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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하다 별거하면서 연인관계를 유지하는게 가능할까요?

쓰니 |2022.05.02 11:56
조회 8,033 |추천 3


동거하던 애인이 집에서 짐을 뺀답니다.

 .


연애 시작한지 1년 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연애 시작하고 어느 날 아예 작정했는지 


갑자기 옷을 한보따리 들고 저희 집으로 가져오더라고요.


그 뒤론 아예 자기 집 살림을 저희 집으로 전부 옮겨놓았어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두손으로 들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짐을 들고오는데,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저도 내심 같이 있는게 좋았기 때문에 말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같이 살기 시작한게 1년 3개월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매일매일 만나니까 다른 커플들 데이트하는 기간에 비하면 벌써 6년쯤 

된거나 다름없다고도 했어요.

 

애인은 제가 마련한 이케아 가구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나 둘 씩 바꾸고 버렸습니다.


방3칸 집에 제가 샀던 가구 중에 이제 남아있는 건 제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침대 하나 뿐이네요.


지금 바꾸지 못한 건 훗날 집 마련하고 이사갈 때 새로 구입하기로 했어요.


애인이 구입한 예쁜 가구와 소품으로 집을 꾸미고 가꾸어나갔습니다.


불과 몇 개월만에 제가 혼자 살던 집과 아주 다른 집이 되었어요.

 



애인은 자기 자신이 불안이 많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타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연애 초반에는 제 핸드폰 훔쳐본 걸로 몇 번 다투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동하는 동선, 어디서 뭐하는지 제대로 보고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사전에 합의 없이 친구를 만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정말 친한 친구와 1년동안 겨우 딱 1번, 그것도 애인이 지방으로 출장가던 날 만났어요. 


결국 핸드폰도 전부 볼 테면 보라고 오픈해뒀고요. 


애인은 월말에는 며칠씩 야근을 해야하는 사람이라, 


제가 본가에 가거나 약속이 있는 것도 늘 월말로 미뤄두었어요.

 

애인이 하자는대로 전부 다 했어요. 가끔은 좀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게 제가 이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평생 운전할 생각 없었는데, 이사람이랑 연애하려고 면허도 따고 차도 샀어요. 


내 컴퓨터가 고장났어도, 애인한테 노트북 사주는게 먼저였어요.

 




저는 예술 전공이라, 원래 9-6 회사생활하면서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별 성과도 안나오는 창작활동이 지쳐서 다 접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애인이 용기를 줬어요. 


그래서 공무원 준비 포기하고 창작활동에 더 집중해보기로 했어요. 


애인은 항상 신중하고 어디서든 인정 받는 사람이라 허투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걸어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을 해서 진로를 바꿨어요.

 




불과 3개월 전에도 애인 집에 있는 전신거울이랑 부츠랑 잡동사니를 차에 싣고 우리 집으로 가져왔어요. 


이제 그쪽 집엔 자기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웃었죠. 


그런데 이제 거리두기 풀릴 즈음이 되니 점점 혼자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빈도가 늘어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한 번도 뭐라고 한 적 없었어요. 어디있는지 연락이 안되도 괜찮았어요. 


그만큼 믿었으니까요.


수차례 술이 떡이 되서 들어와도 잘 들어왔으니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박을 하겠다 하네요. 


그것도 술 잔뜩 취해서요. 사실 외박 자체도 괜찮았어요. 


직장 후배 집에서 잔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화가 났던 건,


작년 가을, 제가 업무때매 지방에 방문 중 뒷풀이 행사같은걸 했는데, 


주최측에서 호텔을 잡아주겠다고 하루 놀다가라고 했거든요.


제가 서울행 기차 타면서 연락을 하며 여기서 호텔도 잡아줬다고 아쉬워 하는 말투로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엄청 화를 냈어요.  

외박을 한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아쉬워하는 말투였다는 이유로요. 


자기도 동종업계라 잘 안다, 그게 무슨 업무 연장이냐, 끝나고 다들 술먹고 노는거라고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랬던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새벽2시에 카톡으로 외박하고 들어간다고 해요. 


그냥 그동안 쌓였던 울분같은게 다 터졌어요. 


나는 애인이 가족보다도 먼저였고 내 일보다도 먼저였어요. 


내가 이 사람을 아끼고 좋아하는 만큼, 점점 이 사람이 나한테 소홀한게 느껴지네요.


저는 단 한번도 애인에게 뭔가 해달라 뭔가 지켜달라 요구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옆에서 같이 와인 한 잔 하면서 요리해먹는게 즐거움이었어요.


어디 데이트를 나간 적도 없어요. 밖에 나가면 피곤하다고. 


동네 하천에 벚꽃보러가자고 그렇게 사정사정을 해서 억지로 모셔갔던 기억도 나네요. 


같이 영화도 보고싶고 밖에서 양꼬치도 굽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는데, 


그냥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주중엔 일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고 피곤하니까 주말엔 집에서 쉬는게 젤 편하다고 해서요. 


부부들은 원래 다 그런줄 알았어요. 

  



이 외박 문제로 저도 처음으로 화를 냈던 것 같아요. 


애인도 제게 미안하대요. 


자기가 나를 억압했던만큼, 본인은 같은 기준으로 행동하지 못했다고요. 


그래도 제가 그걸 지켜준 만큼 애인은 이제 저를 믿을수 있대요. 


그러니 저도 이제 하고싶은대로 하라네요. 


그것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이제 따로 지내고 싶대요. 


우리가 더 오래 만나기 위해선 각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요.

 

제가 집 비우는 사이에 짐을 조금씩 가져가더라고요. 


하루는 신발장에 신발이 전부 사라지고, 


하루는 서랍이  비워지고, 


하루는 행거에 걸린 외투들이 다 사라지고요.

 


우리가 결혼한 사이도 아니니까, 사실 따로 사는게 당연한건데, 


집에서 애인의 흔적들이 조금씩 사라지는게 너무 괴로웠어요. 


왜 자기 멋대로 우리집에 짐싸와서 눌러 앉더니, 이젠 또 자기 멋대로 나가는걸까요. 


그냥 짐만 가지고 나가는거면 괜찮은데, 


요새 도통 같이 있는 시간에도 나한테 관심없는게 느껴져요. 


내가 옆에서 한참을 쳐다봐도 신경도 안쓰고 티비만 보고 있고요. 


가끔은 내가 마사지 해주고 등긁어주는 기계같기도 했어요.





 

연애 전에 먼저 손 잡던 사람도 애인이었고, 


연애 하기 전에 우리 집에 놀러와서 혼자 자고 가던 것도 애인이었어요.


집에 가구며 식기며 죄다 멋대로 바꿔놓길래, 


나는 진짜 우리가 부부라도 된 것마냥 착각을 했나봐요.

 

우리가 권태기라면 같이 살면서 극복해나가야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짐을 빼는게 어디있나 화가 났다가도,


맞다 우리가 아직 부부는 아니었지 깨닫게 되네요.


애인이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먼저 우리 어머니 생신에 꽃도 보내고, 되게 잘했어요.


저는 애인한테 늘 사랑받는 기분이었고요. 

 



글쓰다보니 이 사람이 나한테 마음이 식은건 사실이고,


이제는 애인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네요. 


부담스러울까봐 결혼하잔 얘긴 못꺼냈는데, 


어쩌면 나랑은 결혼까지 가기 못미더웠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어제는 긴 야근끝에 3일만에 만나서, 이것저것 요리해서 같이 먹었어요.


내가 나중에 보자고 했는데도, 애인이 굳이 나를 보고싶다고 해서 


늦은 시간에 우리집에 왔습니다.


 피곤해하길래 가서 씻고 자자 했더니, 


'잠은 집에가서 자야지.. '이러네요.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우리는 같이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남의 집인 양 이야기를 하네요. 


갑자기 저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가족이 아니었는데, 저 혼자만 착각하고 있었나봐요.

 



곧 생일이라 생일선물도 사놨고, 심지어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놨는데,


아무래도 선물들은 당근으로 팔아야겠습니다. 


강북쪽 계신분들은 당근 잘 보세요 


뭔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올수도 있습니다ㅎㅎ


오마카세를 안가봤대서, 인당20짜리 레스토랑도 두 달 전에 예약을 해놨어요.


곧 방문예정이었는데 참 속상하네요. 


애인이 무 피클을 좋아해서 18리터 통 가득 무피클도 담궈놨고..


좋아하느 송주불냉면 먹으며 살찌지 말라고 천사채 당면도 만들어놨는데


이제 내가 해놓은 요리 먹어줄 사람이 없네요.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았고 해줄 시간과 능력도 있는데, 


이 사람은 이제 원하질 않는다는게 너무 속상하고 괴롭네요.

 

집이 텅 비어버렸는데, 아직도 이사람이 만든 흔적이 너무 많아요.


잠을 한숨도 못잤어요.   




동거커플이 별거를 해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상담하려고 글을 썼는데,


쓰다보니 정리가 좀 되네요.


우리가 가족도 아닌데 난 마치 부부인양 착각했나 봅니다. 


헤어지는게 맞는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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