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썼다 싹 지우고 그냥 한마디로 줄여볼게요.
친정은 저희 부부가 방문하면 온 동네방네 연락해서 우리 서울 사위 내려왔다 모여라 놀자!! 하는 집이고
시가는 저희 부부 방문하면 미리 약속되어 있던 사람에게도 아들 내외 와서 쉬어야 하니 다음에 와라. 하는 집이에요.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이런거 없고 그냥 가풍의 차이로 이해를 합니다.
다만 들어온 식구인 사위 며느리의 입장에서 보면 저희 시가가 더 편하기는 할 겁니다.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친정은 매년 온 가족 모여 여름 휴가를 갑니다. 언니와 제 결혼이 10년 차이가 나는데, 형부는 다행인지 처가의 그런 분위기를 좋아해 언니가 휴가 계획을 잡
으면 좋아라 처가 식구 모두와 함께 놀러다녔지요.
형부에 대한 자랑도 칭찬도 아니고, 그냥 제가 자라온 환경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게 정상적인 거다 잘했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다만 저희 집은 그런 분위기라는 거예요.
반면 시댁은 여행을 가 본적도 없는 그런 집이고, 형제도 결혼후엔 남이 되는 그런 분위기더군요. 명절이 되어도 시아버님이 맏이지만 시숙부를 만나지도 않는(가까이 살지만) 심지어 시할머니에게 인사도 가지 않는.우리부부도 역시 오지마라고 귀챦아하시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고 시가의 흉을 보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그런 가풍에서 자란 남편스타일을 말하는겁니다
제가 결혼한지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친정 엄마 환갑, 친정 아버지 칠순, 친정 엄마 칠순 등등을 보냈네요.
친정은 해마다의 여름 휴가를 저희와 함께 가기 원했으나
여름 휴가는 물론, 엄마 환갑여행, 친정 아버지 칠순 여행, 친정엄마 칠순 여행.... 남편은 언젠가부턴 불참해버리더군요. 어떤핑게도 없이....
그러는 동안 저는 시부모님과 함께 시아버지 환갑 여행을 시댁식구 모두와 다녀와준적도 있지요.
제가 이렇게 성의를 보이면, 남편도 뭔가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줄 알았어요.
저 혼자 애들을 데리고 참석했던 친정엄마 칠순 여행을 마지막으로 제가 굳게 결심한 일이 있습니다.
두번다시 남편에게 친정과의 여행을 제의하지 않겠다.
또한 절대로 시댁과 여행가는 일도 없다.
이렇게 결심하게 되기까지, 정말 저 혼자서는 많은 고민을 했었으리라 짐작하실 거예요.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자면 정말 길어지니 최대한 짧게 줄이려고 노력중입니다.
친정은 형부의 선례가 있고, 형부가 아니어도 워낙 가족들 모여 놀러다니는 걸 좋아하는 집안인데다
둘째사위인 제 남편을 좋아하세요. 학벌 좋고 직장 좋고 허우대 멀끔한 사위(남편 자랑 아닌 거 아시죠) 앞장세워 놀러다니고 싶어하시죠. 매번의 여행마다 이번엔 너희 오지 그러니, 하면
남편은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 참석을 안했고, 그러면 저는 친정 부모님께 설명을 가장한 변명을 해야 했어요.
*서방 회사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운운.
아, 미리 말씀드리지만, 남편은 여행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저희 가족끼리(그러니까 남편, 저, 저희 아이들)의 여행은 매번 남편이 먼저 날을 잡고 계획을 세워요. 여름휴가는 최소 제주도로 반드시 가고, 그 외에도 심심하면 1박2일로 여기 저기 쏘다닙니다. 딱 우리 넷만 갈 때도 있고, 우리 넷에 남편 친구 가족 넷 해서 같이 다니기도 많이하고요.
지금이야 결혼 연차 쌓여서 편안해졌지만.
결혼 초기 몇년간은 서로간 본가의 일은 참 어렵잖아요. 치사스럽기도 하고.
여기서 제가 남편 편에 서서 남편의 변명 딱 하나만 하고 넘어가자면,
남편 말 뽄새가 원래 그렇더라고요. 밥 먹을래? 하면 일단 아니, 라고 말하고 보는. 동쪽으로 갈 마음을 먹고 있다가도 내가 동쪽으로 가자, 하면 아니, 서쪽 갈거야. 라고 말해보고 시작하는(결국은 동쪽으로 가더라도.) 어떤 스타일인지 이해하시겠나요. 지금은 알겠어요. 아, 니 말뽄새가 원래 그 꼬라지구나. 한 15년 넘어 살다보니 알겠더라고요. 이 사람의 no는 no가 아니라 그냥 추임새 같은 거구나 하는. 전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었구나.
그러니까 처가와 여행을 언제 며칠날 가자. 라는 말에 아 나 그날 안되는데, 라는 남편의 말에도, 그냥 무시하고 무슨 소리야! 가야지! 라고 제가 강하게 밀어부쳤으면 갔을 거예요. 시간 지나보니 알겠어요. (남편도 실제로, 니가 그때 꼭 가자고 말을 하지 그랬냐. 라고 말하더라고요.) 근데 그때는, 안그래도 가족 여행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에게 그 개떼같이 몰려다니는 친정과의 여행을 가자고 말하는 것도 면구스러운데 이 사람이 난색을 표하니 더는 가자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 사정이야 그랬지만 지금은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요. 엄마 아빠 환갑 칠순은 이미 다 지나갔고, 남아있는 팩트는 안갔다... 이건데. 나는 시댁을 모시고 여행을 갔엇는데 너는 안 갔다... 이거만 남아있는데. 사위랑환갑 칠순여행 번듯하게 가고 싶어했던 우리 부모님 결국은 못갔다, 이게 팩트인데. 누구의 잘못이었건 안간게 팩트죠.
다시, 얘기를 돌려. 제가 남편없이 애들만 데리고 갔던 친정 엄마 칠순 여행이 5년 전이었고, 그때 저는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고 했잖아요. 두번다시 안한다. 시댁하고도 안간다.
그런데 3년 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홀로남은 시어머니를 원래 저희 가족4명만 계획되어있던 여행에 끼워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결심한게 있잖아요? 그런데도 우는남편에게 거절못한게 죄죠.
시어머니를 모시고 간 3박 4일. 정말 치 떨리게 싫은티 팍팍 냈지만, 그걸 치 떨리게 싫어한 제 자신에 대한 자괴감 또한 말로 설명 못하고요. 아 진짜 기분 엿같더라고요. 니가 내 엄마한테 그렇게 막해? 그럼 나도 니 엄마에게 막하겠어, 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을론 남편 잃은 불쌍한 노인네에게 막하는 제자신이 밉더라구요.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 갔고,
친정 아버지는 팔순이 되었어요.
작년부터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친정아버지 팔순 여행을 가자 미리 준비해라. 뭐 그런 말이 친정에서 나오고 있었고, 저는 어차피 남편은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설에 형부가 남편에게 그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봄이 좋을까 가을이 좋을까, 여름 휴가로 가 볼까. 뭐 그런 이야기를 한 거죠.
제가 남편의 no는 no가 아니라는 걸 15년 넘어 이해했듯,
남편 역시 제가 남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한 건지,
뭔가 마음이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요.
며칠전에 남편이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처가 여행 갈려면 인제 날 미리 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언제가 좋을지 말 해 달라고.
언제가 좋을지 말 해달라, 이게 제 트리거를 건드린 거 같기도 한 게, 그 이전 결혼생활동안, 친정에선 매번 남편에게 언제가 좋을지 말해달라 요청을 했었고 남편은 그때마다 시원하게 말한 적 없이 어영부영 봐서 어쩌고 저쩌고 넘어가다가 막상 날을 잡고 나면 그날 안된다, 라고 거절하기 일쑤였거든요. 그래놓고 지금와서 언제가 좋을지 말해 달라니.
제가 남편에게 대 놓고 그랬어요. 안 가도 돼. 신경 쓸 거 없어.
그랬더니 남편은 당황하더라고요. 남편의 no는 no가 아니지만 제 입에서 나오는 no는 액면 그대로의 no 거든요.
제가 남편에게, 나는 5년 전 엄마 칠순 여행때 굳게 결심한 일이 있다. 두번 다시 널 친정 여행에 끼워넣지 않겠다, 다만 나 역시도 두번다시 시댁과 여행가는 일은 없다 라고. 그렇게 결심 했다라고
남편은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같이 사냐. 그러길래 진짜 순간 웃음이 빵 터지는 거예요.
여보. 지금까지도 같이 잘 살았어. 너 처가와 여행 거의 안 갔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같이 잘 살았잖아? 뭘 이제와서 새삼 사니 못 사니 그런 말이 나와.
그랬더니 남편이 그러더군요. 니가 그렇게 그게 중요했으면 그때 꼭 가자는 말을 하지 왜 안하고 이제와서 이러냐고.
네, 이게 지금 제가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맞아요. 그때 제가 남편을 다그쳤으면 남편 갔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을,
결혼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제야 제가 압니다. 남편은 그냥 말 뽄새가 원래 그랬고, 그냥 습관적으로 제안에 일단 무조건 거절을 하고 본 것이었는데 두번 요청하지 않으니 자기 입으로 그래도 갈까? 라는 말을 하기도 그랬을거고, 뭐 처가 여행 꼭 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마누라가 굳이 가자가자 하지도 않는거 하고 그때그때 무심히 넘겼을 거예요.
그걸 잘했다는 게 아니라 , 제가 지금 시댁의 혼자남은 시어머니에대해 절대 안간다! 라고 결심하는 마음과는 그 마음의 결이 달랐을 거라는 이야기죠. 자기는 그냥 무심히 흘렸던 일상들이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지난 10여년간의 남편 모습이 생각나고, 화가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안 풀리는 나도 참 그렇고,
남편은 뒤통수 맞은 표정이고.
그럼에도 지난 10여년간의 팩트는 팩트대로 있는 게 사실이고.
이 와중에 친정 조카는 대학 기숙사 문제가 꼬여 이모집인 저희 집에 기숙하고 있는 중이고 하.....
저는 이미 친정의 조카를 데려와 남편 여러모로 귀찮게 하고 있는 와중에 너 우리 친정에 잘못했으니 나도 니 엄마한테 잘하지 않을거야 외치는걸까요? 이건 다른 문제인가요?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맘이 정리가 안되어서 이런저런 하소연만 늘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