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년을 짝사랑 했고 2년 넘게 연애하고 결혼 준비중이였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예비신랑의 첫사랑 때문에
아니 예비신랑 때문에 파혼하게 됐습니다.
10년의 세월 때문인지 알면서도 결정 내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편의상 예비신랑으로 지칭하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때 처음 만났죠
제가 전학을 왔었는데 남자애들이 저를 많이 괴롭혔고 그 때문인지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적응을 못해서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그때 반장이던 예비신랑이 저를 참 많이 챙겨줬어요.
비오는날 남자애들이 제 우산을 숨겨서 빗속을 뛰어가는데 저한테 자기 우산을 주고 비를 맞고 뛰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감정이 처음 생겼어요.
예비신랑 때문에 좋아하던 문학도 포기하고 이과를 따라갔었죠.
그렇게 3년내내 같은반을 했고 많이 친해졌어요.
친구들끼리 서로의 집도 놀러가고 여럿이였지만 주말에 가끔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렇게 남몰래 마음을 키웠어요.
대학도 같은곳 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대학가면 고백해야지.. 그 마음 하나로 정말 2년간 열심히 공부했던것 같네요.
같은 대학에 가면 더 많이 가까워지고 함께 할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저를 괴롭혔던 남자애들 중 한명이 저에게 고백을 해왔고
예비신랑은 저에게 "쟤 너 좋아해서 관심 받고 싶어서 괴롭힌거야." 라며 묘하게 그 친구와 저를 이어주려고 하는 느낌을 줬어요.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예비신랑에게 첫사랑이 생기게 돼요.
한살 많은 사람이였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소위 말하는 엄친아 언니였는데
예비신랑이 그 언니를 더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요.
1년정도 사귀다가 그 언니가 해외 유학을 가면서 강제로 두사람이 헤어지게 됐어요.
예비신랑은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그 언니가 거절한걸로 알아요.
그렇게 많이 슬퍼하다가 언니 떠나자마자 군대 지원을 했어요.
나름 친구들끼리 면회도 가고 휴가 나오면 만나기도 했지만
술만 마시면 언니 이름을 중얼거리곤 했었죠.
그 언니가 참 많이 부럽고 참 많이 질투 났어요.
그리고 말년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제가 또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아빠에게 버림 받았던 저이기에 슬프지 않을줄 알았는데 슬펐어요.
그때 예비신랑은 고맙게도 휴가를 모두 제 옆에서 써줬어요.
제가 나쁜 생각할까 겁난다고 휴가때마다 찾아와서 오히려 저한테 맛있는거 사주고 노래방도 데려가주고
그냥 친구니까 베푼 호의였겠지만 저한테는 마음이 커지는 또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동안 좋아하면서도 고백 못했어요.
차라리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고백했으면 좀 나았을텐데
마음이 커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거절 당하면 돌이킬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했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제가 취직하고 친구들도 취직을 하면서
다같이 오랜만에 만나 술을 먹는데 한 친구가 그러네요.
너 언제 고백할거야? 대체 몇년째 짝사랑만 하니?
저는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겼는데 같은 무리의 친구들은 제가 짝사랑하는걸 다 알고 있었대요.
술도 취했겠다, 친구들도 등 떠밀어주길래 얼떨결에 준비도 안하고 고백하게 됐어요.
친구인줄 알았다고 선을 긋길래 구질구질하게 또 고백 못들은걸로 해주고 원래대로 친구처럼 지내면 안되겠냐 했어요.
저보고 저만 괜찮으면 그래도 상관없다 했어요.
그렇게 다시 친구가 됐는데 한번 고백하고 나니 마음이 울렁거리고 접어지지 않아서 너무 괴로웠어요.
우리아버지 기일때 저를 찾아와서 같이 산소도 가주고,
제 생일엔 12시 땡치자마자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선물을 보내주고, 혼자 있으면 더 외롭다고 우리 엄마 생신도 챙겨주고,
비오는날 연락도 안하고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오고,
갑자기 집앞에 찾아오기도 하고,
저한테는 단순한 친구로서의 호의라고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다시 한번 날잡고 제대로 고백을 했는데
저한테 사실 그언니 아직도 못 잊었다고, 아직도 좋아한다고 했고
저는 떠난 사람은 잊으면 안되냐고,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연애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가 우리 나이 26살 봄이였고 제 짝사랑이 10년 되는 해였네요.
평범한 다른 연인들처럼 같이 시간 보냈어요.
2년 넘는 시간동안 정말 단 한번도 싸운적 없고 서로의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며 추억도 만들고 프로포즈도 받고 결혼준비하는 과정까지 모두 다 즐거웠어요.
근데 그 언니가 돌아온거죠.
돌아온거면 그냥 조용히 들어오지
예비신랑한테 sns로 메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 중 일부가
[너 아직도 나 못잊었어?]
예비신랑은 제 눈치를 보다가 답장하지 않고 지웠어요.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다고 저한테 괜찮다고 해줬어요.
그 말을 믿었는데 그 후로도 그 언니는 계속해서 예비신랑한테 연락했고
그 언니 친구들 또한 예비신랑한테 자꾸만 그언니가 예비신랑을 못 잊어서 돌아온것처럼 얘기했어요.
예비신랑이 예전엔 평범한 대학생이였지만 지금은 직업도 좋고 돈도 잘 버니까 달라보이나봐요.
이렇게 멋지게 자랄줄 몰랐다며 또 연락을 했길래 제가 화를 냈어요.
우리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고, 앞으로 연락 안했으면 좋겠다고 그 언니한테 직접 연락을 했더니
그 언니는 답장 없고 그 언니 친구들이 저보고 불여우래요.
친구인척 옆에서 맴돌다가 그 언니 유학가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달려든게 아니냬요.
상대할 가치가 없어서 답장을 안했는데 자기들끼리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뭐라고 하든 예비신랑만 태도 확실히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한테는 저도 아는 친구랑 밥 먹는다 해놓고 그 언니를 만나러 갔네요.
그 아는 친구도 저에게 예비신랑이랑 둘이 밥 먹는다고 거짓말을 쳤는데
알고봤더니 그 친구는 자가격리중이고, 그 언니를 만나러 간거였어요.
그 만남이 한번이면 이해했을지도 몰라요.
근데 제가 아는것만 4번이에요.
그 언니랑 단둘이 4번 이상을 만났어요.
저한테 비밀로 하고 주고받은 연락은 저에게 들킬까봐 싹 지우고
웃긴게 이 사실을 제가 예비신랑의 여동생을 통해 들었다는거네요.
아가씨가 저한테 전화와서 자기 오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거 같다고 얘기할 정도면 얼마나 두사람이 자주 연락하고 만난건지
다 알게 된 이후
예비신랑은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만났다고 고백했어요.
자기한테는 첫 연애였고 짧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이라
연락이 오니까 차마 모르는척 할수 없었다고,
그런 마음으로 결혼하는거보다는 결혼전에 확실히 감정 정리하고
저에게도 떳떳하게 옆에 서고 싶었다고 해요.
감정 정리라는게 꼭 만나서 해야하는건가요?
그리고 그 감정 정리가 안되면 저를 정리하려고 했던거 아닌가요?
제가 따지고 드니까 아무말 못해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2주간 정말 많이 고민하는 그 와중에 또 두사람이 만났대요.
그 언니가 일방적으로 찾아온건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결국 오늘 아침에 파혼하자고, 예식장 위약금은 니가 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집 앞에 찾아와서 한참을 문 두드리다가 돌아갔네요.
마음 약해질까봐 카톡도 전화도 차단해놨어요.
파혼 얘기는 제가 먼저 꺼냈지만 사실상 제가 당한거죠.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는데
20대를 모두 그 사람만 바라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 예쁜 시간들이 모두 허사가 됐다는것도 슬프지만
그 사람이 없는 제 모습을 상상할수 없어
미래가 더 두려운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만날수 있을지
또 결혼은 할수 있을지
솔직히 많이 무섭습니다.
막막해요. 친구들한테는 또 어떻게 말해야할지
친구들과 예전처럼 지낼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회사에도 드디어 결혼한다고 석달전부터 설레발 다 쳐놨는데
뭐라고 말해야하나요.
딸내미 시집간다고, 아빠가 없어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좋아하던,
오빠들보다 예비신랑을 더 좋아하던
우리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