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미장원은 공식적으로는 1930년대의 오엽주라는 신여성이 일본에서 배워온 파마 위주의 미용기술을 이용하여 개업한 오엽주 미장원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엽주는 당시 화신상가안에 오엽주 미장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미장원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김은신이 지은 한국 최초 101장면이라는 책에 보면 이보다 훨씬 앞전에 경성 미용원 이라는 상호로 광고를 한 곳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보면 1920년 7월 29일자의 동아일보에는 다음과같은 광고가 게제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성 미용원은 얼굴을 곱게 하는 곳이올시다"로 되어 있다. :상호가 나와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영업을 목적으로 한것이 틀림 없고 분명 미용원이란 용어를 쓴것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미장원은 이곳이라 보는것이 타당하다.
다만 오엽주 미용실의 영업은 파마를 위주로한 그야말로 머리의 손질을 위주로한
영업이라고 한다면 경성 미용소는 광고문구에서 보듯 얼굴을 다듬는 즉 미용에 관한 영업을 위주로 한 것임을 알수가 있다. 요즈음의 피부관리실 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 오엽주 미용실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파마가 급속도로 유행 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한번 파마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쌀 두섬이라고 하는데 당시 농촌의 일반 노동자의 임금이 쌀 두되 정도 였다고 하니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이 간다.
고종황제의 단발령에 의한 남자들의 머리모양은 급속도로 변하였으나 여자들의 머리모양은 오랫동안 쪽머리를 유지 하여 왔었다. 그러므로 미장원에 드나드는 사람은 극 소수에 한정 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그 비용이 엄청 비쌌기 때문에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나 점차로 외국유학을 다녀오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신 여성들의 대명사로 파마 머리가 유행을 하자 급속도로 미장원들이 급증을 하였다.
출처 : 네이버 오픈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