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위 언니가 있는 20대 여자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눈치는 빠른편이지만 감정표현이 서툴렀어요.
옛날에는 엄마와 아빠가 든든했어요.
하지만 두 분의 진짜 모습들을 우연히 알게 된 후로는 힘들어요
처음엔 밉다가도 이제는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을 감추면서 저희를 지원해주시는 두 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불쌍해요.
어떻게든 우리를 지원해주려는 마음이 보이거든요.
근데 저에게는 한 살 위 언니가 있어요. 감정표현을 잘하고 짜증을 잘내며 개인주의적인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언니.
저도 그렇고 저희 언니도 그렇고 입시를 여러번 해서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을 거에요. 언니는 예체능이고 저는 의대를 목표로 했지만 둘 다 결과가 좋지 못했거든요.
올해 제 입시가 씁쓸하게 마무리한 가운데 저는 부모님께는 괜찮다고 했어요. 이정도 했으면 됐다고. 미련 없다고.
두 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냐. 수고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언니에 대한 열등감이 나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던 것같아요.
작년에 언니의 수험생활은 실패로 끝나고 언니는 전문대로 갔어요. 저 역시 의대 진학은 실패했죠. 그때 제가 의대를 못 간다는 사실 하나로 며칠을 혼자 화내신 아빠. 떨어져 살아서 몰랐지만 할머니가 말씀해주시길 그 시기 아빠의 기분이 안 좋았대요. 통화할 때도 날이 서 있는 말투였구요. 하지만 막상 언니가 대학을 다 떨어졌을 땐 혹시 언니가 상처받을까 전화 한 통도 망설인 우리 아빠. 전 그때 서운함을 느꼈어요. 제 감정은 생각해주지 않는 것같아서요.
그러고 저는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니고 언니는 엄마아빠가 돈을 열심히 모아 전문대를 보냈어요. 괜찮아요. 돈이 없는 상태에서 언니는 학자금대출을 못 받으니까 어쩔 수 없죠.
근데 왜 돈 걱정은 저만 들어야할까요ㅎㅎ언제나 돈이 부족하다 너네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말은 나에게만 하는 부모님. 언니는 예민하니까 무슨 말만 해도 짜증이니까 나에게 말하는 부모님. 미워하고 싶어도 나에게 쏟은 돈이 얼마인지를 아니까 나도 지원해주셨으니까 그런 분들을 미워하면 내가 죄인인 것같아서 미워할 수도 없어요
이번년도 역시 저는 의대를 못갔어요. 아빠 반응은 괜찮았어요. 근데 이번에는 엄마 반응이 상처였어요. 나는 지금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연습을 하고싶은데 다짜고짜 학교 들어가서 편입을 하면 괜찮대요. 그 말이 마치 너는 이번에 실패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한다라고 못을 박는 것같아 슬펐어요. 또 내 감정은 뒷전인 것같아서. 그러고 나서는 바로 언니 걱정을 하더라구요. 항상 돈이 없다면서 언니 자취방이 너무 작아보여 더 큰 데로 보내주고 싶다. 언니가 걱정된다. 그렇게 제 이야기는 다시 묻혔죠ㅎㅎ
오늘은 아빠 생신을 맞아 아빠집으로 왔어요. 언니는 늦잠자느라 늦었죠. 케이크를 사려 전화를 해도 전화받지 않아 저 혼자 준비하고 끝내 늦게 모습을 드러낸 우리 언니. 아빠 선물을 가지고 오지 않은 언니. 나중에 줄 수도 있죠. 근데 저는 화가 났어요. 왜 화가 났냐구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분위기였거든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예민한 언니가 오자마자 아빠의 신경은 언니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되고 나는 그냥 지켜봐요. 엄마랑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신경이 언니의 기분에 맞춰져요. 그럴때마다 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항상 무표정을 하는 건 아무도 모르겠죠. 웃긴건 그런 분위기가 습관이 되어서 저도 언니 눈치를 봐요.
그러고 오늘 밤. 금방 엄마에게 연락이 왔어요. 언니가 저렇게 막무가내인데 엄마가 잘 케어해야겠다. 그게 앞으로 엄마의 숙제인가보다ㅎㅎ그러니 너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라. 언니무시하지 마라 언니도 느낄테니 항상 배려해라. 그 어디에도 오늘 제가 느낀 감정들에 대한 얘기는 없어요. 그저 언니가 예민하니, 언니가 문제가 있으니 우리가 함께 도와주자
나도 짜증나고 화나는데 너무 속상한데 나까지 엉엉울거나 화내면서 성질내면 엄마아빠가 힘들어질 것같아 그냥 괜찮다고 웃어넘긴건데 왜 어느순간부터 저는 들러리가 됐죠?
오랫동안 쌓인 언니에 대한 열등감. 입시가 끝난 후 성적에 대한 미련과 나에대한 자괴감이 저를 한꺼번에 덮쳐 너무 괴로워요. 지원해준 부모님께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나쁜 것같아 더 괴로워요. 예민하면서도 나한테는 잘해주는 언니를 보면 그냥 힘이 빠져요. 이젠 그냥 나를 어떻게 위로해야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미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