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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생활 이야기 Fin.(나만의 회상)

쥰세이 |2004.03.03 03:16
조회 1,952 |추천 0

※ 역주: [독일] 유학생활 이야기 마지막 편입니다. ^-^;;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틀림없는 응급실이었다.
간호원의 물음에 대답하려 했지만 좀처럼 입이 열리지 않는다. 속은 쓰리고 온몸은
마비가 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귀는 멍해져 온다.
= #&$%^@#..?
간호원의 알 수 없는 물음만 계속 된다. 정신이 혼미해져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한참 시간이 흘러 눈을 떴을 때는 이튿날 이른 아침이었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상체를 일으켜 정신을 수습했다. 팔뚝에 링거 주사가 꽂혀있다.
그 순간 치료비 걱정이 앞섰다. 곧 담당의사와 간호사가 온다.
= 괜찮아요? 여권을 보니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됐더군요. 연락할 사람은 있나요?
- 없습니다. 그런데 치료비는 어떻게 ...?
= 아~! 그건 지금 당장 염려할 필요 없어요.
- 제가 아직 의료보험 가입이 안 되어 있어요. 비용이 걱정되는데 ..., 얼마죠?
= ....,
- 그럼 여행자-보험 혜택은 가능할까요?
= 그건 시일이 한참 걸립니다. 그리고 환자께서 귀국한 뒤에 지급되는 거라, 지금 당장 지불이

  어려우면, 퇴원 후에 청구서를 집으로 발송하겠습니다.
여권사본과 함께 간단한 약식문서에 주소를 적고 서명을 한 후 퇴원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배가 몹시 고파왔다.
- 이렇게 살려고 온 게 아닌데 ...,
또 눈물이 나온다.
방문을 열자 온통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질러진 술병들을 하나 둘 집어 박스에 담으며 대충 방 청소를 마치고, 멍하니
너부러진 침대에 누워 천장만 주시했다.
- 야! 한○○!! 너 뭐 하러 이 먼 곳까지 왔니? 차라리 짐 싸들고 돌아가.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었다.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빠져 겉잡을 수 없는 분노가 올랐다.
-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까짓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
나를 향한 자책이 끝내는 오기로 발동됐다.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다음 날 학원에 나가니, 임군이 걱정스런 시선을 던지며 내게 다가온다.
= 형, 며칠 안보여 걱정했잖아요. 무슨 일 있었어요?
- 아니. 그냥 어딜 좀 다녀왔어.
= 얼굴이 말이 아니네? 혈색이 안 좋아.
  참, 나 오늘 전화 신청하러 갈 건데 같이 안 갈래요?
- 전화? 글쎄? 말 나온 김에 의료보험 신청하러 같이 가 줄래?
급작스런 병원입원을 경험을 한 터라 보험가입에 신경 쓰였다.
= 의료보험? 아직 안 들었어요? 내가 아는 보험회사에 들면 되겠네. 싸거든요. 가요!
강의를 마치고 그와 함께 전화를 신청하러 갔다. 여권과 거주증명서가 필요했다.
신청을 마치고 보험가입과 전화기를 사러 시내로 향했다. 간만에 쇼핑이었다.
곁에서 임군의 즐거워하는 밝은 표정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 △△아, 넌 강사가 하는 말 다 알아들을 수 있냐?
= 아뇨, 전공이 말로만 독문학이지 사실 나도 60% 정도 밖에 못 알아들어요.
- 난 그 정도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까 보험직원이랑 대화 나누는 걸 보니
  너 참 대단하구나.
= 형, 너무 욕심부리지 마.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던데 ...,
그랬다. 그의 말대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Step By Step이다.
우리는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 그래. 방법을 수정해야 한다.
혼자 집구석에 쳐 박혀서 라디오나 듣는 것만으로는 발전이 없다. 부딪치자.
저들(독일사람)과 부딪쳐야 한다. 우선 귀부터 뚫어야 한다. 책만 뚫어지게 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럴 거면 독일까지 나와 있을 이유가 없다.
우선 주변 이웃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기 위해 아침  조깅을 시작했다. 동네 한바퀴를
뛰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인사말을 건넸다.
- 안녕하세요?
= 안녕.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군요?
- 즐거운 하루 되세요.
= 고맙습니다. 당신도 ...,
일상적인 흔한 말이지만 들렸다. 가만히 집중해서 듣지 않았는데도 분명히 들렸다.
이건 놀라운 진전이었다. 흐뭇했다.
- 아싸~! 그래!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하는 거야. 할 수 있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시장에 갈 때도, 쇼핑을 하러 갈 때도 가격흥정 때문에 일부러 말을 건넸다.
- 제발 조금만 깎아 주세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부탁합니다.
난색을 표하더니, 안 된다는 말로 돌아온다. 내 말을 상대방이 알아들었다.
- 오늘은 많이 파셨나요?
= 네? (발음이 시원찮았는지 재차 묻는다)
- 오늘 많이 파셨냐구요.
= 아~네. 그럭저럭 팔리긴 하네요. 고맙습니다.
- 별 말씀을.
입이 열린다. 외국어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말이란 입부터 열려야 한다.
그걸 난 직접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듣기는 다소 무리지만, 말을 건네는데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 수강신청 등록기간(3개월마다)이 왔다.
비자도 만기가 되어간다. 이대로 더 있느냐 한국으로 돌아가느냐의 결정을 해야 한다.

 

(관광)비자만기 10여일쯤 남겼다.
한참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계속 공부를 하느냐 아니면 그냥 유학경험으로 삼고 한국으로
돌아가느냐의 선택!! 돈은 점점 떨어져가고, 이대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터에 계속 남아
공부를 고집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계속 전진하느냐 아니면 여기서 중단하느냐!

 

임군에게 전화가 온다.
= 형, 마침 집에 있었네? 수강신청 할 거예요?
- 글쎄다. 안 그래도 지금 생각 중이야. 넌 어쩔 건데?
= 어차피 난 1년 생각하고 나왔으니 계속 수강하려고요.
- 난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 가능하면 계속 공부하세요. 다른(한국) 사람들은 안되겠는지 귀국하겠대요. 형까지 가면
  나 혼자 어떻게 해?
나만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다들 힘들었나 보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난 임군 외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별반 관심이 없었다.
- 그건 그렇고, 우리 그간 술 한잔 못 했네? 어때? 오늘 우리 집으로 올래?
= 정말이요? 그럼 우리 처음으로 한따까리 해 볼까나? 얘들 다 데리고 갈게요.
- 누굴 데려온다고? 야, 그냥 너 혼자 와라. 별로 친하지도 않고 내키지 않아.
= 형, 그거 아슈? 우리들끼리 하는 말인데, 형 별명도 있어. ET(외계인)라고 부르거든.
- ET?
= 맨날 강의 끝나면 집에 가고, 학원에 나오면 말도 않고, 책만 보고해서 우리가 붙인 별명
  예요. 오늘 얘들 한따까리 하면서 오해를 풀자구. OK?
원치 않던 상황이었지만 거절할 명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동안 난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살았구나 했다.
음식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지만 텅하니 비워있었다. 마치 날 비웃기라고 하듯 윙윙~
소리만 울려댈 뿐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부리나케 마트로 달렸다. 지갑을 열어 보니 10~20DM짜리 몇 장과 동전 몇 닢뿐이었다.
보이는 데로 와인과 맥주, 치즈 그리고 칠면조 다리(포장), 과일 등등을 샀다.
안주를 만들고 있는데 차임벨이 울린다.
= 형, 많이 늦었나? 4명 소집완료! 문 열어 주쇼.
- 어서 오세요. 그 동안 통성명도 못하고 미안했습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로 안내를 했다. 모두들 왁자지껄하며 자리에 앉는다.
그들 손에는 뿌랭이를 뽑을 심산인 듯 값싼 위스키와 과일 등이 들려 있었다.
어색해 하는 날 무마시키려는 듯, 임군은 서둘러 통성명을 하자며 부산하게 떠들어댄다.
= 자자자.. 여기 집중! 여기 계신 형은 한○○!, 여기는 우리들의 영원한 Pretty걸 그리고
  또 여기는 우리의 영원한 귀염둥이 Y누나, 또 여기는 ...,
우리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간만에 어색함을 풀 수 있었다.
한국에서 뭘 하다 왔으며, 앞으로 뭘 공부하고 싶다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나와 임군
과 Y(현재 Bonn대학 박사과정 중, 두 아이의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는 곧 한국으로 돌아간
단다. 그들이 돌아가던 말던 나와 상관없었다. 
모처럼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술을 마시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술자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임군이 살짝 귓속말을 하며 베란다로 나가자고 한다.
= 형, Y누나 말예요. 형이랑 동갑이거든요. 전부터 자꾸 형이랑 술자리 좀 갖자고 했거든.
- 나랑? 왜?
= 관심 있나 보지 뭐.
- 그러니까 왜 나한테 관심을 갖냐고. 너도 내 사정 알겠지만, 관심 없다.
사람을 사귈 만큼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임군의 말을 듣고 다시 자리로 돌아
오니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색했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모두들 곤드레만드레 여기저기 퍼져 잠에 푹 빠져 있었다. 화장실로
가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꾸만 P의 얼굴과 방에서 자고 있는 Y의 얼굴이 교차된다.
-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정신차려라. 한○○!!

 

결국 3개월 더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하고 비자신청을 하러 외국인관리소로 향했다.
(학원등록증과 의료보험증, 거주지증명서 등등 지참)
이제는 관광비자가 아닌, 정식 6개월 짜리 비자였다.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싸이렌이다.
새로 시작되는 학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다시 치른 시험!! 임군, Y양과 함께 같은 중급-B반!!
(신규반은 C, 시험성적에 준하여 다음코스를 밟는 B, 고급반에서 누락자는 A)
우리는 자칭 K-3(Korean-3)그룹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Study-그룹인 셈이다.
서로 보완하자는 취지였다. 우리는 늘 강의가 끝나면, 어김없이 모여 그 날 강의를 복습하며
대화(독일어)를 나눴다.
= 이번 주말에 어디 놀러 가지 않을래요?
임군의 건의였다.
= 각자 500DM만 준비하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 어딜 가려고?
= 뮌헨이요. 호프축제가 있잖아요. 거기 가요.
Y와 나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머뭇거렸다.
우리들의 망설이는 모습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임군이 입을 연다.
= 사실 공부도 공부지만, 우리가 그간 공부한 독일어도 시험해 볼 겸 놀러 가요. OK?
배낭여행 때 가 본적이 있던 뮌헨. 다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다.

 

============================================================== (끝)

 

[추신] 생각보다 적잖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더군요. 이제 그만 쓸까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하이델베르크 건축학부 시절 부터 다시 쓰겠습니다.
       그 동안 관심을 갖고 쪽지와 메일을 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이미 쪽지와 메일로 알려드린 바, 저는 건축과 무역 외에는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일일이 대신할 수 있는 분을 소개해 드렸으니,

       그 분들과 정보를 교환하시면 될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행복하세요. ^-^;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건강하십시오.

 

※ 오늘의 말씀 - 창세기 12:1~3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나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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