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인터넷에 “이혼사유” 라는 글을 보고
구구절절 고생이 역력한 글을 쓰고 이혼 사유를 고민하는 한 여자분의 글을 읽었다.
얼핏 보아도 50가지는 넘어 보이는 사연이 절절 한데 딱히 이혼을 할 만한 특별한 사유 즉, 폭력, 도박, 외도 등등 뭔가 확실한 물증의 사유를 찾는 듯하다.
예전에 어른들은 말했다. 결혼 생활이 힘들다 하면, 도박은 아니잖아. 외도는 아니잖아. 폭력은 아니잖아. 밖에서 애를 낳아 온건 아니잖아. 하. 안 그래도 힘들고 최악인데 인간이길 포기한 이상한 기준을 들이 대고 위로랍시고 한다.
어디까지 양보를 하고 배려를 하고 참아야 하나. 나 이렇게 살라고 내 부모님이 곱고 예쁘고 정성스럽게 키웠던가?
이혼 서류를 바라보니 이혼사유 라는 란이 있었다. 어떻게 그 세월을 다 쓸까? 그 많은 사연을 어떤 단어로 함축해야 딱 맞아 떨어지고 억울 하지 않은 표현이 될까? 이혼서류 한 장 작성하는데도 위로가 필요 했던 단 한마디. 내 입장을 표명할 명확한 한 마디. 그 단어가 적절치 않았다. 내 탓이라고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고작 적고 있던 한 마디는 성격차이. 기억이 명확히 나지 않는다. 사실 이혼 사유 따위는 차고 넘치지만 이혼만 할 수 있다면 내 탓 이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성격 차이도 맞기는 했다. 성격에 차이가 있으니 갈등을 했을 거고 이해도 부족했을 터이다.
혈압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고통으로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며 토하고 있는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다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즐거워하던 그 사람. 배우자로서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던 그 서운하고 역겨운 상황. 저 사람은 반려자가 아니다. 지나가던 남도 돌아보고 119를 불러줬을 상황에 그는 왜 그랬을까? 아주 단편의 예이다. 정 이라고는 태어날적부터 DNA에 탑재 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기심으로 무장을 하고 공감능력이란 개나 줘버리고 살아온 사람을 난 못 알아 봤다.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사는 그 사람. 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가 잘못 한 거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 왔던 내 인생이 옳다. 지금 후회 하지 않고 행복한 내 인생을 사는 것을 보면 내가 옳았다. 최선을 다해서 살기 잘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에 후회 하면 어쩔 뻔 했을까?
이건 내 위주의 상황이니 그도 나를 만나 불행했을 수도 있다. 나보다 더 멋지고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를 상황.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놔줘야 하고 나로부터 시작된 저 사람의 이기심과 불행이라면 끝을 내 줘야지. 그게 맞지. 이제 이혼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내 인생에 한번, 우리 부부의 삶에 한번, 아이들의 삶에 한번 고민하며 법원을 세 번을 다녀 왔던 그 시간들. 그 세 번을 대화로 풀어 보고자 노력했으나, 번번히 거짓말로 나에게 보란 듯이 응징하던 그 못난 사람. 그 세 번을 고민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그렇게 심사숙고 한 끝에 이혼 판결문을 받고 구청에 신고 하던 그날.
“내가 신고 할거야. OO이 아빠는 그냥 가.”
내가 신고 하고 싶었다. 서울 가정법원 옆에 있던 구청에 가서 내가 직접 신고 하고 싶었다. 저 사람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 한 건 내 인생의 불행의 시작점이 되었던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내가 마무리 짓고 싶었다. 너무 신났다. 구청으로 날아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접수를 했다.
“혼자 오셨어요?” 구청 직원의
질문이다. 순간 든 생각은 이혼 신고를 혼자 오지 누구랑 같이 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혼자 왔어요.” 신분증을 내 밀며 씽긋
웃었다. 즐거워하는 나를 신기 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직원. 괜찮다. 타인의 이해 따위는 중요 하지 않다. 지금 내가 중요 하다. 별 무리 없이 이혼 신고는 완료 되었다. 빠르게 접수하고 신고를
해준 직원이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난 또 씩 웃는다. 그 직원의 고개가 아주 작게 갸우뚱거린다.
신고를 마치고 구청 정문을 나오는데 등 뒤 견갑골에서 마치 거대한 날개가 돋아 나는 기분이 들었다. 날고 싶었다. 아니,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친권과 양육권까지 모두 갖고 오면서 내 아래로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함께 있고 내가 홀로 되고 내 본적지가 내 고향 그 곳으로 수정 되어 있고 너무 행복했다. 축복하고 싶었다. 불행하고 힘겹고 슬프고 좌절만 주었던 결혼이라는 생활을 청산하고 싱글이 되었다는 것에 축복을 내리고 싶었다.
괜찮다. 아이들이 내 곁에 있으니 이걸로 되었다. 빚도 있고 돈도 없지만 우리끼리 행복할 수 있다. 함께여서 불행하고 악마의 심장으로 사느니 조금 부족해도 원래의 내 모습으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이혼을 했지만 한번도 아이들에게 아빠의 모습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는 지금껏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 존재하고 멋지고 너희들이 원하면 항상 달려 올 사람이고 매우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 아빠는 아이들을 보러 찾아 오지 않는다. 법원에 신고할 때 월 2회의 면접 교섭을 기재 하였는데 아이들의 얼굴을 보러 오지 않았다. 전화도 한통 없다. 아이의 생일이 되어도 어린이 날이 되어도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안부도 연락도 없다. 그래도 아빠는 바쁘셔서 그런 거라며 너희들이 전화 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다 이제 아이들이 컸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청소년이 되었다. 대화 중에 아빠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빠한테 물어봐.”
아이가 대답한다. “아. 나 아빠 있었지?” 아이에게 아빠를 잊으면 안된다고, 아빠께 자주 안부 전화 드리라고 통박을 주었지만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그 또한 웃어 넘긴다.
아빠는 알까? 아이들에게서 잊혀지고 있으며, 이제는 아이들이 아빠를 찾지 않아도 되는 때가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아빠의 부재가 익숙해지게 만든 아빠를 아이들이 잊어가고 있다.
자신의 자리는 자신이 찾아 가는 것이다. 누군가 내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내 역할은 정해져 있으며 그 역할을 다 할 때까지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며 아이들을 챙겼던가. 곱고 예쁘고 구김없이 자라준 내 아이들. 너무 사랑스럽다. 너무 고맙다.
아픈 상처마저 많이 치유 되고,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 왔다. 지금도 문득 생각나면 눈물 나는 상처투성이인 결혼 생활이었지만. 내 인생에 너무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이혼이다.
이혼은 얼마나 좋은 제도 인가를 생각한다. 만약에 모든 구실을 대고 참고 살았어야 한다고 강요 했다면, 난 이 세상에 없지 않았을까? 공황장애와 우울증만 남겨 줬던 결혼. 나도 살고 아이들도 살고. 이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이 또한 필요한 제도이니 만들어 진 거다. 그 덕분에 나와 아이들은 잘살고 있다. 악마의 감정으로 살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예쁘고 곱게 잘 키워 주셨던 부모님께 잘살아 간다고, 문안 다녀오는 성묘 길에 안부를 전한다. 이혼할 수 있는 용기도 내 부모님이 나를 강하게 낳아주고 키워 주신 덕분이라고.
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애들 아빠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에게 당당하고 멋진 아빠로 사회에 굳은 뿌리를 내리고 사는 멋진 사람으로 잘 살아 주길 바란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순간은 순수했다.
내가 품었던 사랑에 열정은 여전 했으며
내가 존중했던 사랑에 진실했다.
여전히 그 사랑은 과거에서 빛나고 있다.
나는 그 사랑을 정성 들여 보살폈으며
결과야 어떠 하든 지금도 그 사랑의 결실을 돌보고 산다.
결혼반지 하나 받지 못하고 시작했지만
물질이 가난 했지 마음은 부자였다고
그 사람이야 어찌 하였든 나는 뜨거웠다고
그래서 지금은 괜찮다고.
그리고 건강하길 바란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얼굴 몇 번 비치지 않은 사람이 아이들에게 부양의 의무를 묻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자유롭고 멋지게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까.
이제 나의 일은 내 노후가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건강 챙기며 열심히 저축하고 투자하며 사는 것이다. 손주들이 놀러 오면 용돈 두둑하게 챙겨주는 멋진 할머니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