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서른 여덟.
집에서 빠져나와 혼자 지낸지 어느덧 15년차입니다.
우리 집구석은 정말 지옥도 그 자체였는데, 어미라는 작자는 제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 바람나서 가정을 버리고 빤쓰런했고, 아비라는 작자는 매일 밤마다 술 쳐마시고 집 기어들어와서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다 내 탓이라고 하면서 개패듯이 팼었습니다. 주먹질은 물론이고, 야구 빠따, 또는 스패너나 빠루 같은 연장으로 패는 것도 서슴치 않게 할 정도였고, 아비한테 맞지 않는 날에는 언제 와서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양반이 날 때리는 이유가 참 어이가 없게 느껴지는데, 누구나 다 그렇듯이 아비라는 존재는 독립할 능력이 없는 자식에게 있어서 커다란 산처럼 보였고, 그저 아무 저항 없이 맞기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거지같은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이 거지같은 집구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막노동판에서만 2년을 굴렀어요. (군대는 못갔습니다. 오른쪽 눈이랑 왼쪽 눈의 시력 차이가 많이 나서;;)
노가다나 상하차 같은거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루 다녀오면 진짜 온 몸이 부숴질 듯이 아픔..
근데 그런 막노동을 통해서 느끼는 정신적·육체적인 고통보다 저 지옥과도 같은 집구석에서 느끼는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이 더 싫었던건지 그 시절의 저는 정말 쉬지 않고 일했던 것 같네요.
낮에는 막노동판에서 구르고, 집구석에 들어가면 욕을 먹어야하는 이유도 없었지만, 아비라는 작자한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얻어쳐먹는 삶을 또 2년 동안 이어가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혹시라도 아비한테 제 소식 흘러들어갈까봐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랑 이웃들 연락 싹 다 끊고 연고도 없는 타지에 월세방 잡고 살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때도 참 막막했던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막노동 하면서 돈이나 벌던 놈이 타지에서 뭐하면서 살겠습니까.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기술도 없었으니 또 인력 사무소 기어들어가서 오늘 일 없나 기웃거리고, 혼자 살다보니 집구석에 있을때처럼 하루 벌어서 하루 쓰는 일당을 모을 수도 없는 처지였죠.
일은 일대로 힘들고, 경제적인 형편은 진짜 딱 죽지 않는 정도로만 살아가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데 연락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으니 어디가서 신세 한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어느새 감정도 메말라있는 인간이 되어버렸더라고요.
가끔 일하다가 숨 좀 돌리려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하하호호 웃으면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내 나이대의 사람들도 종종 봤었는데, 그 청년들은 옷도 멋지게 꾸며입고, 연애도 하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기도 하고, 청춘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나는 당장 죽을 것 같은 내 입에다가 풀칠하려고 더운 날씨, 추운 날씨 거르지 않고 후줄근한 작업복에 하이바쓰고, 공사현장에서 벽돌이나 나르고 있는데...
행복해보이는 남들과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 제 모습이 저절로 비교가 되어버리니 ' 난 왜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걸까? ' 같은 생각도 번듯한 직장 들어가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결혼은 안 했습니다. 사랑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었는데 제가 살아오면서 몸소 경험한 부모는 하루라도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아보이는 아비같지도 않은 아비랑 남자에 미쳐서 나 버리고 도망간 어미같지도 않은 어미라서.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건지 결혼은 못하겠더라고요.)
일하다가 만난 사람 소개로 번듯한 직장에 취직도 했고, 돈도 이십대에 벌던 것보다 더 많이 버니 제가 하고 싶은건 다 하고 사는 편인데... 어제 퇴근길에 엄마 아빠 손 잡고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있는 아이를 보니까 이런 생각들만 들더라고요.
내가 정상적인 가정 밑에서 자라왔다면 어땠을까.
지금 나는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걸까.
물질적인 여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제 내면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절 이렇게 만든 두 인간들을 향한 증오심만 느끼고 있으니까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공허함과 증오심만으로 가득 채운채로 살아가다가 가고 싶진 않은데,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이렇다보니 어디가서 조언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네요. 어찌 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