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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사랑 전역 축하해

첫사랑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라도 편했다
첫사랑의 의미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처음으로 해 본 사랑 두 번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 나는 후자였다 그러나 여태 추억으로 간직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겐 첫사랑이 없다고 생각했다 요 근래 네 꿈을 꾸기 전 까지는

나는 취업 준비로 바빴던 학생 열 아홉, 너는 취업에 성공한 공기업 직장인 스무 살의 신분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저녁 8시까지 학교에 남아 취업 준비를 했고 너는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라 학교 앞 까지 걸어 와 꽃다발을 쥐어주곤 했다 너는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은 꼭 아무 날 아닌데도 꽃다발을 사주었다
고3의 나는 그 당시 자존감이 무척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취업에 큰 의욕이 없었고 너는 그런 나를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꾸짖곤 했다 나는 너의 그런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듣기 싫은 소리라는 이유로 너의 말투를 지적했었다
취업 막바지에 접어들 때에는 운이 좋게 은행 최종 면접을 보았고 결과를 앞두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간절했다 그러나 최종불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고 남은 의욕을 상실한 채 졸업할 위기에 놓였다 그때 내가 문자 받고 목 놓아 엉엉 울 때도 너는 내 옆에서 위로해주던 장면이 다시금 떠오른다
다행히 졸업 직전 은행에 취업했고 간절히 바라왔던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20살 행원 너는 21살 군인이 된다
그러나 입대 두 달 전 너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아마 내가 너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 할 거라 생각했겠지 혼자서 꽤 오랫동안 고민했을 거야 그러나 나는 기다리고 싶어 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특별한 운명이라 생각했으니 이정도로 쉽게 헤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알지도 못 하는 주량이 넘어가도록 술을 마셔댔다 그리고 너에게 펑펑 눈물보이며 말했다 기다리게 해달라고. 결국 내 마음이 통했는지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고 입대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생각난다 입대식 본다고 신입이 2개월 만에 휴가 쓴 걸로 사수에게 엄청 닦였었는데. 하지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마지막 네 모습을 보지 못 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야
입대식을 보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허전했다 네 부모님 계실 때 꾸역꾸역 눈물 참다가 집에 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한편으로는 홀로 남은 사회에서 헤쳐나가야 하는 길이 막막하기도 했다

“내 친구 여자친구가 영상편지 만들어 주니까 훈련소 동기들이 다 부럽다고 하던데.”

입대를 앞둔 너가 툭 던진 말에 오글거려서 못 하겠다 해 놓고 나는... 매주마다 영상 편지를 만들었다 은행에 잘 보일 사람 없다며 맨날 생얼로 출근하면서 너와 너 주변 사람들에겐 잘 보이고 싶었는지 매번 집 가서 화장하고 영상 찍은 거 넌 몰랐을 거야 지금까지도
난생 처음 곰신 카페를 가입하고, 수많은 빡빡이 중 콩알만한 네 얼굴 찾으러 공홈을 뒤적이고, 점심시간에 짬 내서 우체국까지 뛰어 다니고, 퇴근하면 인편+손편 지옥을 맛 봤던. 이렇게 나는 한달 내내 너를 찾으려 헤매는데 정작 너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없어서 꼭 죽은 사람 살려내라고 찾는 거 마냥 있었다 사회에서의 나는 사회초년생 답게 일 못 하고 눈치 없을 때일 수록 너의 빈 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곤 했다
얼마 후 주변 곰신들은 손편지를 받았단다 아직 받지 못 했던 나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빈 우체통을 뒤적이곤 했다 하루가 지날 때 마다 오늘도 없을 거야 하며 기대치를 낮추어 보지만 막상 퇴근하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곁눈질로 우체통을 보기도 했다
며칠 후 드디어 너에게 답장이 왔다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너무 보고 싶단다 그리고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단다 기쁨의 눈물이란 게 이런 건가 존버에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읽었던 편지 읽고 또 읽으며 울고 웃었다
이후 최종으로 자대 배치 받아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 걸렸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곳 해 봐야 왕복 5시간이었지만.
Tmi지만 나는 요리를 정말 못하다는 데다가 싫어하기까지 한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곱게 자랐다 손에 칼 자국 한 번 난 적이 없을 정도로 그런 내가 너가 먹고 싶어 했던 음식들로 장바구니 한가득 담고 늦은 새벽까지 도시락을 쌌다 비록 맛은 없었겠지만 누군가를 위한 도시락은 처음이었다 면회 가는 데만 2시간 반인데 가는 길에 음식이 뒤엎어져 있을까 노심초사한 것도 생각난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고졸 신입 사회초년생이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 조차 해 보지 않은,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 한 내가 무슨 일머리가 있고 눈치가 있을까 그 덕에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게다가 친구들은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고 직장은 외곽지역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탈이라 해 봤자 주말에 남자친구 보러 가는 정도 딱 그정도였다 왕복 5시간이었지만 주말이 아니면 볼 수가 없어 매주마다 보러 가곤 했다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우리는 질리도록 싸웠다 서로에게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막 쏟아부었다 그 와중에 폰 내러 가야 하는 상황이 그렇게나 싫었다 그러면 나는 감정이 다 풀리지 않은 체 다음 날의 너와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우린 간신히 붙잡고 있던 줄을 서서히 놓아주고 있었나 보다

그 해 연말 즈음 나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요일 밤만 되면 다음 날이 싫어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며 괴롭기까지 했다 너는 직장을 그만두라 했지만 간절했던 직업을 포기하는 이유가 적성에 안 맞아서가 아니라 사람 때문만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잦은 싸움으로 인해 매주 가던 면회는 더이상 가질 않았고 사회에서 맛 본 경험들로 인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소위 말하는 정신병자가 되어 너를 더 괴롭혔다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 당일 어이없게도 우리는 헤어졌다 늘 그랬듯 서로에게 막말을 뱉으며 상처주기 바빴다 홧김에 나는 너의 집 앞 까지 찾아가 전날 만들어 놓았던 빼빼로와 편지를 버려두었다
그게 너의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르고

솔직히 군대 보낸 이후로 정 붙일 데가 없긴 했다 치고 박고 싸우기만 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런데 혼자 남은 이 사회에서는 도저히 기댈 곳 조차 하나 없다 그나마 털어 놓을 수 있었던 건 너였나 그렇게 다신 보지 말자며 소리를 고래 고래 질렀건만 다시 애타게 너를 찾는 걸 보면
참 자존심도 없다 애걸 복걸 다시 만나달라 구걸했다 그런데 이미 너는 경계선을 마구 넘나드는 우리의 위태로운 관계에 질려버린 듯 하다 더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또 똑같은 이유로 헤어질 거라고 했다

새로운 해가 찾아오고 증세는 더욱 심해져 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우울증 확정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2020년의 해는 내 인생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안해 널 이유없이 괴롭힌 게 우울증 때문이었어
몸도 마음도 함께 망가져가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 결국 1년 3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달에 너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에 전화 온 걸 보니 코로나 때문에 한참 밀리다가 드디어 휴가 나온 듯 했다 번호를 지웠지만 익숙했고 곧 너 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자 주변은 시끄러웠고 너는 두서없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너는 잘 지내냐고 물었다 그러나 너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그러자 다음 날 아침 너는 미안하다며 잘 지내라고 더이상 연락할 일 없다고 했다
그것이 우리의 정말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게 벌써 1년이 지났다 2년을 징하게도 만났으니 문득 네 생각이 나는 건 당연하겠지만 첫사랑의 대상은 아니라 생각했다 네 막말의 일부분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 깊숙이 담아두고 있으니 너를 떠올리면 서운함 밖에 안 남아 있더라고 그래서 너는 나에게 첫사랑이 아닐 거 같았어
첫사랑의 의미가 뭘까 첫사랑은 어떤 느낌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한테까지 물어보기도 했어 당신들에게 첫사랑은 어떤 의미냐고 별로 잘 해준 것도 없는데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 좋아한 이유가 대체 뭐냐고
대답은... 아쉬워서래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사람과 더 많은 걸 함께하지 못 했다는 아쉬움 하지만 난 이때까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 했어

그런데 요즘따라 네 생각이 많이 나 차라리 기억이 미화된 거라고 믿고 싶어
고3 학창시절과 스무살의 사회생활 그리고 곰신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너와 함께해서 더 그런걸까 잊혀졌던 너와의 짜잘한 추억들이 다시금 떠올라 정말 니가 내 첫사랑인걸까

전역 축하해 그리고 생일 축하해

깔끔한 끝맺음을 했더라면 너에게 축하 메시지 한 통 보낼 수 있었을까란 멍청한 상상을 하게 돼 정말 축하해 주고 싶었어 비록 네 눈에 나는 이미 잊어버리고도 남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는 게 가장 아름다운 거란 말을 어디선가 주워 들은 적이 있어 그래야 덜 지저분해 보이겠지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10대 마지막과 가장 풋풋한 20대의 시작을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부족했던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안겨줘서 감사해

다시 한 번 더 전역을 축하해
추천수1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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