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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닝 남자 & 치마 여자

이원영 |2004.03.02 17:21
조회 18,913 |추천 0

서른이 넘은 이 나이까지 항상 추리닝만 입고 살았다

집 안에서는 물론이요 동네 슈퍼를 갈 때에도, 학교에 갈 때에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에도, 일 하러 갈 때에도...

음식점을 가건 영화관을 가건 백화점을 가건 (정장을 꼭 입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추리닝만 입고 다녔다

추리닝은 내 인생의 동반자였고 협력자였고 산 증인이었다

 

 

내 여자친구는 평생 치마만 입고 살았다

초등학교 꼬마 때부터 이십대 초중반인 지금까지 치마만 입고 살았다

동네 슈퍼를 갈 때에도, 학교에 갈 때에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에도, 일 하러 갈 때에도...

음식점을 가건 영화관을 가건 백화점을 가건 언제나 치마만 입고 다녔다

일 년에 바지를 한 두번 입어볼까말까할 정도로 치마만 줄기차게 입고 다녔다

 

 

추리닝만 입고 다니던 내 눈엔 치마만 입는 여자친구가 무척이나 '신기하게' 보였다

한번쯤은 바지도 입어볼 만도 한데 꼬박꼬박 빤스스타킹을 입으면서까지 치마를 입을까...

나 같으면 너무 불편해서 엄두도 안 날 일이었다

거기다 치마 색상과 스타킹 색깔, 구두 색깔까지 일일이 맞춘다는 건 차라리 존경스런 모습이었다

 

 

치마만 입고 다니는 여자친구의 눈엔 추리닝만 입는 내가 무척이나 '이상하게' 보였다고 한다-_-...

한번쯤은 면바지도 입어볼 만 한데 곧 죽어도 추리닝만 입고 다니고 싶냐고 물으면서...

자기 같으면 너무 창피해서 꿈에서조차 생각도 못 할 일이라고 한다

거기다 추리닝 색깔과 전혀 상관없이 검은색 구두, 혹은 슬리퍼만 신는 나를 경악을 하고 바라본다

 

 

나로써는 각자 옷 입는 스타일이 다른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에티켓'과 '미적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하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관점으로 인해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싸워야 했는데...


"추리닝 입으면 왜 안 되는 건데"

"그건 예의가 아니에요"

"그게 왜 예의하고 상관이 있는건데"

"집에서 입는 추리닝을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입고 나오면 안 되잖아요"

"그게 왜 안 되는 건데? 그들이 내가 집에서 입은지 어떻게 아는 건데?"

"-_-+"

"그래 그건 좀 그렇겠지만-_-;... 난 집에서 입는 것과 외출용이 구분되었잖아"

"뭐로 구분 되어 있는 건데요?"

"딱 보면 알잖아. 집에서 입는 건 무릎 많이 늘어난 거고 외출용은 조금만 늘어난 거고"

"난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오빠 추리닝은 우리 아빠도 꺼려하는 구닥다리 스타일이라는 거에요"

"왜 이러셔! 이거 이래뵈도 메이커 있는 것이셔!"

"그래요? 난 길거리에서 만 원 주고 사 입은 걸로 보이는데요?"

"킴스클럽에서 만오천원씩이나 주고 샀지"

 

 

너무나 자랑스럽게 뻐기는 나의 모습에 충격받은 여자친구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공공장소(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영화관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추리닝을 입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였다

 

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도대체 추리닝이 뭐가 어때서 저렇게까지 반대를 하는 것인가...

내가 하루이틀 입고 다닌 것도 아니고, 입고 다니는 동안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하도 답답해서 평생을 같이 지내던 단짝친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그 역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너도 알잖냐. 내가 평생 추리닝 입고 살았다는 거 말이다"

"잘 알지"

"내가 추리닝 입고 다니는 게 그렇게 이상하더냐?"

"이상해"

"어라? 정말 이상해?"

"당연히 이상하지. 넌 항상 추리닝만 입고 다니잖아"

"그러면 추리닝에 구두 신고 슬리퍼 신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냐?"

"이상해"

"진짜 이상해?"

"진짜 이상해"

"그런데 너 왜 이제까지 그런 말 한 번도 안 했냐?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 해야 되잖아!"

"너도 아는 줄 알았지. 너 이상한 줄 알면서도 입은 거 아니냐?"

"난 이상한 지 몰랐지! 알았으면... 그래도 입긴 입었겠다-_-"
 


친구의 이 말은 나에게 대단한 충격이었다

평생을 그게 이상한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나로써는 세상 헛 살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위에 추리닝에다가 구두 신고 다니는 사람 있으면 꼭 말해주자. 그거 몰라서 그러는 거다)

 

 

하여튼, 나로써는 치마만 입는 여자친구가 남자인 나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만 하였는데

같은 남자가 봐도 내가 이상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여자친구에게 수정안을 제시했다

 

"추리닝에다가 운동화 신으면 되지?"

"오빠,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러냐? 그러면 아저씨 추리닝 말고 예쁜 추리닝 입으면 되냐?"

"위에 면티도 예쁜 걸로 입어야 되요. 하도 빨아서 목이 다 늘어나고 색깔 변한 면티 말고"

"오케이"

 

우린 이렇게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여자친구는 자기가 직접 옷을 사 준다고 내 손을 잡고 럭셔리하기로 유명한

'갤XX아'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한 번도 사 입어보지 못한 최고의 스포츠 메이커라는 '나이키' 매장으로 '겁 없이' 들어섰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내가 생각해도 넘 럭셔리한 거 같다-_-...)


"입고 싶은 거 골라봐요"

"그냥 아무거나 입지 뭐 (감히 고를 엄두도 안 난다...)"

"그래도 한 번 골라봐요"

"그럼 그러지 뭐..."


"이거 어때?"

"아저씨꺼 같아요"

"그럼 이건?"

"그것도 이상해요. 그냥 내가 고를께요"

"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ㅠ.ㅠ...)

 

그녀가 골라 준 추리닝은 내가 생각한 것과 상당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허벅지는 좀 얇고 발목이 좀 넓은 것이 추리닝이 아니라 그냥 바지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거... 이쁜가?... (나름대로 항변의 목소리)"

"그러면 오빠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요"

"아니. 그냥 이거 입을게 (그냥 사주는대로 입자. 내가 골라봐야 아저씨 스타일이니까)"

"한번 입어봐요"

"아냐! 집에 가서 입을게 (도저히 스타일이 소화가 안 될 거 같다 ㅠ.ㅠ...)

 

 

사 준 추리닝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매정에서 봤을 때는 뭔가 유연하게 몸매가 살아 있던 추리닝이었던 거 같았는데

내가 입어 보니까 상당히 쫄바지스러웠다-_-...

 

허리는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고... (평소엔 사이즈 34면 딱 맞는데 약간 작게 나온 듯-_-;)

허벅지는 타이트하게 껴서 부담 스러웠고

발목을 꽉 쥐어 주는 느낌이 없어 헐렁헐렁 청소 다 하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세대에 맞는 스타일로 나온 듯 했다

 

 

그 이후로 난 여자친구가 제시한 공공장소에 갈 때엔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간다

그냥 스타일 차이라고 넘어가기에는 내 스타일이 좀 별나다 싶고-_-

그렇다고 사 준 추리닝은 아직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다

사 준 추리닝을 왜 안 입냐고 묻는데 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내 생전 처음 입어 보는 고가의 추리닝을 이 망가진 몸매로 입기엔 좀 민망한-_-...

 

하루 빨리 권상우 몸매를 만들어서 마음 편하게 추리닝을 입고 다녀야겠다

그래서, 치마를 입은 여자친구와 상큼하게 잘 어울리는 추리닝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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