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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설화(雪化)

sOda |2004.03.01 21:13
조회 796 |추천 0

설화(雪化)

 

21.  배신


휘는 우뚝 멈춘채 놀라움으로 입을 벌렸다.

 

분명 정신이 든지 며칠 되지 않았다 들었는데 담이는 벌써 무술 훈련중이었다.

 

몸이 성치 않은 것은 무뎌진 몸놀림으로 확실하다.

 

 

“담아...!”

 

“아... 휘님...”

 

“대체 무슨짓이냐? 몸도 온전치 않은데...”

 

“별거 아니에요. 방안에 누워만 있으려니 그게 더 힘들어요.”

 

“무록이 절대 쉬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러다 더 큰일이 나면 어쩌려구?”

 

“뼈만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다 했어요.”

 

“아무려면 이렇게 무술훈련을 해도 된단 소리였을라구!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네.”

 

 

방안에는 약초 냄새로 가득했다.

 

얼마나 많은 약을 썼고 또 쓰고 있는지 짐작할 만 했다.

 

그만큼 많이 다쳤다는 뜻이리라...

 

 

“인사가 늦었구나. 나와 결을 네가 살렸다. 고맙다...”

 

“결님과 휘님을 살리는 것이 저 또한 사는 길이니, 고맙단 말씀은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 말이 어딨느냐. 네가 아니었다면 호랑이 밥이 됐을것이 뻔한것을... 그나저나, 결은

어디갔느냐?”

 

“결님은 뵙지 못했는데요...”

 

“그래? 네가 정신을 잃고있는동안 밤낮으로 붙어서 간호 하더니... 쑥스러우니 살짝 빠져 나간게로군. 허허...”

 

“...!”

 

 

담이는 어렴풋이 나던 냄새를 떠올렸다.

 

정신이 없었지만 따뜻한 기운이 주위에 맴돌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체온과 따스한 숨결이었다.

 

그것이 설마 결의 것이리라곤 짐작도 못한 일이었다.

 

혹시... 그렇다면... 그 차가운 입술은...?

 

담이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담이를 휘는 의아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휘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부탁이든 해보거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제 몸이 낫거든...”


 

본채쪽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관노부의 사신이 도착한 듯 했다.


 

 

“곡물의 양을 늘리겠습니다.”

 

“관노부는 그렇게 양식이 남아도오?”

 

“그건 아니지만...”

 

“그걸로는 변방의 병사들을 먹이는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텐데?”

 

“하지만...”

 

“우리는 당장 남하해서 땅을 넓혀야 하오. 그걸 못하는 것은 그대들 부족의 병력만으로 부여를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오? 설사 당신들의 땅이 부여에 넘어간다해도 부여가 쉽사리 우리 부족을 넘보지는 못할 것이란 걸, 알 것 아니오?”

 

“그렇습니다...”

 

“그러니 단지 우리가 부여와 국경을 접하는 것이 싫어서 그대들의 부족을 지켜줘야 한다는건 부족민을 설득하기에 부족한 이유 아니오?“

 

“허나, 우리 부족과 계루부는 선대부터 지금까지 쭉 우호적인...”

 

“이젠 족장도 바뀔것이고, 그렇게 되면 쓸데없이 우리 부족민을 희생하는 일 따위는

없을것이오.”

 

“...!”

 

“일년 남았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말한대로 따르면 되오. 절노부에서 병력을 지원 받으시오.”

 

“하지만 그것은...”

 

“그럼, 우리가 힘에 부치다 하여 철군하기를 원하시오?”

 

 

원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결의 말대로 한다면 지금 당장은 안전할지 모르나, 다른 두 부족의 병사가 부족땅을 장악하게 고스란히 내어주는 것이다.

 

결이란 자의 속셈은 알 길이 없다.

 

정말로 군사 지원이 손실이라 판단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인지...

 

 

“밖에 누구 있느냐?”

 

“네. 결이님.”

 

“휘님을 모셔오너라.”

 

“네.”


 

휘는 별채에 있다가 전갈을 받았다.

 

담이는 휘를 잡았다.

 

“관노부의 사신이라구요?”

 

“그렇다. 가고 싶으냐?”

 

“...따라가서 잠시 밖에 있어도 될까요? 이야기가 끝나면 사신에게 뭘 좀 여쭤보고 싶은데...”

 

“좋을대로 하려무나.”


 

담이는 휘의 뒤를 따라 본채로 향했다.

 

휘가 들어간 후 담이는 문 앞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주부의 장자이자 장차 대모달이 되실 휘거련이오. 이쪽은 관노부에서 오신 사신이시오.”

 

“먼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거련이라 하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원이라 합니다.”

 

 

문 밖에 있던 담이는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원이 오라버니란 말인가...?

 

아아... 아버지 소식을 오라버니도 들었을까?

 

 

“아참... 이번에 정혼하셨다면서요?”

 

“예.”

 

“거참 축하할 일이오.”

 

“고맙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거련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거련이 관노부의 사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더이다.”

 

“그렇습니까?”

 

“그렇소. 어디선가 듣자하니, 이번에 관노부에서 자의적으로 죄인 하나의 뒤를 쫓아 처형했다 하던데... 아니, 올바르게 말하자면 척살이겠구려. 회의에 부치지도 않고 행방을 캐내 암살한거나 다름없다던데... 맞소?”

 

“그, 그건...”

 

“아니오? 모르는 일이오? 조의두대형의 장자가 모른다면... 조의두대형 모사달님도 모르는 일이더이까?”

 

 

방 안의 원이 얼굴이 벌개진것에 반면, 방 밖의 담이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무언가 착오가...”

 

“착오라는건, 죄인을 아무런 판결도 없이 처형한것이오, 아니면 처형했다는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오?”

 

“허허... 거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냥 묵과할 일이 아닌 듯 싶소. 각 부족의 제가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 하리라 믿소? 회의에 부치지 않은 사실은 분명 제가들을 무시한 행위 아니오?”

 

“아, 아닙니다. 저는 그런 사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담이의 불끈 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모함을 받고 도망간 사실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단 것인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것인가...?

 

담이는 원이 오라버니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용서하지 않으리라...

 

원이 오라버니도... 관노부의 관리들도... 아니, 관노부라는 부족자체를 부정한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곁에 남은이도... 남아있는 것도...

 

 

“밖에 누구냐?”

 

“......”

 

 

담이는 한참후에야 대답을 했다.

 

“설화입니다...”

 

“...!”

 

 

놀란 것은 방 안의 세명 모두였다.

 

원이는 너무도 낯익은 여인의 음성에 놀랐고, 휘와 결은 이름에 걸맞도록 차가움이 배어있는 말투에 놀랐다.

 

 

“...사신이 나가신다. 처소로 모셔라.”

 

“...네.”

 

 

문이 열리고 세명의 젊은이가 나왔다.

 

마지막에 나온 원이는 문 앞에 서있는 담이를 보고는 꼼짝없이 멈추어 버렸다.

 

“따르시지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다. 내가 모실테니 넌 네 처소로 돌아가쉬거라.”

 

“그럴수는 없지요. 제 주인이 내리신 명인데... 사신께서는 절 따르시지요.”


 

앞장서서 걸어가는 담이의 뒷 모습을 보며 휘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분명... 자신을 설화라 했지?”

 

“차갑고 아름다운 눈꽃이라...어울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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