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분문에 앞서 모바일로 작성하는 글이라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올해 서른, 두 달후면 서른 하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입니다.
이제 막 씻고 누운 참인데 조용한 집안에서 혼자있으려니 오늘 있었던 일때문인지 기분이 적적하여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긴 군생활을 하는 바람에 이제 2년 남짓 되었네요.
토요일 아침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저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었습니다.
받아보니 5년 전 전역했던 선임의 형수님이더라구요.
정말 오래간만의 전화라 반갑게 인사했는데 형수님 목소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선임은 잘 지내냐는 가벼운 안부에 한동안 대답을 못하시더라구요.
알고 봤더니 사고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선임이 전역했을 당시는 결혼을 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 그 사이 연락이 없다시피 한 저는 선임이 죽은 사실을 이때 알게 되었습니다.
같이 군생활 할 당시에 꽤 친하게 지내고 사석에선 형동생 하던 사이였던지라 형수님과도 안면이 깊었었습니다.
저에게 전화한 이유는 아마 이때문인듯 싶었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형수님이 어렵게 입을 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연락한통 없다가 갑작스레 이런 얘기를 꺼내어 정말 염치없고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없냐 하시더군요.
이때 저는 별 생각없이 알겠다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형수님께선 혹시 은별(가명입니다.)이에게 한 번만 아빠로써 놀아줄 수 없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여쭤보니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수송간부로 군생활을 했던 선임은 전역 이후에도 관련직종에 취업할거라는 얘기를 저에게 종종 했었는데 본인의 말처럼 전역 후에 버스기사로 취직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은별이가 첫 돌이 오기도 전에 사고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긴 시간동안 형수임이 홀로 얼마나 힘드셨을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또 앞으로 이겨내야할 시간과 역경도 만만치 않으시겠죠.
문제는 은별이가 3살이 되던 해에 생겼다고 합니다.
유난히 금술이 좋았던 선임 내외이시기고 했고 아이를 키우고 계신 어머니이시기도 하지만 형수님은 저랑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십니다.
서른 초반의 나이에 그 모든걸 홀로 감당하기 어려우셨겠죠.
그래서 형수님은 집에 걸려있는 선임의 사진을 차마 치워버리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언젠간 치워야지라고 하면서도 도저히 그걸 직접 손으로 떼어낼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은별이는 항상 군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아빠를 사진을 통해 봐왔습니다.
은별이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주 어릴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어제 저녁 은별이가 이렇게 얘기하더랍니다.
아빠는 우릴 버린거냐고.
형수님은 언젠가는 말해줘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린 은별이가 입을 상처가 걱정되어, 또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선임이 죽었다는 얘기를 여태껏 못했다고 합니다.
항상 생일날마다 군복입은 아빠 사진을 보여주며 바다 건너 멀리 우리를 위해 싸우러 갔다고 둘러대었다더군요.
간혹 티비에 해외 파병간 우리나라 국군이 나올때면 저 어딘가에 아빠가 있다는 생각에 은별이는 티비에 꼭 붙어있었다고 얘기하시며 엄청 우셨습니다.
오늘 10월 11일이 은별이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은별이는 아빠가 우리를 버린거냐고 자신의 엄마에게 얘기한 직후 오늘 아빠를 보지 못하면 자신은 영원히 아빠를 미워할거라고 얘기했다네요.
그러면서 저에게 오늘 하루만 은별이 아빠가 되어줄 수 없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전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당장 낼모레 초등학교도 들어갈텐데 언제까지 숨길 수 없지 않내고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아빠역할을 대신 해주어봤자 오히려 은별이에게 몹쓸짓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자 형수님이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내년이 가기 전에 은별이에게 얘기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엄마와 딸을 버린 아빠로 기억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전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힘들고 비참했을 형수님의 심정을 도무지 헤아리기가 힘들었습니다.
숨죽여 끅끅 거리시는 형수님의 간절한 부탁을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알겠다 했습니다.
저는 은별이를 만날 때 군복을 입고 만나겠다 했습니다.
자신의 아빠가 아직까지 군인인 줄 아는 은별이에게 제가 최선의 아빠가 되어주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한지 2년이 다되었지만 다행히도 정말 오래간만에 꺼내입은 군복이 몸에 잘 맞았습니다.
어색한 손놀림으로 전투화끈을 묶으면서도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들었지만 제 어렸을 적을 떠올리며 애써 집을 나섰습니다.
아빠와의 추억이 단 하나도 없는 아이가 되게 할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오늘 아침 저는 은별이를 만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오늘 단 하루만큼은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기왕 하기로 한거 제대로 해내서 정말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겠다고 다짐을 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손을 꼭 잡고 있는 은별이를 보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떠나간 선임 생각과 홀로 힘들어했을 형수님에 대한 생각 그리고 태어나 아빠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은별이 생각에 정말로 잃어버렸던 딸을 만난 아빠처럼 울어버렸습니다.
제가 주책맞게 울어버리자 형수님도 흐느껴 우셨고 처음엔 안절부절하며 서있던 은별이도 자신의 엄마가 우니 대번에 울어버리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울던 은별이가 갑작스럽게 눈물이 잔뜩 흐르는 얼굴로 저에게 뛰어 안겨왔고 저는 그 잠깐의 순간 정말로 은별이의 아빠가 되어 안아주었습니다.
그때 제 입에선 미안하다는 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는데 사실 지금도 그때의 제 심정이 어땠는지는 말로 쉽게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찌되었던 그렇게 은별이를 만난 이후 저는 정말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빠가 되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은별이는 저랑 있는 시간 내내 왜 자신을 보러오지 않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더군요.
그렇게 하루 종일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생일파티 까지 잘 마무리했습니다.
형수님이 선임의 사진을 치워놓았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 걸려 있더군요.
천만 다행히 저와 선임 둘 다 안경을 썼고 무쌍에 꽤나 비슷하게 생긴터라 은별이는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했던 건 제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은별이가 보일 반응이었습니다.
하루종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나 하는 걱정이 가득했었는데 막상 제가 돌아가려 하자 예상과는 다르게 큰 투정을 부리지 않더군요.
하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였습니다.
제가 문을 열자 은별이가 입술을 꼭 깨물며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꾹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필사적으로 참아내는 모습에 저까지 눈물이 나더군요..
그러면서 은별이는 목이 한참 잠긴 목소리로 언제 와? 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물음에 저도 모르게 형수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아니니다를까 형수님도 입을 가리시고 울고 계시더군요.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은별이는 제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아이보다 의젓하고 이쁜 아이인데 형수님과 은별이가 앞으로 겪어야할 힘든 시간이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올려다보며 울음을 참는 은별이를 보고 있자니 처음으로 이 부탁을 들어준 것이 후회가 되더군요.
제가 느낀 슬픈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은별이에게 또 보러 오겠다 약속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전 아빠가 우리 은별이 보러 꼭 다시 올게라고 대답했고 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가 사준 곰인형을 끌어안는 은별이 모습을 뒤로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집에 와서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기분이 이상합니다.
마치 온 세상이 찐득한 무언가에 짓눌려 저까지 푹 가라앉혀진 기분입니다.
은별이는 다시는 오지 않을 아빠를 기다리고 있겠죠.
아마 올해가 가기 전에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거구요.
살을 좀 빼야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우연히라도 마주친다면 은별이가 저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