 아이도 낳겠단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인지 나 혼자만 이 생활이 버거운 것 같고, 이 사회와 나라가 힘겨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슬펐어. 나는 "결혼 안 한다고 하던 애들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는 말이 너무나 싫어. 내가 비혼을 결정하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고뇌를 거쳤는지 모르고서 가볍게 하는 말이잖아.

얼마 전에는 아침밥 먹을 때 "이번 담임쌤이 가정형편을 묻길래, 내가 성인이 되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식으로 갈라선다고 말했다"고 웃으면서 말했어. 그랬더니 어머니도 같이 웃으시더라.

두 달 전에는 어머니한테서 우리를 임신했을 당시 이야기를 들었어. 수차례의 인공수정과 시험관을 거쳐 임신하는 과정에서 어떤 주사를 맞아야 했나 봐. 혼자 하기는 힘들어서 타인이 대신 해 줘야 하는데, 그때 아버지는 당시 일하던 곳에서 인정받고자 룸에서 n백만 원짜리 술을 대접했대. 새벽 내내 기다리던 어머니는 끝내 기절했고, 아버지는 그러고도 인정받지 못해서 다시 또 술담배를 하고.

따로 산 이후부터 가끔 아버지를 만날 때면 항상 듣는 말이 있어. "네 엄마가 멍청해서, 네 엄마가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가서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 "네 엄마가 너희에게 스마트폰을 사 줘서, 네 엄마가 너희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서..." 등의 비슷한 래퍼토리.

동생과는 자주 싸웠어. 초5 생일 전날에 내가 식칼을 들고 내 옆구리를 겨눴던 기억이 나. 초경 때도 서로 발로 복부를 차고 팔을 휘둘렀는데, 따로 달력에 기록해 두지 않았지만 정확히 날짜까지 기억해. 초6이던 해의 12/16. 그날에 초경 축하한다고, 이제 여자(ㅋㅋ)됐다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었는데, 뻔뻔하게 내 앞에서 한가득 퍼먹던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 나.

가장 최근 크게 싸운 건 세 달 전. 새벽에 동생이 하는 말을 일부러 무시했어. 쟤는 항상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내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일이 허다한데, 나라고 꼬박꼬박 대꾸해 줄 필요가 없으니까. 그랬더니 곧장 내 핸드폰을 뺏어서 바닥에 내동댕이 치더라. 그걸 보고 참 무식하고, 분조장에다, 할 줄 아는 건 자신보다 약자임이 명백한 사람에게 힘만 휘두르는 것뿐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어. 꼭 본인 말만 맞고, 자신은 어떤 기준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런 부류를 난 너무나 많이 보고 겪어왔어. 본인들은 알까? 닫힌 방문 너머로 벽을 치고 책상을 치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악쓰는 소리, 호통치는 소리, 꺽꺽 웃는 소리에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마 평생 모르겠지.

그때 주무시던 어머니가 깨서 상황이 커졌어. 해가 밝을 때까지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악을 쓰며 버티고 서 있었어.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중요치 않고, 고작 자신의 기분을 더럽게 했단 이유만 남은 상태에서, 틈만 나면 나 하나를 대상으로 합심해서 즐겁게 까대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으며, 할 필요성도 못 느꼈어. 돌아온 건 화끈한 뺨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뿐이니까. 나 혼자만 물에 부어진 기름처럼 뜬 기분이었어. 저 사람들이 제정신인데 나 혼자 미친 것 같아서 차라리 정신병원에 보내라고 빌었었어.

내가 이럴 때마다 듣는 말은, "속에 담아두지만 말고 그때그때 표현해라", "과거 일은 끌고오지 마라".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그런 말은 하등 도움이 안 돼. 표현하려 할 때마다 내 입을 막은 건 내가 아닌데. 나를 여전히 과거에서 머물게 만든 건 내가 아닌데. 흔히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 난 많은 걸 바란 게 아냐. 내가 입을 열 때 말문이 막히게끔 하지 않았음 했고, 결국은 입을 다물고 말을 아껴야 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음 했어. 그냥 듣고만 있는 것도 귀찮고 싫단 티가 나는, 내가 어떤 말을 하건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니. 많은 사건과 대화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어.

나는 어머니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별 노력을 다 해 봤어. 그렇지만 동생은 아무런 노력을 기하지 않아도 쉽게 애정을 쥐었어. 비참하기 짝이 없지. 교회에서 "자신은 부모님께 다른 형제자매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것 같냐"는 질문에 당당히 손을 들던 동생과, 내가 손을 들지 않아서 당황하던 어머니를 기억해. 나는 사랑받기 위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점부터 집에 오면 책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로 __질을 4시간 동안 했어. 설거지를 하면 "어차피 나중에 결혼하면 진저리 나도록 하게 될 거 벌써부터 하지 마라"는 말 뿐. 난 그때 엄마가 불쌍했어. 나도 불쌍했고.

나 또한 또래 아이들처럼 아이돌을 좋아했지만, 혹여 부모님이 싫어하실까 봐 표현도 못했어. 노래도 자유롭게 듣지 못했어. 내가 많은 걸 포기하고 손에서 놓는 동안, 동생은 가진 게 너무 많더라. 숨이 막힐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하는 걸 포기하게 되더라고. 나도 모르는 새 지쳐 있었나 봐. 아니면 인정하게 되었을지도. 내가 뭘 하던, 변하는 건 없을 거라는 걸.

아이돌 좋아하는 걸 밝히고 나니 후련한 느낌은 없더라. 그래도 눈치 보느라 제대로 줍지 못했던 떡밥도 몇 년이 지나서야 줍고, 일절 못 사던 굿즈도 사니까 행복했어. 드디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거든.

난 특히 설날이나 추석도 싫어했어. 가 봤자 남자들은 하나같이 소파나 침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고, 여자들은 더운 열기 속에서 고생하는데 가만히 있기 죄송스러워 수저 놓는 거라도 도우면 시집 갈 때 다 됐다는 소리나 듣고. 그곳에서도 나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게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숨막히고 불편한 공간이니까. 그들은 일정 개월수가 되지 않은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면 안 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그때문에 넌지시 아이의 옷 색깔을 귀띔해 주는 것도 모르겠지. 난 할머니들의 편애에 내가 불쌍했고, 그렇게 하는 게 당연시되는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도 불쌍했어.

내 꿈은 네일아티스트, 소설가였어. 고등학교 입학 때 관련 진로를 알아보는 도중 "너는 성격이 모나서 서비스직은 못해", "소설가로는 못 벌어먹어"라는 말에 가로막혔지. 더 싫었던 건 한순간에 포기해 버린 내 자신이었어.

결국 어머니가 원하던 간호계열 특성화고로 진학하고, 실습 때 온갖 일에 시달리면서 많이 울었어. 한 달 넘게 퇴근하는 길마다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었어. 실습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은 실습생과 환자, 보호자, 의료인, 간병인에게 탈탈 털릴 때마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어. 왜 나를, 나를 여기로 떠밀어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중학생 때 동생의 "난 너까지 먹여살리지 못하니까 네가 알아서 벌어먹고 살아라" 라는 말 때문에. 악다구니로 버텼어. 잉여인간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루에 채 1시간도 자지 못한 채로 혹시라도 내일 실수하면 어쩌나, 환자에게 컨펌 들어오면 어쩌나, 같은 실습생이 시비 트면 어쩌나 걱정하며 그날그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세세히 기록했어. 정말 상처되는 일과 말밖에 없더라. 내 말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어.

끝내 전학을 갈지 자퇴를 할지 결정하던 와중 어머니는 또 다시 내게 선택지를 짚어주었어. 처음엔 인간관계에 힘이 들면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것도 괜찮다고 하더니, 나중엔 전학을 가래. 더 이상 대화하는 게 기빨리고, 자퇴할 거면 알아서 살라길래 전학을 갔어. 기껏 정 붙이고 걸어가려던 길에서 갈림길로 빠졌는데, 이제 와서 뭘 할 수가 없는 거 있지. 학업에서 뒤쳐지고 어중간하게 멈춰 있는 나에게, 비꼬아서 까고 힘들게 하는 게 또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어.

동생이랑 도저히 한 지붕 아래서 못 살겠다고, 쟤랑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게 거미가 온몸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소름끼친다고 했더니, 네 자췻방 월세 내 줄 돈은 없으니 몇 년만 참으래. 쟤 군대 가면 쟤 방을 내게 주겠다고. 어머니는 모르겠지? 초6 때 앉아있는 날 보고 걔가 "너 지금 유혹하려고 그렇게 앉아있냐?"고 했던 일. 틈만 나면 죽여버리겠다며 악다구니를 쓰면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걸 관망하고, 동생에게만 관대한 사람에게 걸 기대는 더 이상 없네.

이제는 또 어머니랑 용돈으로도 싸워. 고3인 내 한 달 용돈은 5만 원이야. 이미 사전에 용돈과 교통비는 별개로 주겠다, 매달 1일에 주겠다고 합의가 된 상태였는데, 가끔씩 넘어가는 달도 있었고 때에 맞춰 주지 않는 때도 많았어. 이에 대해 문제를 얘기하면 짜증만 내더라.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몰라도 최대한 내가 가진 만큼에서 만족하고 싶었어. 용돈 내에서 굿즈를 샀다는 이유로 용돈을 일부러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 동생은 5만 원으로 교통비에 더해서 쓰는데 너는 왜 그러냐면서. 동생과 나는 지출하는 곳이 다를 뿐이야. 나는 덕질에, 동생은 게임에. 뭘 해도 내가 하는 것만 한심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비참했지. 한때는 교통비도 부족해서 친구들에게 빌린 적도 있었어. 내가 "차라리 이럴 거면 처음부터 용돈을 쓸 용도를 정해 주고 지급을 했어야 한다", "알바라도 할 테니까 서류 작성해 달라"고 했더니, 너 같이 힘도 없고 체구도 작은 애를 뭘 믿고 채용하겠냐며 해 주지도 않았어. 올해부터는 교통비를 용돈에 포함해서 10만 원을 주는데, 내 교통비는 동생보다 더 나가서 한 달에 약 5천 원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용돈 남겨서 보태 쓰라더라.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울음에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아. 옆집 오빠가 눈송이를 눈에 뿌린 적이 있는데, 그다지 아프지 않았음에도 울었고. 사촌오빠가 창틀에 날 앉힌 적이 있는데, 그닥 무섭지 않았음에도 울었고. 아빠가 잠을 깨우는 손길에 칭얼거렸어. 근데 요즘은 왜 이럴까? 울 자격이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눈물이 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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