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도 하루같다는 성경말씀처럼 지구는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는 고기만 먹었을 거라고 가정해 보자.
고기만 먹었을 때에도
천년이 하루 같은 하느님께서는
그대로 존재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식물을 창조해내셨다.
단지 식물을 창조해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고기만 있었다는 시대를 간과하여 너무 쉽게 여긴다면,
그것은 당신의 아이큐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당신이 어리석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다.
이처럼 수 많은 하느님의 작품들이 우리 세상안에 있다.
아이큐가 높다면 벌써 하느님을 찬양하고, 흠숭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음악을 살펴보자.
우리가 성가를 부를 때에는 오선지에 음표가 복잡하지 않게 적혀있다.
그걸로 성가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바리톤 테너 베이스 메조 소프라노 등,
매우 복잡하게 음역이 부를 수 있는 능력에 맞게 나뉘어져 있다.
그들의 혼합된 합창이 조화롭고 이것도 신비롭다.
게다가 사람들은 음악도 감상하여
각기 서로 다른 평을 내고 있다.
저마다 느끼는 것도 서로 다르다.
이번에는 언어로 가자.
지구에는 수 많은 언어가 존재하며 각기 다른 뜻을 나타낸다.
매년 전 세계의 언어 순위를 발표하는 학술지 <에스놀로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언어 수는 7139개다.
이 중 모국어 외에 제2언어로 사용하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한국어의 언어 순위는 20위다.
이번에는 사람의 구성에 대하여 말해보자.
사람의 육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혼과 육체와 더 나아가 정신과 마음까지도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야기할떄
육의 세계만을 이야기한다.
죽음도 보기에는 마지막같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세계 사후세계가 있음은
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믿음이다.
그렇다면 왜 영혼이 사람들의 상식에서
모두다 알고 있는 단어가 된 것인가.
사람들이 왜 영혼이라는 단어를 보편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인가.
그만큼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신을 믿고 있으며 사람보다는 신을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여기며
흠숭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더욱더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영의 언어인 방언으로 중보기도를 해주거나,
성령이라는 미지의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거나, 병을 고칠 수도 있다.
이제 다시보자.
하느님께는 천년도 하루 같다는 말씀을 말이다.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
고기만 있던 세상이 식물이란 존재도 생겨나게 되었다.
육체만 있었던 사람에게 영과 혼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새로 생겨났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한계가
우리가 처한 지금 이 세상에만 한정된 범위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매우 복잡한 단계란 말이다.
마사지만 보더라도
쾌락의 정도와 느끼는 부위의 쾌감 등
인체는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로소 248차원이나 가능하다고 밝혀진 지구라는 행성의 존재가
이제야 우리에게 비로소 크게 다가온다.
수많은 마사지 방법과 쾌락,
마약이라는 물질이 보여준 하느님의 쾌락의 최대치의 한계의 무한함.
그리고 금욕의 인내로써 만들어 낸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오르가즘....
[가만히 있어도 어떤 때나 가끔은 오르가즘이 느껴진다는 것은
직접 1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금욕으로 참아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그리고, 정의 소모를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젊음의 유지가 있다.
정의 소모도
몽정, 유정, 사정 등으로 나뉘어서 서로 다른 피로감을 들 수 있겠다.
몽정과 유정과 사정은
서로다른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금욕을 해보아 깨달아 보았는가.
정이란 한정된 양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몽정 유정 사정이라는 서로 다른 배출로도
피로도가 다르다는 얘기는
우리가 이 세가지 유형의 정자의 방출마저도
똑같은 DNA나 배출되는 것이
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몽정, 유정, 사정의 세가지 유형 중
한가지는 정의 배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세가지 정의 배출이 똑같다면
피로도도 똑같이 극도로 피로해야 한다.
정이 아닌 신경물질로만 이루어진 점액의 방출일수도 있고,
정자의 양이 다를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근거로 피로도가 다르다는 것에 나는 중점을 둔다.
이것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도 할 수 있다.
피로도가 다르니까 말이다.
왜 다른 것인가를 연구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