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녘, 점점 어두워지는 방 안을 불도 켜지 않은 채 계속 누워있었다.
블라인드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깥 불빛들이 천장에 비치는게 마치 달빛이 일렁이는 밤바다 같다고 생각했나,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의 피아노 반주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천장을 바라보는데뭔가 이대로 쭈욱 잠기고있는듯한, 가라앉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니까 내가 보고있는 어스름한 푸른색의 천장은 내가 물에 가라앉으면서 수면을 바라보고있는 것 같은 기분. 그게 왜인지 울컥해져서 괜히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나갔다.
역에 내려서 만원버스를 타기 싫어 음악을 더 듣고싶다는 핑계로 걸어가는 다리 위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고슴도치가 있는 힘껏 자기 가시에 부드러운 것들을 잔뜩 치장해놓은 모습이 아닐까하고. (당시에는 구름같은 솜이 잔뜩 덮혀져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내 욕심으로 그렇게 온갖 것을 달고다니면서 무겁다고 징징대는 꼴이 참 꼴불견일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된걸까 아님 나도 모르게 스스로 그렇게 하고있는걸까.
태생이 모났으면서 둥글게 살려고 참 애써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렇게 둥글게 굴고있는것도 전혀 힘든줄 몰랐다. 아니 애초에 힘들다는 생각 자체가 없지 않았을까, 내가 둥근줄만 알았으니까. (실로 둥글었는데 이리저리 깎여서 모나졌을거라는 가정도 해본다.)
까칠한 원래의 내가 남들을 향해 한발짝 행동하고 한마디 뱉을 때는, 혹여나 이상하다고 생각할까봐, 꼬였다고 생각할까봐, 내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봐, 센스 없다고 생각할까봐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부드럽고 상냥한 단어와 어투를 고르느라 고군분투하고있다.
예전에는 말을 고를 필요도 없이 그냥 당연하게 나오는 부드러운 말과 행동들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아무렇지 않았던 그런 곰살맞은 행동과 언어들이 이제는 스스로가 역겹게 느껴져서 예전만큼 잘 안된다. 물론 내 진심이 우러나오는 때의 그런 표현들은 서슴없이 하는 편이다. 속으로는 세상 까칠한 표정을 하고있으면서 겉으로 상냥한 척 다정한척 웃고있는게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다. 모순적인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 너 진짜 별거 아닌데 되게 있어보이는척 한다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점이 뭘까
같은 생각, 같은 고민,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금방 에너지가 동나버린다는 점?
핸드폰이 내장 배터리의 완충용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마냥.
예전에는 동영상을 하루종일 봐도, 인터넷 검색을 몇시간을 해도 배터리가 그렇게까지 빨리 줄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뭐만했다하면 벌써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단편적인 일로 예를들자면
집에오면 스위치 내린것처럼 꺼지는 내 텐션이다.
스물일곱의 끝자락의 지금에도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말이 있다.
'집에 있을때 좀 웃고있어라 좀'
아빠의 말이었다.
나도 회사생활 잠깐 했다고 그렇게 말했던 아빠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루종일 밖에서 별별 사람들한테 시달리다 집에 돌아왔는데 애가 얼굴을 죽상을 하고있으면 힘이 안나시겠지. 모를 마음도 아니다. 여튼 그래서 웃기만 했었다. 내가 울면 왜 우는지 무슨일인지 물어봐주는게 아니라 우선 뭘 잘했냐고 다그치는게 먼저인 집이었으니까 웬만하면 잘 울지도 않았다. 20대 초반 대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아무생각없이 괜찮았다. 집에서 혼자 방에 틀어박히는 다른집 자식을 흉보는 엄마와 함께 걔는 왜그러냐면서 아주그냥 지멋대로라고 나도 같이 진심으로 흉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러고있다. 사람은 자기 상황이 되어보지못하면 절대 이해 못한다고 했었던가, 딱 내꼴 아냐. 지금의 내가 그때 내가 같이 흉봤던 그 사람을 감히 이해보자면 '아무런 방해없이 내 공간에 있을 시간이 필요했던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집에서까지 에너지 풀 충전하고 가족 눈치 살피면서 꾸역꾸역 거실에 나와있어야했던 내 지난날이 떠오르건 그때의 아무생각없이 발랄했던 내가 부러워서일까 아니면 내 감정을 제대로 마주할줄도 몰랐던 웃음상자속에 갖힌 어린 내가 안타까워져서일까.
중고등학교 시절,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없었다. 스무스하게 지나갔다고해야하나? 부모님도 나도 기억에 남는 나의 일탈행위는 없었다. 기껏해야 문 쾅 닫는 귀여운 반항정도. 문잠그는건 감히 상상도 못했다. 뭐만하면 문 벌컥벌컥 열고 딴짓하나 안하나 감시하는 부모님이었다. 눈에 반항기는 없다고해도 나름 감수성 짙었을 때였을텐데 제발 그러지좀 말아달라고 말할 줄도 몰랐다. 나는 항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딸 착한 딸이었으니까.
조금은 나쁜아이였어도 괜찮지않았을까. 조금은 실망시켰어도 괜찮지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이런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은 없었을텐데.
가족들과 거리를 두고싶어하는 나쁜딸이라는 죄악감을 덜고싶어서 하는 소리다.
2년간 본가에서 떨어져 지낸 사이에 머리가 쓸데없는 머리만 큰건지 아님 내 안에 단어하나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커버린건지, 짧다면 짧은 2년 사이에 홈 스윗 홈이어야할 집은 너무 갑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내 스스로도 어떻게 받아들여야될지 모르겠다.
이전 회사 퇴사 후 본가로 들어온 뒤에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있는 지금, 집을 제 2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서 오는게 아닐까 싶었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내 감정을 내 마음대로 표현하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숨막혔다. 혼자 살아보니 나는 기본 디폴트가 무표정이라는걸 깨달았다. 딱히 기분이 안좋아서 무표정인게 아닌데 내 이런 솔직한 감정표현이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눈치보이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죄스럽지만 이기적이게도 그거까지 신경쓰기에는 내가 이미 배터리가 꺼지기 직전이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아무것도아냐'이러고 방에 들어가는거다. 그러고는 집에왔는데도 가면을 또 쓰고있어야되는거야? 이런 울분이 터지는거다. 터질만해서 터진건지 단순히 내가 승질이 드러워져서 애먼 곳에서 터진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갑자기 터져나왔다. 사춘기도 아니고 20대 후반에 이런 감정이라니.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사춘기도 이런 사춘기가 있을수가 없다.
몇 안되는 가까운 지인들한테 요즘 사실 이러이러해서 집에가기 싫어라고 말했더니 돌아온 답이 다 똑같았다.
'독립해야겠네'
에휴
이런 건강하지 않은 정신상태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할까.
이런 정신상태를 가지고는 사람을 만나는거 자체가 상대한테 민폐인거같은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맘같이 되는게 뭐하나 없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할까.
너무 아득하다.
주절주절 쓰다보니 별의별 얘기를 다 하고있다.
답답해서 노트북 두드린거라 앞뒤 안맞고 정신없는 글 일수도 있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냐 다시는 안볼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얘기하는게 제일 속편한거.
누가 좀 읽어줬으면해서.
지금 내 상태는 정상인지 삐빅 비정상이라 정신상담을 받아보는게 나을지 너 그렇게 살면 안된다던지 원래 다 그러고 산다던지 뭐라고 얘기좀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