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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아내와 나 그리고 그놈

그남자 |2021.04.29 13:16
조회 1,480 |추천 2

사고나 불행은 준비가 되어 찾아온다. 순식간에 일어날거 같지만 사고는 그전에 몇번의 징후와 조짐이 서서히 발생하고 있었지만 사전에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다. 인지하였으면 사고는 예방되었고 사전에 막을수 있다.  서로의 익숙함과 편안함은 불행의 씨앗과 징후를 포착하는데 둔감하게 만들어 준다. 새로운 환경이 서로에게 다시 행복을 찾아주리라 생각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보통 싱가폴의 지사나 법인은 동남아 및 인도의 모든 사업을 주관하는 지역본사가 많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까지 한달에 15일 정도 출장일정으로 꽉 차있었다.  한국에서 근무할때도 출장이 많았지만, 아내도 직장이 있었고 장모님 장인어른도 계시니 오히려 여기 보다 덜 외로워 한거 같다. 서로에게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계획은 오히려 악수가 되어 버렸다. 싱가폴 온지 1년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출장때 마다 오는 나의 빈자리도 크고 아기도 다시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휴가때 한국을 귀국했을 때 아내와 나는 불임 클리닉에 갔다. 우리는 인공수정을 하기로 하였다.

아내는 한국에 당분간 처가에 머물려, 시술을 받기로 하였고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성공하기를 기도 했다. 인공수정이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힘든 일이다. 일단 병원에 가면 플라스틱 용기를 하나 주며, 밀실로 안내된다. 어색함이 몰려왔다.차리라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혼자 위로를 하는게 일을 빨리 끝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수납처에 내이름과 개인정보를 적고 간호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 플라스틱용기를 건내었다.

아내를 한국에 두고 싱가폴로 돌아왔다. 이상하리 만큼 집이 넓어 보였다 아내의 빈자리가 커서 일까 여기서의 빈자리는 애뜻하거나 정열적인 사랑에서 나온 빈자리가 아니다. 내가 아내에게 길들여져 있었고 거기서 오는 생활적 편안함의부재에서 온 불편함이 그 큰 빈자리를 만들었던 것 같다. 빨래를 했을 때 수건을 반으로 접어 또 반으로 접어 가지런하게 접는 아내의 손길이나, 식사를 할 때 찌게를 하거나 주요리가 나올 때 깔끔했던 아내가 앞접시를 준비하는 테이블 세팅

내가 칠칠맞지 못해서 옷깃이 흐트러져 있을 때 현관문까지 나와 옷마무새를 다듬어주던 작은 일들이 합쳐져 큰 빈자리로 느껴졌다.

홀로 돌아온후 그런 빈자리가 아내에게 매일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사랑보다는 익숙함에 멀어진 삭막함에서 그리고 그걸 채워주는 아내가 갑자기 고마웠고 그리웠다. 시술결과가 나오는 날이면

초초하게 전화를 기다리며 아내를 기다렸다. 난임부부나 불임부부는 잘 알겠지만, 경험을 하면

준의사만큼 공부를 하게된다. 착상은 잘되었는지, 과배란유도주사를 맞은 아내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몇번의 실패가 있었고 기다림은 길어져만 갔다. 4번인가 5번의 실패 끝에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몇초간 말이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실패군아 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흐느낌이 느껴지고 아내는 임신이 되었다고 울면서 이야기 했고 나도 소리없는 눈물이 나 볼에 흘러 내렸다.  무언가 지금까지 채워지지 못했던 공백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부부란 호감에서 시작된 감정이 가슴떨리는 벅참으로 사랑하고 떨어지기 싫어 부부가 되고, 부부란 불완전체의 완성을 위해 새 생명을 가지려 하는거 같다. 어느정도의 관계와  일상의 지루함에서

아이가 주는 표현알수 없는 느낌은 부부의 공백을 매꿔준다.

시간이 지나고 아내의 배는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의 일도 바빠져서 한국에 그리 자주 갈수 없는 상황이었다. 화상통화로 점점 나오는 아내의 배를 보면서, 출산이라는 삶의 새로운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첫경험은 강렬한 자극이며 영원히 기억된다. 첫입맞춤이 그랬고 첫사랑그랬고 첫사랑의 행위가 그랬으며, 첫 프로포즈가 그랬다. 처음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영원할거 같다는 착각을 사람들은 한다 첫사랑을 만나면 영원할거 같고 첫입맞춤의 감미로움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거 같다. 첫출산은 그런 기대감으로 나의 마음에 노크를 하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에 맞추어 휴가를 내어 한국에 들어갔다. 아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공항에 마중 나왔다. 근 8개월 만에 보는 아내를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 했다. 가벼운 포옹과 서로에게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며 우리는 처가로 갔다.

아내에게 있어서 첫출산이였지만 순조롭게 자연분만을 했다. 나도 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옆에 있었다. 생각보다 남자들은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다. 산통이 왔을 때 아내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옆에서 무기력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덜컥 아내나 아기가 문제가 있나 두려웠고 산통에 고통받고 있는 아내가 어떻게 되는게 아닐까 두려웠다. 보편적인 가치관중 으뜸이 모성애라고 하는지 알수있을거 같았다 자신의 배에 10개월 이상 새생명을 품고 고통으로 출산을 하면 모성애가 생길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수컷들의 추측일 뿐이지만.  산후조리겸 여러가지 검사를 받아야 되는 아내와 아기를 남겨둔채 나는 3일후 싱가폴로 돌아왔다.

 

한생명의 아버지가 된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특히 아들에게 미칠수 있는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지대하다. 부모의 말한마디 말한마디 아니 부모의 행동 하나 하나는 아이들은 물을 스폰지가 받아들이는것처럼 빨아 드린다. 출산후 홀로 싱가포르로 귀임후,

본사 전근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기야 회사측 입장도 이해했다. 부임한지 3년차 지난 중간관리지가 갑자기 전근신청을 하면 화가 날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기는 처가집에서 지냈고 육아의 현실은 고통으로 아내에게 고스란히 전가 되고 있었다. 나도 아내와 아기가 보고 싶었고 망설임 끝에 사직서를 제출 했다. 생계의 문제도 있었지만 출산까지 있었던 아내와 나의 스트레스로 인해  쉬고 싶었다. 3개월의 인수인계를 마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육아는 현실이였다. 품에 안긴 아기는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스럽고 내 목숨과 바꿀수 있는 존재 였지만 언어로 소통을 할수 없는 아이의 표현은 해석 불가였다. 아기는 아내와 내가 일어서서 안아줄때만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 싶어 쇼파나 의자에 앉기라도 하면 스위치라도 있듯이 울기 시작했다. 교대로 서로 번갈아가면 남극의 펭귄이 아기펭권의 체온을 위해 허들링을 하듯이 우리는 아기를 재웠고 지쳐 갔다. 그렇기 기대하던 아기가 태어낳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육아의 짐은 크게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목숨을 줄만큼 사랑하면 자신의 받은 사랑을 깨달을수 있다고 들었다. 새생명이 우리에게 왔을 때 내가 새생명이였을 때 부모님도 이렇게 했었겠군아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계속 일을 안할 수는 없었다.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 구인활동을 하였고 운좋게 다국적 기업 한국 법인에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지원했다. 면접자가 예전 알고 있던 업계 선배님이고 언질이 있어 입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싱가폴 부임전 전세로 두었던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처가집이 내집 처럼 편안 사위는 없으니까

 

이사후 싱가폴에 있었던 세간살이 국제이사를 그놈에게 부탁 했다. 그놈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그놈의 아내는 벌써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그놈은 현지에 남아 이사 뒷정리 중이였다.  이사문제로 아내는 그놈과 몇번의 전화 통화를 한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그 놈에 대하여 몇마디 하려 한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놈은 상당히 괜찬은 놈이다. 아내와의 바람을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볼때 말이다. 예의도 바르고 한국에 명문대를 졸업했고, 학교 야구팀에서 활동도 했다. 다부진 체격에 얼굴도 지나가다 남자도 다시한번 쳐다볼 정도로 잘 생겼다.  그리고 그 놈은 겸손했다.  처음엔 사회에서 만난 사람치고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의례적이며 사무적이며 가식적인 겸손함을 가진 인간들은  어디가도 넘치고 넘쳤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 놈의 말투는 싱가폴 주재원 선경험자로써 가르치려는 말투 보다는 친철함이 묻어나는 배려가 많았고, 술을 마시더라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거나 주색잡기를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였다.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놈과 그의 아내는 손수 선물을 고르며 값비싼 유모차를 우리에게 선물 했다. 같은 남자가 봐도 매력이 있는 놈이였다.

 

전세세입자가 나가고 싱가폴에서온 이삿집이 도착하고 아내와 나는 분주하게 이사를 했다.

새생명이 태어나 새롭게 집안을 인터리어 했고, 아기를 위해 친환경 벽지등 아기 위주의 공간으로 집을 꾸몄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첫아이는 정성을 다한다. 첫 출산은 부부에게 소중한 추억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아기의 모든 물건들은 형편이 된다면 최고로 하려고 한다. 모든지 아기의 건강과 산모였던 아내를 배려 한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짖인지 나중에 알게 되지만.  화려한 결혼식과 고급 유아용품은 부부와 부모의 아름다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소비된 현실의 허영일수 있다.

 

낙엽이 져버리고 겨울을 예고하는 쌀쌀해진 11월 그놈은 한국에 영구귀국 했다. 아이선물의 감사함을 보답하고 싶었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몇백만원씩 하는 유모차를 흔쾌히 선물하는 친구는 드물다. 더군다나 사회에서 만난 거리감이 있는 가까운 지인정도인 그가 한 선심이 고마웠다.  우리 부부는 그놈의 부부를 우리집에 초대 했다.  반가웠다 진심으로 우리아기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고 그 놈과 그놈의 아내의 따듯한 말한마디 말한마디에서 진실성이 묻어 나왔다.  아내는 초대 식사로

로스트 터키를 준비했다. 11월 3번째 주가 미국 추수감사절이니 그리 나쁘지 않은 메뉴선택이라 난 생각했다. 로스트 터키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간다.  칠면조를 구매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그리고 그걸 에이징하여 오븐에 굽고 그레이비를 만들고 배에 집어 넣어서 만드는 가니쉬도 손이 많이 간다. 유난히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아내를 볼 때 아내의 손님맞이 하는 마음씨가 이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였지만.

 

아까 말한대로 사고는 항상 순식간에 일어 나지 않는다. 사전 조짐이 있고 몇번의 실수와 오류가 반복되면 사고는 발생한다. 이때 나는 아내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했는지 느낄수 없었다

아내도 나중에 그 때는 그놈에 대한 애틋함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싱가폴 이사때 도움을 준 그놈의 친철함이 그가 보내준  정성스런 선물에 좋은 사람이군아 정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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