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현재 우리가 보잘 것 없이 여기는 '우리 자신' 또한, 상대방에겐 '특별한 사람'이였던 적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렇게 여겨지지 않을 뿐 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내가 헤어진 연인을 다신 없을 사람처럼 여기는 경우 중 절반 이상은 그저 '이상화'에 의한 착각에 빠져있을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귀던 사람을 미련없이 떠나보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쉽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못 합니다.
누굴 만나든 비교가 되고, 새로운 사람과 무언가를 하면 할 수록 괜히 이전 연애에 대한 기억들만 떠올라 금새 침울해지곤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현재 만나는 사람에게 괜한 죄책감이 들고, 상대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해도 둘은 이어지기 어렵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만큼 나랑 잘 맞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재밌는건, 이런 우리가 남들에게는 '세상에 좋은 사람 많아' 라는 말을 무척이나 쉽게 한다는 겁니다.)
사실 상대방은 우리와 그렇게 특별하게 잘 맞거나 했던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와 나 사이에는 관계가 유지될 만한 '최소한의 조건'이 잘 형성되었을 것이고, 그 조건 하에 관계가 잘 유지되어 자연스레 서로에게 익숙해질수 있었겠지만, 말 그대로 그 뿐 입니다.
즉, 익숙함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상대가 정말 나에게 그토록 특별한 사람이였다면, 둘은 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특별함' 자체가 '보통과 구별되게 다른 것'에 대한 표현이니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경계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전 사람에 비해 나와 잘 안맞는 것이 아니고, 전남친, 전여친에 비해 나에게 '덜 익숙할' 뿐 입니다.
내가 전 사람을 '잘 맞는 사람'처럼 여기는 이유 중 일부에는, 억지로라도 그 상황에 적응하려 했던 우리의 치부가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 사람을 위해, 혹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헤어질 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눈감았던 어떤 상황을 이제와서 '익숙함'으로 왜곡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간혹 '데이트폭력'이 존재했던 케이스의 내담자가 "그래도 지금보단 그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내담자가 바보라서 심각성을 깨우치지 못 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지 못 했기 때문에 문제를 문제로써 바라보지 못 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나를 외면했던 사람을 고작 '익숙함' 하나 때문에 두둔하지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나를 하찮게 여겼던 누군가를 미화해버린다면, 나 자신과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일이 되고 말 겁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은 성장의 믿거름이 되지만 그 아픔이 늘 같은 방식으로 찾아왔었다면 어쩌면 여러분에겐 '전환'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출처 : 픽서스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