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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감사인사/ 폭력적인 가정 밑에서 자란 무능력한 자식

쓰니 |2021.12.07 03:56
조회 15,747 |추천 104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은데 누가 내얘기를 세세히 읽어 줄 수 있을까...

그저 그냥.. 답답한 마음이 조금 허물어질까 싶어 일기장에 글 쓰듯 일기를 써본다..


기억나지도 않을 까마득한 어릴적부터 가장 무서운게 있었다.. 그건 바로 부모님이 술을 마시는것.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시지만 특히 부모님 두분이 평소보다 조금 더 마셨을경우엔 부부싸움의 강도가 더욱 높고 심해졌다.

어렸을때는 그저 나와 내 두살터울 오빠, 우리 남매의 잘못뿐인가 싶었다. 돈은 없고 힘든데 입은 많고 애새끼들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는 그런 말들을 자주 들었으니까.

친척들에게 우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는것도 더러 봤는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우리 남매는 많이 싸웠다. 그래서 더욱 많이 혼나고 무수히 맞았다. 그 어린것들이 서로에게 죽여버린다며 온갖 욕을하고 칼을 들고 주먹질을 해가며 싸웠으니 부모님이 때리는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작고 여렸던 아주 어릴적부터 오빠랑 둘이 싸우는 날엔 엄마와 아빠에게 플라스틱으로 된 파리채나 산에서 주워온 두꺼운 나무가 부러지도록 온 몸을 맞는게 당연했고, 실컷 맞고도 차디찬 화장실에서 울며 감금 당하거나 눈 내리는 한 겨울에도 알몸으로 쫓겨나는게 당연했다.

심지어 길가다가 넘어져서 아프다고 울면, 밖에서 남들에게 창피하다며 그자리에서 등짝을 손바닥으로 쎄게 맞는다. 일어날때까지.. 그래서 어릴땐 넘어지면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도 울면서 울지 않는 척 하고 씩씩한척 걷던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남매의 폭력적이고 잦은 싸움이 오빠랑 내 문제만은 아니지 싶다.

우리의 싸움은 당신네와 아주 똑 닮아있었으니까..

허구언날 소리 지르고 울며 집안 물건을 꼭 몇개씩 부숴야 끝나는.. 엄마도 아빠도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서로에게 무지막지한 부부싸움들..

혀를 씹으며 자살하겠다는 엄마와, 떨어져 죽겠다며 창틀에 올라가던 아빠. 그게 아니면 서로 죽이겠다며 깨고
부수고 칼까지 들어버리는 그런 부부싸움을 늘상 보았다.

그래, 우린 어렸을때부터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했었고 서로에게 그걸 표출했던것 같다.

기억에 닿는 가장 끝편의 어린시절엔 신용불량자인 부모님과 냄새나고 습한 반지하 방에서 부모님이 쉴새없이 피워대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살았는데,

부모님은 그때 당시 길거리에 노상을 깔고 옷이나 곡물등을 떼다가 며칠은 팔고 며칠은 쉬며 불규칙적인 생계를 이어왔다.

매일 날라오는 카드빚 독촉서를 보고 너죽니 나죽니 하다가도 장사가 잘 되어 현금이 꽤 만져지는 날이면,
그 날은 외식으로 밖에 나가 술을 마셨고, 어김없이 싸움이 짙어지는 날이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에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고, 서류상 위장 이혼을 하고, 한부모 가정으로 둔갑해 학교에선 무료급식을 먹었다.

그 시절역시 저녁때면 부모님은 술에 찌들어 돈과 인생을 하소연하고 죽고싶다며 울었고, 몸을 치고 박으며 싸웠고, 나와 오빠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그저 또 울었다.

부모님이 그리 싸울때면 방안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멈추길 기다려도 싸움은 길어져만 갔고, 방문 밖에 나가기 무서워 방안에 휴지통에 소변을 본 적도 있다. 수치스럽고 자괴감들었다.

사춘기에 일찍 접어든 나는, 불우한 환경과 불행한 가정을 완전히 이해해 버렸고
그즈음부터 자해와 자살시도를 시작했다.

나는 커터칼로 손목에 얕고 긴 자상을 내는 일이 많아졌고, 아빠 허리벨트로 목을 조르고 숨이 헐떡이기 직전까지 버티다 울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옥상에 올라가 신발벗고 난간에 걸터앉아 우는일도 허다했다.

자살동반을 검색하고 자살관련 글만 찾아보며 죽고싶다는 생각이 초등학교 5학년의 소망이었다.

중학교 시절, 담배를 피웠고 술을 마셨다.

부모님이 늘 피우던 담배맛이 궁금했고, 술이 사람을 어떻게 얼마나 망가뜨리는 건지 궁금했다.

별거없었다. 담배는 울렁거리고 토나왔으며 술은 썼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학창시절 내내 술담배를 간간히 했다. 그럴때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렸나?.. 모르겠다.
그냥 나도 망가져가는 기분이 묘하게 쾌락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다방에서 일하다 아빠몰래 남자친구를 사귀어선 내게 종종 보여줬다.

나는 아무생각 없었다. 그냥 엄마가 불러 나간자리엔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어 좋았고, 아저씨 안녕하세요 인사만 잘해도 5만원짜리를 턱턱 내어주니 나중에는 아빠소리도 잘만 나왔다. 난생처음 또래애들 다 입던 노x페x스 패딩을 사주었을땐, 정말 아빠를 바꾸고 싶었다.
비록 1년 채 못가 헤어진거 같지만.

아빠는 그 즈음에 용접 일용직으로 주급이나 월급을 받았는데, 엄마 몰래 야금야금 빼돌려 2천만원 가량을 술집에서 여자들과 노는데 썼단다.

나는 1주일마다 버스비 1만원씩을 받아내는 것도 눈치보며 어렵게 겨우겨우 말 꺼내면 엄마의 깊은 한숨과 길고 쓴 돈타령을 한참 들어야 받았는데.
교통비 달라고 말 해야하는 월요일 아침이 제일 서럽고 힘들었는데 말이다..

엄마는 항상 무뚝뚝한 오빠나 아빠대신 나를 보면 돈이 없어 힘들어 죽겠다는 타령을 주구장창 늘어놓았는데,
그것 때문인지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돈이 필요한 때가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전단지 알바같은 용돈벌이를 스스로 하곤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돈이 필요할때면 알바를 구해 부족한 용돈이나 교통비 등을 충당했는데,

식당 손님한테 성추행도 당해보고, 나이많은 사장이나 직원들이 성희롱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그외 여러일들로 날 힘들게 만들어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이 큰 상처와 쓴 아픔이 되었다.

고1때, 밖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들어온 아빠가 갑자기 내방에 들어와 가방을 뒤져보곤 니 애미랑 같은 창녀라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엄마가 처음으로 사준 비비크림이랑 아이라인, 립글로즈가 원인이었다.

학생이 할게 없어 화장을 하고다니냐고 니도 싹수가 노랗다며 욕을 마구하길래, 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손찌검이 시작됐고 머리채를 잡혀 침대모퉁이에 머리가 부딪히니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 뒤로 한달 넘게 집을 나와 모텔방에서 자기도 하고,친구들 집에 번갈아가며 얻어자곤 학교를 갔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한달 쯤 지난 때였는데, 이제 막 친해진 친구들의 집을 전전긍긍 하던 터라 매우 눈치보이고 힘들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첫학기의 첫수업들을 전부 자면서 보내거나 멍때리고 보냈고, 초중교 내내 중상위권을 놓친적 없던 내 성적은 고교3년간 하위권에 머물렀다.

어찌저찌 이런 가정과 삶에 익숙해져 성인이 되고나니,
공부 안한 고졸이 갈 수있는건 콜센터 회사뿐이었고 콜센터에 취업한 나는 콜센터 직원을 사회 밑바닥 쓰레기취급하는 인간들을 상대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갔다.

일했던 1년여간 월 160만원을 벌었는데, 부모님이 생활비는 당연히 줘야하는거라며 돈관리도 맡기라 했다.
어린시절 차곡히 새뱃돈을 모아둔 내 적금과 통장을 몰래 다써버린 엄마를 믿지못한 나는, 돈관리는 내가 한다 했고 대신 부모님에게 월 60만원씩 보내주고, 한달에 한번 가족 외식을 쐈으며, 군대간 오빠에게 월 10만원정도의 용돈을 보냈고, 엄마나 아빠에게 속옷이나 내의등 선물을 주기적으로 했다.

핸드폰비와 용돈조금을 빼면 남는게 거의 없었다.
돈을 모으는 족족 필요해 써버리던 습관 탓에 돈 모으는 방법을 몰랐고, 모을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면 내 입 하나가 빠지니 나아질 줄 알았던 살림살이는 아빠가 벌어오는 300,400만원을 엄마는 적금 하나 없이 모조리 생활비와 당신의 옷장에 가득 찬 메이커 옷들을 사는데 써버렸고 노후자금은 커녕 소액의 예적금도 지금까지 전혀없다.

그뒤로도 짧고 짧게 일을 해 몇백이 모일라 하면, 돈이 없어 죽어나는 소리에 보태고 보태어 빈통장이 되었다.

보험하나 들어 놓지않고 많은 질병과 수술을 거친 엄마는 이젠 보험을 들고싶어도 못들어 응급실이라도 가는날이면 ct촬영등으로 돈 백이 우습게 깨졌는데, 안타깝게 지금도 엄마는 몸 구석구석 안아픈데가없고 수술한곳도, 수술할 곳도 늘어만 간다.
그럼에도 운동은 전혀 안하고 술담배만 하는 엄마와 아빠가 미워 죽겠다.

평생 일용직으로 살아온 아빠는 곧 퇴직할 나이임에도 퇴직금이 없고, 남매가 부모님 노후를 위해 월 10만원씩 저축하는 통장은 늘상 300,400백만원가량 모이면 병원비로 비워져버린다.

이런 상태론 돈도 못모으고 내가 스트레스받아 못살겠다며 혼자 살겠다고 나간적도 몇번있지만 , 늘 일주일에 한두번 말도없이 찾아와 간섭하는 부모님탓에 자유도 없고 돈만 배로 나가는 독립생활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때문에 같이 한집에 살며 생활비는 무조건 줘야하는거라는 엄마의 강제적인 말에 나는 매달 생활비를 줘 왔고, 큰돈이 모일 즘이면 아빠의 차값이나, 우리집의 이삿돈 등으로 써버리곤 했다.

진지하게 나도 돈을 모아야되서 못주겠다 말하노라면,
형편 어렵게 자라 자수성가한 다른집 자식들과 비교하며 몇시간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둘다 모아둔 돈이 없고, 곧 결혼적령기임에도 모아둔 돈 하나 없어 결혼을 꿈꾸기 어렵다. 앞으로도 못 모을 것이다. 일하는 보람도 없고 일하기도 싫다..

매정하게 연을 끊고자도 수없이 생각했다. 그래도 피섞인 가족이라고 전보다 더 나이들고 늙은 부모가 안쓰럽고 불쌍하다.

내가 요즘 직장을 그만둬 생활비를 못주고 있는데,

오늘 부모님이 밖에서 술을 진득하게 마시고 와선 부부싸움을 하다가 불똥이 못난 자식들에게 튀었다.
아빠는 개놈의 새끼들 다 나와보라며 방문을 부술듯이 두드리고 많은 욕을 했다.

어렸을때 가난은 생각도않고 지금 힘든것은 너네들이 제대로 된 직장 못잡고 돈도 못벌어서 그렇다며 언제까지 너네 뒷바라지 해야하냐며 꼭 잠근 방문 너머로 온갖 쌍욕을 들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서로 욕하며 물건을 부수고 몸싸움을 하는 소리에 무서워 몰래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신고자가 나인걸 눈치 챘는지 아빠가 새벽내내 방문을 발로차며 당장 짐싸서 내일안에 나가지않으면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며 으름장을 내놓았다.

서럽고 서러워 눈물이 났다.

못난 부모님이, 그 밑에서 자란 못난 내가, 똑같은 길을 걸을까 무섭고 능력 없는 내가 싫고 미워 눈물이 났다.

내내 눈치만 보며 큰 탓에, 어딜가나 눈치를 보며 낮아질대로 낮아진 자존감이 나를 더욱 더 구렁텅이에 떨어트리는것 같다.

길고 긴 밤이다. 잠도 오지않고... 어린시절의 상처받은 나의 기억들이 무수히 떠올라 정리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횡성수설 듬성하게 부분부분 짜넣은 내 시절 기억들을..
어느 누가 알아봐주고 위로해주면 고통이 좀 떨쳐질까..
괴롭고 슬프고 아프다.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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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무생각 없이 다시 들어왔다가 예상치못한 많은 관심과 격려들에 정말 놀랐습니다..

며칠 전 새벽, 눈물로 뿌얘지는 눈을 애써 비벼가며 쓴 두서없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보아주시고 애정어린 댓글로 조언과 격려를 남겨주셨네요.
말로 표현하기 부족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댓글 하나하나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주신 길고 긴 이야기들과 경험담, 그리고 응원과 함께 남겨주신 조언은 저에게 돈주고도 살수 없는 값진 인생의 교훈이 되었어요.

그리고 글을 잘 쓴다며 글 쪽으로 나아가보라는 과분한 칭찬들에 몸 둘 바 없이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쌓이고 쌓여 폭발해버린 괴로운 기억들을 무심코 써내린 글에서, 뜻밖에도 글쓰는 재능이 보인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고 저도 뭔가 조금은 특별해질수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희망이 물씬 피어납니다..☺

앞으로는 틈틈히 시간 날때마다 글쓰기 책들을 보며 공부하는 그런 바쁜 일상을 보낼 것 같아요..!!

참, 여러분의 조언대로 나갈 집도 구했어요.
부모님과는 차차 흘러가 최소한의 인연만 유지 할 생각이고, 나갈 집 주소나 직장등 제 신상은 절대 알려주지 않을 것이에요.

일단 제 자신을 치유시키는게 우선이라고 그러시니까요,
좀 더 저를 보듬어가고 사랑해서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때, 그때 결혼이나 가정같은 인생 계획도 세워 나갈게요!

세상은 살만하고 좋은 사람들은 차고도 넘치네요.
앞으로도 그럴거고 저 또 한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귀한 목숨과 시간들을 낭비하며 허투루 살 뻔 했어요.
이젠 내일의 해가 뜨는것이 즐거울 제 인생이 기대되네요

저를 구해주신 소중한 은인님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추천수104
반대수1
베플비둘기극혐|2021.12.09 17:30
긴 글이지만 찬찬히 다 읽어보았어요 우선 첫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토닥여 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어요 그냥 살아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너무 장한 일입니다. 두번째로 드리고 싶은말은 가족과 연을 끊으시라는 얘기예요 낳아줬다고 ,혈연지간이라고 가족이 아닙니다. 저또한 불우했던 유년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족들과 거의 연락 안하고 지냅니다 더 길게 왈가불가 하지 않겠습니다 연 꼭 끊으시고 자신의 인생을 사세요.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최초의 사람은 본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부터 한명씩 내사람들이 늘어가고 진짜 가족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세번째 드리고 싶은말은 쓰신 글을 읽으면서 글쓰는데 재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 가독성도 좋고 단어선택이나 문장을 매끄럽게 이어가시더라구요 그리고 그 긴 세월 요약하기 힘들만큼 어렵다는거 아는데 정말 잘 요약 되어 표현하신게 글을 읽으며 든 생각입니다. 이제 인생 11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늦지 않았어요 천천히 글을 쓰는공부를 해보심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어렵게 다가가지말고 서점에가서 글쓰는것과 관련된 쪽으로 된 서적 많으니 참고해서 블로그나 워드파일에 자료를 만들어가보시는거 정말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요즘은 웹소설 로 등재하시는분들도 많아요 꼭!! 도전해보시길, 그리고 그 길이 더 밝은 미래를 열어주시길 간절히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베플ㅇㅇ|2021.12.09 18:08
쓴이, 나는 IMF시대에 청소년이었어요. 물론 그 전에도 우리 아빠는...성실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쌀이 없어서 밥을 굶는 일이 있었고 빚쟁이들이 무시로 집을 찾아와 뒤집어 놓았죠. 아빠의 폭력과 학대속에서 무기력한 엄마를 끌고 야반도주를 한 게 고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 이후로 남의 집 전전하며 참.........말로는 다 하기 어렵네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첫번째는 피가 섞였다고 가족은 아니에요. 지금 부모님이나 오빠로부터 분리되지 못하면 계속 평생 그렇게 살게 될지 몰라요. 집을 나와서 등기열람을 가족도 못하게 지우시고 연락을 끊으세요. 어쨌든 님이 살아남아야 나중에 부모님을 도울 상황이 온다면 도울 수 있어요. 두번째는 이 도피의 창구가 결혼은 아니었으면 해요. 불안정한 성장기를 겪은 사람은 배우자도 그런 사람을 찾기 쉬워요. 낮아진 자존감과 기댈 곳이 없다는 약점을 참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지금의 남친 좋은 사람인가요? 그렇더라도 본인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결혼을 미루세요. 함부로 몸이나 마음 허락하지 말아요. 세번째는 건강관리 잘 해요. 가난한 사람은요. 육체노동으로 돈을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요. 돈이 돈을 버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그러니 나가서 조금이라도 걷고 양질의 음식을 먹으려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쓴이, 희망을 잃이 말아요.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 남들이 보기에 살만해요. 집도 가족도 있고 직장도 있고 벌어서 대학원까지 마쳤어요. 남들이 보기엔 평범보다 살짝 나은 수준으로 살아요. 내가 특별히 잘난 사람도 아니고 운이 좋았던 것도 아니에요. 그 환경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참고 또 참았어요. 나는 아직도 아빠가 나를 찾는 악몽을 꿔요. 그럼 가지않으려는 엄마를 끌고 밤새도록 도망을 다니죠. 이미 돌아가신지가 십수년 전인데도요. 그런 날이면 주체할 수 없이 기분이 바닥을 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남았고 쓴이도 그럴 수 있어요. 희망 잃지 말고 거기서 나와요.
베플ㅇㅇ|2021.12.09 19:26
자기연민은 덫입니다. 스스로 ‘안타깝고 불쌍한 나’ 라는 생각은 결국 자기자신을 좀먹어요. 물론 너무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되면 제대로 상황 판단도 안되고 무기력해지죠. 저도 가정폭력 피해자인데 어떻게든 집에서 도망쳐서 제 살길 찾았어요. 전문대 나와서 지금은 혼자 먹고살정도…? 그런 부모를 내가 선택한것도 아니고, 그 환경에 노출되고 싶었던것도 아니잖아요. 어두운 과거가 나 자신을 평생 규정짓는다면 너무 억울해요. 그 암울한 과거로부터 스스로를 분리 시키고요 지금이라도 살 궁리부터 해보세요. 지역내 여성발전 센터 가서 일자리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다던지.. 집에서 도망쳐서 뭐라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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