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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는 아이한테 마음이 더 가는 유치원 선생님입니다.

ㅇㅇ |2021.10.22 19:41
조회 179,115 |추천 2,674
어릴적 저는 부모님 이혼으로 밝던 성격에서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했어요.
엄마랑 떨어져 유치원 가는걸 너무 힘들어했고 그렇게 간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는건 너무 당연했죠.

선생님들도 저를 신경 안썼어요.
조용하고 말 없고 얌전하고 착하다, 원아일기도 그렇게만 써주셨어요.

그러다가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는데 되게 젊어서 언니같은 느낌이였어요.
혼자 있는 저한테 늘 뭐하고 있냐고 물어봐주고, 낯가려서 대답도 잘 못하는 저였는데 제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할때면 제 옆에 딱 붙어서 귀를 기울여주시곤 하셨죠.

가끔 낮잠 시간에 제가 잠을 안자면 저만 따로 불러서 동화책도 읽어주시고 둘만의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낮에 졸린 눈 비벼가며 잠 안오는척 선생님 곁을 맴돌곤 했죠.

지금은 알아요. 선생님이 그때 해야할 일이 많았을텐데 저한테 짜증 한번 안내고 저를 챙겨주셨다는것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유치원에서 소풍을 갔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친구도 없다보니 뒤쳐지게 됐고 조용히 따라 걷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지갑을 떨어뜨리는걸 보고 주워드리게 됐어요.

아주머니가 참 착한 아이라고 칭찬해주셨는데 이 모습을 선생님과 친구들이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던거 같아요.

그래서 막 두리번 거리는데 그 선생님이 저한테 달려오더니 저를 번쩍 안아들고는 "우리 ㅇㅇ이!!! 어쩜 이렇게 착하고 기특할까!! 우리 ㅇㅇ이가 지갑 찾아준거지? 정말 착하다! 선생님 너무 기쁘다!"
하면서 큰 목소리로 얘기해주셨어요.

조금 창피하긴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도 칭찬해주시고 친구들도 잘했다고 해줘서 몇날 며칠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던게 기억에 남네요.

그 선생님한테 고마웠던 엄마는 선생님께 우리 딸이 집에와서도 선생님 얘기를 한다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선생님은 하원하는 시간에 저를 따로 불러서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저한테 정말 고맙다고, ㅇㅇ이같이 마음 착한 친구가 있어서 선생님이 너무 행복하다고 그렇게 말해주셨는데 그때 선생님 얼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 나는거 같아요.


그렇게 20년 가까이 흐르고 이제는 제가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네요.

아이들은 다 똑같이 예뻐요. 조잘조잘 떠들고 먹는 입도 예쁘고 작은 손도 예쁘고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도 예쁘고, 물론 화나고 힘든 일도 분명히 있지만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아요.

다만 , 혼자있는 아이한테 신경이 조금 더 쓰이긴 해요.

최근에 아빠와 둘이 사는 아이가 들어왔는데 그때의 저처럼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더라구요.

곁에 다가가면 저만치 멀어져버려 처음엔 저도 힘들었고 그 친구도 적응하는게 많이 힘들었을거에요.

그런데 옆에 앉아 웃으며 가만히 있기를 며칠 반복하니 먼저 말을 걸더라구요.

다른 아이들도 신경쓰면서도 종종 그 친구한테 다가가서 아는척을 해요.

지금은 제가 선생님들 중에 유일하게 그 친구랑 말하는 사람이 됐네요.

저한테 소근소근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는데 자기 아빠가 욕실에서 넘어진 얘기, 코고는 흉내까지 살짝 내는데 그게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웃었어요.

그 친구를 중심으로 게임도 하다보니 다른 아이들도 그 친구한테 먼저 다가가고 그 친구도 거절은 안하더라구요.

처음엔 싫다고 도망다녔으니 장족의 발전이죠?

한번은 길가의 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길래 꽃 좋아해? 했더니 "눈으로 보는건 좋아해요~ 꺾으면 안되니까~" 하는데 마음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ㅎㅎ

아직 친해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거 같지만 바램이 있다면... 그때 저의 선생님이 제 기억속에 남는것처럼, 저 역시 따뜻한 기억의 한편으로 남고싶어요.

떠올렸을때 그 선생님 참 좋았지~ 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다른 아이들한테도 마찬가지죠^^

부족한게 많은 선생님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하루하루 성장할 수 있다는게 참 행복한 일이다 싶어요.

천사처럼 예쁜 아이들과 함께라 너무 행복한 선생님의 주저리였습니다~~^^

추천수2,674
반대수15
베플ㅇㅇ|2021.10.22 19:48
그 분만큼 멋진 선생님이 되셨네요 앞으로도 좋은 일들 많길 바래요
베플ㅇㅈㅁㅁ|2021.10.23 05:44
글을 읽는데 .. 눈물이ㅠㅠ 저도 아이 키우는 학부모로써 큰아이가 어린이집 학대가 잇엇던적이 잇어서 참 이런분 만나는 것도 복인것같아요 선생님 응원합니다 아이 하나하나에게 따듯한 눈빛과 관심 감사 드립니다
베플ㅇㅇ|2021.10.22 23:41
임신 중인데 제 아이가 선생님같은 분을 만나면 정말 큰 복일거 같아요~ 덕분에 마음이 훈훈해집니당
베플ㅇㅇ|2021.10.24 04:09
나는 대학생 때 알바로 학원에서 초등생반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사실 불법임 졸업자만 선생으로 써야함) 어느 날 뜬금없이 한 아이 학부모가 학원으로 전화와서는 난테 자기 딸 왜 신경 안 쓰냐고 딸이 집에와서 선생님은 자기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울고불고 했다고 소리소리를 지른 적이 있음 나도 어릴 때라 그저 황당했고 그 어머니의 태도에 화까지 났음 누구를 특별히 더 예뻐하거나 미워한 적이 맹세코 없었기에 더 화가 났음 나도 고작 20대초반 학생인 인간이라 그릇이 크지않아 그 애가 미웠음 근데 생각을 해보니 수업시간에 못 따라오거나 집중 못 하는 애들은 진도 버거워하지않게 수업시간에 한 번씩 더 봐주고 그에 비해 묵묵히 잘 하는 애들은 그저 흐뭇해한 게 문제 같았음 걔는 잘 따라오는 아이라 못 따라오는 애들 두세번 봐줄 때 한 번 보고 말았으니 아이 입장에서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 있었던 거임 선생님이 좋으니까 서러움도 생기는 거임 그 엄마가 괘씸했어도 내가 어릴 때 학대가정에서 큰지라 눈길 한 번 더 받고싶어서 수업 내내 나를 보고 있었을 그 아이의 마음이 맘 아파서 고의로 아이에게 못 됐게 하고 싶진 않았음 그 후엔 다들 양적으로 똑같이 봐주고 똑같이 칭찬해줬음 어느 날 그 아이가 공책에 한껏 치장해있는 예쁜 공주 그림을 그렸길래 넘 잘 그렸다 하니까 선생님 그린거예요 했음 그날 눈물 꾹꾹 참느라 수업이 힘들었음ㅋ 모든 아이들은 참 특별한 존재들임
베플2020|2021.10.23 19:48
글보고 울었어요 ㅠㅠㅠㅠ현 유치원선생님인데 저를 반성해보게 됐어요 애들한테 말한마디를 하더라도 귀찮은 투로 말하진 않았나 내 일에 신경쓰느라 아이들 상황을 잘 모르지 않았나..ㅠㅠㅠㅠ 월욜날 가면 애들한테 더 잘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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