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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불어대는 싸늘한 겨울바람에 시커먼 어둠까지 찾아오자 어느 거리의 적막(寂寞)함
은 더해갔다.
물론 평소엔 그렇게 많던 어느 공원의 벤치에 자리잡던 그 많던 사람들도 찾아볼 수 없었
다.
아니,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이 공원을 가로지르는 산책로에 마주보며 비장(悲壯)하게 서있다.
그 가운데 그들의 미세하게나마 벌어진 입술사이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그 남자가 잠시나마 딱딱한 인상을 풀고 깊은 한 숨을 들이쉬고 내 쉬자 입김은 더
새하얗게 새어나왔다.
그리고 이윽고 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이러니?"
"잘 알잖아? 제발 똑같은 말 좀 되풀이하게 하지 말래?"
그 여자는 귀찮은 듯 투덜거리는 목소리였다.
그런 그 여자의 태도에 그 남자는 발끈한 듯 언성이 높아졌다.
"무슨 말?! 무슨 말이냐고?!"
그때 허공에서 하얀 눈송이들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들조차 반길 여력이나 여유 따윈 없었다.
그 여자는 그 남자의 말투와는 달리 나직하게나마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묻니?... 좋아, 너가 그 말을 그렇게 듣고 싶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줄
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장(悲壯)하게 그 남자를 향한 그 여자의 시선은 시커먼 하늘에서 떨
어지는 새하얀 눈송이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만 헤어지자..."
그녀의 말이 떨어지지 무섭게 언성 높은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아니! 절대로 그럴 순 없어!"
그리고 그 남자는 그 여자의 양쪽 어깨를 붙잡으며 그 여자의 결심에 만류라도 하듯 그 남
자의 목소리 또한 불현듯 나직해졌다.
"이러지마. 이제 모든 게 다 끝났으니깐 우리 행복해 질 수 있잖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사람은 없잖아. 물론 지난 일들은 내가 미안했어. 하지만 내가 말했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 제발... 제발... 날 떠난다고... 헤어지자고 그런 말은 하지마..."
그 남자의 절규 섞인 만류에도 그 여자의 심경(心境)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듯 했다.
그 여자는 무심히 자신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있는 그 남자의 팔에서 벗어나려 한 걸음 물
러섰다.
결국 그 남자의 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다시 그녀의 축 늘어진 어깨를 붙잡으려 다가가자 그 여자는 또 다시 벗어나기
위해 또 다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만 하자. 난, 도저히 널 이해할 수 없어.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이젠 너가 날 정말
사랑한다는 것조차 의심스러워. 우리 그냥..."
"뭐?! 너, 지금 금방 뭐라고 그랬어?! 뭐라고 그랬냐고?!"
일순 그 남자의 언성 높인 목소리가 들여왔고 좀 전의 처연했던 그 남자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분노와 그 여자에 대한 증오만이 얼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순간 그녀까지 언성을 높이며 바닥으로 떨구었던 시선을 그 남자에게 던졌다.
"또 다시 말해줘야 하니?! 난, 너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제 하고 싶지도 않
다고! 더 이상 널 만나고 싶지 않아! 차라리 우리가... 아니, 너와 내가 몰랐던 그때로 돌아
갔으면 좋겠어! 됐니?! 됐어?!"
어느새 그 남자의 손은 허공으로 향했고 그 여자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기 전에 이미 그 남
자의 손은 그 여자의 뺨을 지나쳤다.
그 여자는 맞은 고통으로 인한 쓰라림 보단 너무 황당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 여자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이내 투명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 남자는 자신이 한 행동에 뒤늦은 후회를 하며 그 여자에게 다가가 보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완강히 밀쳐내곤 울먹이며 소리쳤다.
"저리가! 내 몸에 손대지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남자는 외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그 여자에게 건네주지만 그 남자의 손을 무참
히 뿌리칠 뿐이니 그 손수건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는 격앙된 심정과 더불어 계속 되었다.
"미안?!... 미안하다면 다 해결되니?!... 넌 뭐든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 인줄 알지?! 날
사랑한다면서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한테 이런 짓을 하면서도 너가 정말 날 사랑
했다고... 여태 그 모든 것들이 날 위해 그랬다고 말할 수 있어?!"
그 남자는 그 여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또 다시 의심하자 잠시 누그러졌던 부아는 다시
금세 부풀어올랐다.
"너가 먼저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널 사랑했는데?! 어떻게 내
사랑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니?! 그러면 넌 날 진심으로 사랑했니? 너의 잘난 친구
들은 물론 너 가족들까지 날 무시하기 쉽상이고 언제 내게 확신이라도 심어 준 적 있니?!
언제 너가 날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적 있냐고?!"
"그럼 여태 너와 내가 만났던 것들은 뭔데?! 아무 것도 아니니?! 그럼 우리가 함께 한 것들
은 모조리 시간낭비였니?!"
그 여자의 말에 비웃기라도 하듯 그 남자는 코방귀까지 끼며 말을 이었다.
"흥! 우리가 함께 한 것들이라고?! 넌, 나 만나고 헤어지면 오늘 하루가 참 즐거웠다며 흐뭇
하게 있을 때 난 뭐 했는지 알아?! 나 역시 너처럼 그따위 여운이나 남기며 실실거리고 있
었는지 알아?! 매일 내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너에 대한 안 좋은 소문 때문에 얼마나 힘들
었는지 아니?! 난 매일 너에 대한 안 좋은 소문 때문에 난 매일같이 친구들이며 부모님한테
해명해야 했어. 난 한사코 그것들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왜?! 널 믿고 사랑했으니깐!
그런 내 마음을 모르겠니?! 그런데 이제 모든 진실이 밝혀졌고,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 텐
데 너는 내 친구들의 존재까지는 물론 너에 대한 내 사랑조차도 의심하고 헤어지자니... 이
게 말이 되는 소리니?!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니?!"
그 남자의 눈시울에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는 바람에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맺혀 있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그렇게 뿌리치던 그 남자의 한 손을 자신이 먼저 살포시 잡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을 거두곤 마치 사정(事情)이라도
하듯 그 여자의 구슬프게나마 잠시 유지했던 침묵을 버렸다.
"그래, 너가 날 사랑한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한 건 미안해. 그리고 그렇게 좋지 않은
소문 따위도 감싸준 것도 고마워. 그런데... 너가 날 정말 좋아한다면... 너가 날 정말 사랑한
다면... 날 이대로 보내 줘. 보내주는 것도 사랑이라잖니? 응? 제발 부탁이야... 우리 이대로
헤어지자."
그 남자는 도저히 그 여자의 말에 수긍할 수 없는 듯 했다.
이번엔 그 남자가 그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그럴 수 없어. 이대로 널 보내기 싫어. 널 내 곁에 두고 싶어."
그 여자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싫어... 너가 날 잡아둔다고 해도 그건 껍데기일 뿐이야. 미안해... 나, 너무 지쳤어... 우리
그만 헤어져..."
그 여자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곤 자신의 눈망울에 아직도 글썽이고 있는 눈물
의 잔재(殘滓)까지 쓸어 넘겼다.
그리고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엔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래... 미안해... 먼저 갈게..."
그 여자는 횅하니 등을 돌리곤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그 남자에게서 멀어졌다.
허나 그 남자는 그저 고개만 떨굴 뿐, 어떠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그 자신이 그 여자를 향한 사랑이 정말 진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함이 당연했
다.
그러니 그 여자의 말대로... 그 여자의 원(願)대로... 그 여자를 그 남자, 그 자신에게서 떠나
보내는 것만이 그래도 그 여자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었다.
하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의 열정에 재빨리 고개를 들어보지만 그 여
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가 지나간 발자국이라도 찾고자 바닥을 내려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은 바
닥에 쌓이기보다 녹기 바쁘니 발자국은 물론 그 여자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
다.
자연스레 한숨만이 터져 나왔고 그 한숨은 새하얀 입김이 되어 추운 겨울밤 하늘로 피어올
랐다.
결국 그 남자 역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동시에 혹시나 그 여자가 다시 되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그 남자의 발걸음을 잡아두었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보지만 역시 그 생각은 망상(妄想)이었다.
그 남자는 순간의 환멸(幻滅)에 다시 등을 돌리며 침울한 모습으로 다시 발걸음 했다.
그렇게,
함께 한 추억들은 잠시 뒤로한 채 아픔과 슬픔이란 상처와 미련(未練)만을 남긴 채...
두 남녀는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