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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의 나는 왜 아직 아무것도 없을까..

오잉 |2022.01.09 21:31
조회 4,604 |추천 4
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던 것 같다. 성실하신 아버지와, 사랑이 넘치시는 어머니 밑에서 비뚤어지지 않고꽤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학구열이 넘치는 동네에서 자라 너도 나도 가는 학원은 다 가본 것 같고, 중학교 이후로명절마다 학원 때문에 친척집도 못갔었다. 고3 때는 오전 8시 등교, 야자, 심자, 학원을 마치면 밤12시, 귀가 후 복습을 하면 새벽 2시, 3시에 겨우 잠들곤 했었다. 하루 4시간 안팎으로 잠들며 꽤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과정보단 결과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 
19살의 나는 수능이 끝나고 매일 영화관에 혼자 갔었다. 영화에 집중하는 2시간 동안은 내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지않아도 됐었다.
20살의 나는 생각도 못 한 대학에 입학하였고, 재수를 희망하였으나 삼수를 한 누나로 인해 재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완강한 부모님의 반대에 반수조차 하지 못했고, 1학년을 재학하며 수능을 다시 보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클리쎼를 더 이상 믿지 못한 나의 지난 청소년기의 기억이, 그렇게 만든 듯 하다. 
21살의 나는 그렇게 입시에 미련을 놓지 못한 채, 수능을 다시 보기 위해 개인 시간이 보장된다는 공군에 입대하였으나 이 또한라인 특기를 받으면서 이룰 수 없는 계획이 된다. 그래도 군 생활을 하며, 어른에 가까워진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공대는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학과 생활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잡고 전역을 하였다.
23살의 전역한 어린 아이는 누구나 그렇듯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과 생활도 충실히 했으며, 연애 또한 충실히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묵묵히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던 대학 생활도 학생회, 연구실 생활을 하지 않으면족보를 얻을 수 없었고, 족보의 유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차이가 컸다. 또 다시 과정보단 결과였다.
24살의 나는 학점이 부족하자 경험으로 극복해야겠단 나는 미국행 인턴을 택하였다. 그 곳에서 새벽 6시 30분 출근 22시 퇴근의 생활을1년 간 하며, 취업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25살의 나는 또 다시 실패한다. 2년간 몇 번의 최종 탈락을 겪으며 내 지난 날은 어디서부터 잘 못 된것인지 생각한다.그리고 그 생각은 취업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어릴 적부터 난 아버지의 얼굴을 잘 볼 수 없었다.회사 생활에 새벽 5시에 출근 12시에 퇴근 하시던 아버지와 유대관계가 깊을 수가 없었다. 난 내 자식에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갖은 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취업 전선에서 떠나게 되었다.
27살의 난 다시 영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학창시절 쉬지 않고 했던 학원 알바가 떠올랐다.그래도 꽤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서 자라, 학생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나의 도움으로 인한 아이들의 성취가 곧 나의 성취 같았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나의 꿈은 월급쟁이가 아닌 사업가였기에, 마음이 맞는 선생님과 함께 맨땅에서 시작했다. 남을 위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한일이었기에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그래도 꽤 젊은 선생님이었기에 동네에서 인기가 있었고 그것은 곧 매출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사업은 누구나 그렇듯 계획대로 되지 않고, 코로나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스트레스보단직장 생활을 하며 갖는 스트레스가 낫다고..
30살의 나는 과외를 병행하며 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취까지 해야했던 나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꽤 열심히 준비하였으나이미 취업 시장에서 늦은 나이가 되어버린 나는 또 다시 최종탈락에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가르치던 모든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생계가 막막해졌다. 당장 다음 달의 월세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늙어버린 나는 당장 알바는 구해지지는 않고, 대학교 계약직 조차서류 탈락을 했었다. 매일매일 끝이 없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32살의 나는 드디어 취업을 하였다. 그간의 노력과 절실함이 통했는지 무척이나 가고 싶었던 회사에 취업했고,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지난 날 불효에 대해 눈물이 흘렀다. 나의 지난 날의 가치를 알아봐준 지금 회사에 고마웠고사업을 하며 닳고 닳은 마음이지만,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지난 1년간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33살의 나는 또 다시 막막하다. 나는 매 순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학생일때의 나는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했고,꿈을 가지라는 말에, 꿈을 가지고 도전 또한 해보았다. 하지만 냉정한 이 사회에서 나는 어느새 늙어버렸고, 33살의 보통의 남자가 가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당장 결혼에 대한 압박은 차도, 집도 없는 나에겐 사치이고그 압박에 연애 또한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 내 나이에 맞는 여성분이 원하는 조건은 난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꽤 닳고 닳아 강해진 건강한 정신뿐인데, 이것으로 나를 표현하기엔 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33살의 난 아직 아무것도 없다..
추천수4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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